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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초적 욕망 꿈틀대는 악마 같은 뉴스로 인류 중독시키다

‘미디어 황제’ 루퍼드 머독 이야기

말초적 욕망 꿈틀대는 악마 같은 뉴스로 인류 중독시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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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원 인격, 무자비하게 무시하라”

머독의 또 다른 특징은 지나치게 뻔뻔하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웬만큼 돈을 벌면 체면을 차리게 마련이며 특히 품위 있는 지식산업인 미디어 업계 리더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머독은 한결같다. 언론인은 낮은 지위에 있든 높은 지위에 있든 체면을 차리지 말고 ‘무자비하게’ 대중의 호기심을 채워줘야 한다고 본다.

머독 밑에서 일하는 한 신문사 간부는 이렇게 말한다. “머독은 대중의 취향에 명령하지 않는다. 대중이 무엇을 보고 싶다고 그에게 말하면 그것을 제공한다.” 여기에 더해 적대적 인수 합병과 노조 파괴는 자본주의의 법칙이므로 윤리적 잣대로 평가하지 말라는 게 머독의 생각이다. 그는 자신의 이념을 따르지 않은 임직원에게는 가차 없이 떠나라고 압박한다. 2007년 밴크로프트 가문으로부터 ‘월스트리트저널’을 인수할 당시 편집진을 건드리지 않겠다고 공언했지만 인수 직후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로 심복을 요직에 심었다.

머독 이전의 ‘월스트리트저널’은 자타가 인정하는 세계적인 권위지였다. 그러나 머독 이후 상업지로 완전히 바뀌었다. 밴크로프트 가문은 영국 ‘가디언’과 한 인터뷰에서 “‘월스트리트저널’ 매각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머독은 “‘월스트리트저널’의 독자들은 신문이 더 좋아졌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해외뉴스는 더 탄탄해졌고, 주말판은 더 실용적이 됐으며, 디지털 배달망은 더 확장됐다”고 했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저널’을 과거와 같은 정론지라고 보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머독은 이념적으로 보수성향이지만 종종 자신을 ‘민주화 투사’ 내지 ‘시대를 앞서는 프런티어’로 여긴다. 그는 미국 시장 진출 초기 박대당했다. 매체 인수에 자신의 호주 국적이 문제가 되자 미국 국적을 취득하기도 했다(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방송사 소유자를 미국 국적자로 제한하고 있다). 그는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과 치열하게 싸웠으며 근래까지 CNN의 전 회장 테드 터너와도 대립했다. 1997년 테드 터너가 장악하고 있는 미국 최대의 케이블TV 시장인 뉴욕에 자신의 폭스뉴스TV가 진입하지 못하고 법원이 테드 터너의 손을 들어 주자 머독은 ‘자본주의 사망론’을 역설했다.



‘업계의 프런티어’를 자임하는 그는 2005년 미국 신문편집인협회 초청 강연에서 “종이 신문은 2040년까지는 유지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신문은 인터넷을 두려워하거나 무시하지 말고 디지털 혁명을 적극 수용해야 한다”고 했다. 활자매체가 온라인에 뛰어들라는 주문이었다.

머독의 폭스뉴스TV는 미국 TV 중 거의 유일하게 극우보수 논조로 유명하다. 미국 민주당과 진보 시민단체들은 “폭스뉴스의 글렌 백(오후 5시 토크쇼 진행자)이 나오면 TV를 끄세요”라는 슬로건을 내걸기도 했다. 머독은 미국의 강경보수 인사들이 폭스뉴스에서 마음껏 뛰어놀도록 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폭스뉴스가 민주당 정권인 오바마 집권기를 맞아 오히려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는 점이다. 이 TV는 오바마 대통령이 추진하는 방대하고 야심 찬 개혁 어젠다에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의 구심점 역할을 자임한다. 오바마 대통령 당선 이후 폭스뉴스의 시청률은 계속 상승 중이다. 중도성향의 CNN과 진보성향의 MSNBC가 오바마 집권기에 영향력을 확장할 것이라는 관측은 빗나갔다. 폭스뉴스와 다른 케이블 뉴스 채널 간의 시청률 차이는 더 벌어지고 있다. 누적시청자 수(cumulative audience·6개월 등 일정한 기간 한 번 이상 본 사람의 총 수) 기준으로는 여전히 CNN이 업계 선두이지만 일반적인 시청률 집계에선 폭스뉴스가 압도적 1위다. 이 모든 흐름의 장막 뒤에 머독이 버티고 있음은 물론이다.

지난 미국 대선 당시 오바마나 힐러리 클린턴은 폭스뉴스 불참 방침을 발표했다. 폭스뉴스에 대한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당시 민주당 지지자들은 폭스뉴스가 공화당에 유리하게 편파 보도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공화당 지지자 사이에서 폭스뉴스에 대한 ‘충성도’는 CNN과 MSNBC에 비해 세 배 이상 높다. 또한 민주당 지지자 가운데 폭스뉴스를 보는 사람이 공화당 지지자 가운데 CNN이나 MSNBC를 보는 사람보다 조금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

폭스뉴스는 다른 주류 언론이 거의 무시한 ‘티 파티’(Tea Party·오바마 정부의 세금 및 재정 정책에 반대하는 일련의 보수 성향 집회)를 집중 보도하면서 보수층의 대변자 역할을 자임했다. 이어 오바마가 건강보험료 체계 개혁을 추진하자 개혁반대파를 대변하는 보도와 논평을 대폭 확대했다. 언론 전문가들은 “오바마 정부 비판 집회를 보도할 때 다른 언론은 누가 집회를 주최했는지에 중점을 둔다. 반면 폭스뉴스는 집회 참가자들의 의견과 관심사항을 대변해주는 데 초점을 둔다”고 분석한다.

공정하고 균형 잡힌? 풋!

인기도와 신뢰도는 다르다. 폭스뉴스는 ‘우리는 전달만 하고 당신이 결정한다’(We Report, You Decide), ‘공정하고 균형 잡힌’(Fair and Balanced)’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캐치프레이즈에 “풋!”하고 웃음을 터뜨린다. 조사 결과 폭스뉴스가 ‘믿을 만하지 않다’고 응답한 사람은 41%로, ‘믿을 수 있다’는 응답자 34%를 압도했다. 18~29세 시청자 82%는 폭스뉴스를 안 본다고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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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률|서강대 MOT대학원 교수·매체경제학 yule21@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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