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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스승은 칭찬과 다양한 체험이었다

최고의 스승은 칭찬과 다양한 체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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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적 성취를 한 사람들을 대개 자신이 하는 일에 푹 빠져있다. 그래서 일이 재미있고 즐겁다고 말한다. 또한 자기가 속한 일터에 대해서도 깊은 애정을 갖고 있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삶에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요소로 ‘일’ 과 ‘사랑’을 꼽았다. 특히 ‘일’을 통해 사람들은 사회적 욕구를 충족하고 자아를 실현한다.

한국 역사학의 희망으로 불리는 고려대 강만길 명예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역사공부가 참 재미있었어요. 재미있으니까 역사책도 많이 읽었지요. 물론 대학에 들어와보니 학문은 재미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한번도 역사공부를 하면서 지루하다거나 하기 싫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때만 해도 사학과에 역사공부하겠다고 들어오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정치학과나 경제학과 가려다 못가서 왔다는 친구가 대부분이었는데 저야 역사공부 하겠다고 대학 갔으니 재미있을 수밖에요.”

미국 제퍼슨 의대 교수이며 세계적인 간암전문가 이혜원 교수는 환자를 돌보는 일이 너무나 즐겁고 행복하다고 한다.



“환자를 만날 때가 참 좋아요. 환자들의 얘기를 듣고나서 치료로 고통을 덜어줄 수 있잖아요. 치료를 해서 병이 낫는 것을 보면 얼마나 좋은데요. 낫지 않으면 같이 울기도 하고. 진료를 할 때는 30분 일찍 일어나 남보다 먼저 가서 환자와 만나지요. 또 남보다 30분 늦게 퇴근하더라도 환자를 한 번 더 보는 게 좋아요. 퇴근할 때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병실을 한바퀴 돌면 환자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는 미국시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가고 싶던 혈액과 대신 암연구센터를 택해야 했는데 10년 뒤 가장 유망한 분야로 떠올랐다.

경희대 정치학과 나종일 교수도 인생에서 재미있는 일이 무엇인지 제대로 찾아낸 경우다. 그는 학자의 길을 걷기 전 사업가로 먼저 세상을 경험했지만 적성이 아닌 것을 알고 과감히 포기했다.

“대학을 막 졸업하고 사업을 하다가 그만두었어요. 실패해서 그만둔 게 아니라, 돈이 너무 쉽게, 잘 벌리니까 재미가 없어서 그만뒀어요. 사업은 재미없었지만 공부하고 책 읽고 글 쓰는 것은 너무 재미있지요”

그래서 중도에 사업을 포기하고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공부한 후 학자가 됐다.

박광수씨는 매일매일 행복한 일을 스스로 만들어낸다.

“재미 없으면 재미있는 일을 만들려고 노력하고요, 신나는 일이 없으면 신나는 일을 하려고 노력하죠. 술 먹고 싶은데 술 먹을 일이 없으면 술 먹을 일을 만들고…. 어떻게 하면 행복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요, 자신이 어떨 때 행복한지 최소한 3시간을 고민해 보라고 하죠. 제 친구들을 보면 남이 맞춰둔 삶의 행복에 자기 채널을 맞추고 살아요. 그것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죠.”

[ 다양한 체험으로 고정관념을 깬다 ]

인간은 체험이 부족할수록 고정관념의 노예가 된다. 고정관념은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주요한 기능인 사고과정을 생략하게 하여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데 방해가 된다.

많이 보고, 참여하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딴지일보’의 김어준씨는 누구보다 여행을 통해 배운 게 많다고 말한다.

“배낭여행으로 45개국을 다녔어요. 여행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에요. 예를 들어 우리는 미국영화에 길들어서 아랍인이라고 하면 과격한 테러분자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는데 막상 만나보면 그렇지 않아요. 그리고 내가 중동에 대해 나의 시각이 아닌, 미국이라는 창을 통해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처음에는 막연한 호기심으로 시작한 배낭여행이었지만 김어준씨의 안목을 넓히고 성장시켰다.

그는 또 여행 중에 떠올랐던 무수한 아이디어를 실천에 옮겼다. ‘딴지일보’도 그 아이디어 중 하나였다.

“아테네를 여행하면서 그곳 건물은 모두 다원형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우리가 잘 아는 원형극장 같은 것이죠. 지금 우리가 말하는 직접민주주의를 하느라고 그랬겠지요. 순간 이런 생각이 떠올랐어요. ‘어, 그러면 그때는 한 사람 한사람이 방송국이었네. 개인이 매체였네’라는 생각을 하고는 그냥 잊어버렸지요. 몇 년이 흐른 후 재미있는 신문, 나를 표현하는 신문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다시 떠오른 거에요. 마침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드는 게 유행이었는데 인터넷이 아크로폴리스가 되는 거죠. 이론적으로는 인터넷을 쓰는 모든 사람에게 나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거잖아요. 예전에는 하고 싶어도 방송국이 없어서 못 했는데 이제는 인터넷으로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것이 바로 디지털 아테네라고 생각하고 ‘딴지일보’를 창간했죠.”

인터넷에 미치면서 그가 깨달은 중요한 사실은 “배울 수 있는 가치로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 수 없다”는 명제였다. 그에게 “이렇게 하면 성공할 수 있어”라든가 “이러이러한 것을 배워둬야 해”라는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크리에이터 백종렬씨의 닉스 청바지 광고가 유명해진 것은 도저히 청바지와는 연결될 것 같지 않은 파, 양파, 탱크를 광고에 등장시켰기 때문이다. 이런 장치들은 소비자들에게 이 바지를 입으면 편안하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것이 적중해 그 해 닉스청바지 매출액은 500억원에 육박했고 처음으로 라이벌 회사를 앞지르는 데 성공했다.

그는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당연한 것일수록 의심해보는 것이 습관이 됐다. 어릴 때 가장 궁금했던 것은 이승복 어린이가 정말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했을까였다. 친구들과 오징어 놀이(바닥에 오징어 모양을 그려놓고 하는 놀이)를 하면서도 “야, 이게 어떻게 오징어냐? 오징어라면 다리가 있어야지”라고 끝까지 우겼다.

우리는 흔히 창의성은 기괴하고 이상하게 사물을 보는 능력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사물과 상황을 정확하게 보고 인식하는 것이 창의성의 중요한 축이다.

‘나는 일본문화가 좋다’ ‘재미있게 사는 사람이 성공한다’를 낸 후 신세대 문화평론가로 활약하고 있는 김지룡씨 역시 일본 유학을 통해 일본인과 일본문화를 정하면서 행복이란 남이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임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일본에서 소위 일류대학에 다니는 친구는 항상 우울해 있었어요. 졸업하면 앞으로 뭘 할까 걱정으로 피곤해 했지요. 애인도 없고, 일본 대기업에 들어가면 승진도 안 되고 출세하기도 힘들다고 하면서. 한편 음악을 하는 친구들은 누가 알아주지도 않고 돈도 많이 벌지 못하지만 행복하다고 해요”

로펌 김·장의 박병무 변호사도 나름대로 생산적인 인생여정을 걸어오고 있다. 그는 서울법대 수석입학, 수석졸업의 재원이었다. 부모는 그가 판검사의 길을 택하기 원했으나 그는 법대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판검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사법고시 합격 후 그는 곧장 하버드 법과대학원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곳에서 토론식 수업으로 논리를 개발하는 훈련을 받았다.

“하버드에서 공부할 때 교수들이 자꾸 말을 시켜요. 주입하는 것이 아니고. 동료친구들은 엉뚱한 이야기들을 많이 하더라구요. 그런 것을 계속 반복하고, 거기에 어떤 논리가 뒷받침이 되면 상당히 좋은 이론들이 나오는 거죠”

어린 시절 학교 밖 활동이 잦았다. 어린이회관에서 실시하는 과학반, 음악반의 활동, 보이스카우트, 신문배달, 바이올린, 영어회화, 시험이 끝나면 입장료가 조금싼 의정부까지 가서 하루에 두세편씩 영화를 보았다. 만화도 섭렵했고 세계문학전집 속의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도 만났다. 특히 한국단편문학전집을 두루 읽으면서 인생의 비극적 요소를 이해하려 했다. 음악전집 레코드를 들으면서 음악속의 배경을 마음에 그려보면서 상상력을 키웠다.

박변호사는 지금도 일을 하다가 막히면 동료변호사들과 함께 세계지도를 그려놓고 어떻게 전쟁을 해서 이 세계를 정복할까를 생각하며 웃는데 그것이 머리를 맑게 해주는 것 같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의 다양한 체험이 창조적이고 통찰력있는 생활을 하는데 무의식적으로 많은 도움이 된다고 고백한다.

[ 인간에 대한 애정이 큰 사람을 만든다 ]

우리가 흔히 하는 말 중에 “공부해서 남주냐”는 것이 있다. 그러나 사실 따지고 보면 남주기 위해서, 타인의 삶을 유익하게 하기 위해서 공부를 한다. 남을 위해 하다 보면 그 결과가 부메랑이 되어 나에게 오는 것이다.

‘영산포’라는 시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한 나해철씨는 성형외과 의사이기도 하다. 그는 환자를 볼 때 최선을 다하는 시인의 마음이 된다.

“시인들이 시를 쓸 때 새 한 마리, 꽃 한 송이가 말을 하고 마음이 있다는 것을 느껴요. 꽃 한 송이가 말을 해주니까 우리가 시를 쓸 수 있는 것이지요. 하나의 생명처럼. 저는 환자들을 볼 때에도 그런 생각으로 합니다. 환자들이 내 가족처럼 느껴져요. 어쩌다 수술결과가 좋지 않아 환자가 울면 나도 당장 이 일을 그만두고 싶을 만큼 가슴이 아파요.”

의사 나해철은 시인 나해철임을 더욱 강조한다. 시인의 정신으로 환자를 보고 자신의 삶을 가꾸어 가는 나해철, 그가 지향하는 예술의 생명력은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성실한 애정을 바탕으로 나온 것 아닐까.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골드뱅크 창립멤버로 벤처업계에 뛰어든 이봉재씨는 목사님의 설교를 그대로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제가 아주 진실한 크리스천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항상 행동하는 크리스천이 되려고 해요. 십일조 생활은 잘 못해도 장기기증, 각막기증, 헌혈 이런 것은 앞장서서 해요. 저만 하는 것이 아니고 형님, 형수님, 집사람 다하게 만들어요. 진짜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해야 한다. 주여 주여라고 찾기만 할 게 아니다라고 말하죠.”

인간의 가슴속에 다른 인간에 대한 배려나 애정이 생략되어 있다면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힘을 발휘할 수가 없다.

서양화가 한희원씨가 소외당하고 박해받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민족미술 운동을 하고 시인 안도현씨가 참여시를 통해 어려운 이들의 삶을 고발한 것은 예술이 인간을 앞설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결국 좋은 인간성과 연결된다. 조각가 최종태씨는 이런 말을 했다.

“좋은 사람이 좋은 그림을 그리고 훌륭한 사람이 훌륭한 그림을 그린다. 그림도 옳은 그림이 있고 바른 그림이 있다. 좋은 그림은 옳은 그림이어야 하고 또한 바른 그림이어야 한다. 그림은 사람이 그리는 것이고 그 사람됨이 그대로 그림에 반영된다.”

위에서 언급한 요인 외에도 무수히 많은 요인이 인간의 잠재된 능력을 발현시켜 세상에 유익하게 작용하게 한다. 예를 들어 배우자 형제자매 친구 등의 주변인물, 삶에 대한 신앙적 태도, 사회를 지각하는 눈, 자신을 돌아보는 능력, 봉사정신, 천직의식, 자신감, 어려움을 극복하는 즐거움, 외로움을 견디는 힘, 물질을 아끼는 태도, 타인에 대한 관심과 배려, 풍부한 독서, 건강관리, 시간관리, 도전의식 등이다. 이밖에도 밝혀지지지 않은 많은 요인들이 한 인간이 지닌 잠재력을 발굴하고 개발하는데 기여한다.

필자는 30명의 창의적 성취를 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을 분석하면서 세상 모든 사람들도 이 30인처럼 성취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흔히 “될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안다”거나 “세살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하지만 이런 생각이 자칫 아이의 가능성을 죽이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떡잎부터 알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 떡잎 단계에는 무한한 가능성을 알 수 없다. 행동과학이 고도로 발달한 현대에도 10세 이전의 아동이 장차 어떤 사람이 될지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

인간이란 유기체는 변화하는 존재이며, 사람은 끊임없이 배우고 새로운 환경 속에서 자극 받으며 새로운 반응을 하고 창조하는 존재다. 아이들이 가진 흥미, 적성, 개성을 잘 발현하도록 돕고 그것들을 개발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일단 부모가 됐으면 부모로 성공해야 한다. 자식농사를 잘 지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가 먼저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이제 학교공부만 잘 하는 아이로 만드는 어리석은 짓은 그만두어야 한다. 이 세상에 널려 있는 2만2000개의 직업 중 자녀가 신바람나게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주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부모가 할 일인 것이다.

신동아 2000년 3월호

3/3
박경애 한국청소년상담원 상담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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