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렌츠의 ‘각인(Imprinting)’ 실험이란 것이 있다. 새끼오리가 알에서 깨는 순간 어미오리가 아닌 닭을 보여주었더니 새끼 오리는 어미오리가 옆에 있어도 맨처음 본 닭을 계속 쫓아다녔다. 심지어 알에서 갓나온 새끼오리에게 ‘진공청소기’를 먼저 보여주었더니 그 오리는 죽을 때까지 진공청소기에 강한 애착을 보였다고 한다.
처음 본 것에 대한 강력한 집착은 왜 생기는 것일까. 알에서 갓 태어난 상태란 그 생명체의 일생 중 가장 무기력한 순간이다. 무기력할 때 눈앞에 나타난 대상은 그것이 무엇이든 무조건 절대적 의존의 대상이 된다. 집착의 발원지는 눈앞의 대상이 아닌 생명체의 ‘무기력함 그 자체’인 것이다. 정도에 차이는 있지만 이러한 ‘각인’에 따른 집착은 인간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YS는 박종웅의 정치적 ‘각인’ 대상으로 보인다.
물론 YS의 정치이력을 돌이켜볼 때 그는 많은 사람에게 ‘각인’의 대상이 되었을 개연성이 높다. 박종웅만 YS를 그렇게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자기 살길을 위해서 도회지로 떠난 형들과는 달리 시골에 있는 노부모를 극진히 모시는 효성 지극한 아들처럼 박종웅만 YS에 대한 끝없는 의리를 강조한다.
“79년에 상도동 막내로 정치에 입문한 후에 YS 밑에서 정치를 배웠고 2번이나 국회의원을 했다. 그런 내가 어려운 처지에 놓인 그분을 외면하고 마음이 편할 수 있나. 비판받지 않고 마음이 불편한 것보다는 비난받더라도 마음이 편한 게 낫다고 생각했다. 의리라기보다는 내 마음이 편한 길을 택한 셈이다.”
떠난 형들에 대한 심리적 우월감과 분노의 감정도 튀어나온다.
“김전대통령을 모신 사람이 많고 혜택받은 사람도 많은데 왜 나만 끝까지 남아 모시느냐고 묻는데 남아 있는 사람한테 묻지 말고 떠난 사람한테 물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몸을 사리면서 ‘내가 언제 민주계였냐’는 듯 행동하는 인사들을 접할 때면 유감을 넘어 분노까지 느낀다.”
그가 유난히 ‘소신’을 강조하는 정치인이 된 심리적 근간이기도 하다. 그는 ‘사람에게는 소신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고 말한다.
“YS 때문에 욕을 먹는다고 해도 절대 기죽지 않는다. 정치인이 여론에 끌려가다 보면 아무 일도 못한다. 옳다 싶으면 소신을 갖고 밀어붙여야 한다. 내가 YS을 모시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주춤거리거나 망설이지 않는다.”
YS를 닮은 불퇴전의 용기
YS를 꼭 닮은 듯한 불퇴전의 용기, ‘돈키호테형 소신’이라 할 만하다. 그의 믿음에는 추호의 망설임도, 나약함도 엿보이지 않는다. 씩씩해서 좋기는 하다. 문제는 자기확신이 지나치면 맹목이 되고 맹점(blind point)이 생기기 쉽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균형감각을 상실하게 한다.
김대중 대통령에게는 지금까지 자신있게 내놓을 만한 개혁조치가 거의 없다는 게 박종웅의 진단인데 그 이유가 재미있다. YS가 대부분의 개혁을 다 해버려 더 할 것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고려대앞 용변문제나 독재자 발언, ‘김정일회장 김대중전무’등의 발언은 문제가 생길 소지가 있어 자신이 ‘예의없이’ YS에게 브레이크를 걸었단다. 물론 YS는 전혀 개의치 않고 ‘내질러’버렸다. 그러자 박종웅은 YS의 깊은 뜻을 헤아려 사람들에게 전파한다.
“YS대통령은 그냥 막 나오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생각을 하시고 하는 얘기예요. 대통령이 그렇게 말씀하실 때는 그냥 질러버리는 말씀이 아니라니까. 나름대로 다 계산이 있어서 하시는기라.”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민국당이 출범하자 부산출신 의원들은 좌불안석으로 박종웅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가 바로 YS의 바로미터이기 때문이다. 그의 탈당여부에 관해 많은 사람이 질문을 했지만 자기 배우자를 고르는 일에 나 몰라라 뒷짐을 진 채 오로지 부모님 의사에 따르겠다는 사람처럼 그는 모든 것을 YS의 처분에 맡겨버린다.
“YS가 침묵하기 때문에 나도 침묵할 수밖에 없다. 나는 각하가 민국당에 가라면 갈 것이고 그냥 한나라당에 남으라면 남을 것이다. 그러나 각하가 입장표명을 할지 안할지, 한다면 어느 시기에 어떤 방법으로 할지는 전혀 모르겠다.”
단두대에 목을 내밀고 칼날만 바라보는 꼴이다.
이 부분이 박종웅의 소신과 대중의 인식이 첨예하게 충돌하는 지점이다. 박종웅은 YS의 비서출신인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 세비(歲費)를 받는 3선 국회의원이다. 세비란 국가기관이 1년간 쓰는 비용을 말한다. 그러니까 박종웅은 그 자체로 국민을 대표하는 독립된 헌법기관이라는 말이다.
국회의원을 예우하는 데 소요되는 간접비를 제외하고도 국회의원 1명이 연간 소요하는 국민의 혈세는 직접비만 2억2000만원 정도란다. 의원의 세비와 의원을 보좌하는 5명의 보좌관에 대한 인건비만 그렇다. 이런 ‘독립된 헌법기관’이 YS라는 개인의 ‘비서’노릇에 더 충실한 듯한 느낌이 든다면 누구든 분통과 짜증이 생기기 않을 도리가 없다.
사람들의 요구는 간단하다. 박종웅 자신의 소신을 충분히 존중할 테니까 국회의원은 그만두고 YS의 대변인 노릇만 하라는 것이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에 의거하여 YS의 곁에서 YS를 보좌하는 일만으로 나랏돈을 받는 사람이 몇 명씩이나 있는데 왜 박종웅이 국회의원 자격으로 ‘비서질’을 하느냐는 것이다.
한나라당 동료의원들도 3선의원이 여의도에 근거지를 두고 전직 대통령에게 정치권 안팎의 동향을 보고하고, 정치권 및 국민에 대한 YS의 의견을 직·간접적으로 전달하는 ‘상도동 대변인’역을 수행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박종웅은 나름의 논리를 내세워 자신의 입장을 해명한다.
첫째는 자신이 YS의 대변인 노릇을 하면서 한번도 의정활동을 소홀히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내가 매일 상도동에 출근하는 줄 아는데 그렇지 않다. 어떤 때는 전화 한통화로 끝나기도 한다. YS도 내가 바쁘다는 걸 감안해 웬만하면 전화로 해결한다. 7시 아침식사로 끝나는 때가 많다. 급한 일이 있어도 10분, 20분이면 끝난다. 한 주에 골프 한번 치는 시간보다 적다.”
그러나 YS를 수행하는 일과 국정이 겹치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아무렇지 않게 두 가지 일이 동시에 일어나면 YS 일을 먼저 할 것이라고 말한다.
불이익과 고통도 감수
둘째는 자신이 YS를 돕는 것은 인간적인 의리뿐만 아니고 정치적인 소신과 대의에 따른 일이라는 것이다. 자신은 국회의원인 동시에 정치인인데, 야당이 약해서 여당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는 걸 YS가 대신하고 있기 때문에 그걸 돕는 것은 정치인에게 무척 중요한 일이라는 논리다. 어느 네티즌의 격려처럼 아무 표시도 나지 않는 보조의 자리에서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인이 가져야 할 자세라는 것이다.
YS 옆에서 두 손을 공손하게 모은 채 YS를 수행하는 박종웅을 보고 있노라면 70년대 어느 재벌기업 회장의 운전기사 생각이 난다. 오랫동안 회장님을 충실하게 보좌한 공으로 그 운전기사에게 중역의 직책을 주었단다. 당시 그 재벌사의 중역들에게는 운전기사가 딸린 자동차가 지급되었다니 당연히 뒷얘기가 궁금해진다. 회장님 전속 운전기사는 자신의 운전기사가 운전하는 자동차를 타고 회장님 집까지 출근한 후 그때부터 회장님 차를 운전했다는 것이다.
전설 속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그 운전기사를 희화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단지 YS와 박종웅의 관계가 연상되어서 해보는 얘기다. 아무리 박종웅이 강변해도 YS라는 전직대통령의 대변인 노릇을 하기엔, 국회의원이라는 자리가 너무 무겁다. 혹시 박종웅은 자신의 비서들이 YS의 비서노릇을 하고 있는 그들의 보스를 바라보면서 어떤 느낌을 가졌을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YS에 대한 정치적 소신을 지키기 위해서 박종웅이 감수해야 하는 불이익이나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3선의 중진의원이지만 한나라당의 당직과 국회직 인사에서 철저히 소외되고 있다. 상임위 인선에서도 1순위로 지망했던 통일외교통상위원회 배치에 물을 먹고 2순위인 문화관광위도 간신히 확보할 정도로 설움을 톡톡히 당했다.
그러나 그는 이총재가 YS를 예우하지 않으면 한나라당과 타협할 생각이 추호도 없으며, 당직이나 국회직 같은 조그만 것에 연연하지 않으면서 큰 정치를 지향하겠다고 말한다.
짜증과 분노가 섞인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으면서 YS를 변호하는 일에 ‘혼자서 수비도 하고 공격도 하느라’ 힘들기는 하지만 그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단다. 안팎의 박해(?)를 받을수록 그의 소신은 점점 굳건해진다. 순애보적인 사랑을 하는 두 남녀는 주위사람들의 반대에 부딪칠 때 그들의 사랑이 더 진실되고 견고해지는 것과 같다.
그러나 사람들의 반대가 많다고 해서 그 사랑이 반드시 진실하고 아름다운 것은 아닐 터. 혹시 박종웅은 이 ‘역의 논리’를 진리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가 없는 아기는 음식물을 주면 그대로 삼킨다. 그러나 이가 있는 어른은 음식물이 입으로 들어오면 잘게 씹어서 삼킨다. 정신적으로 성숙한 사람은 타인의 생각이나 견해를 그대로 삼키는 사람이 아니라 잘게 씹어 자신의 것으로 소화시키는 사람이다. 씹지도 않고 그대로 삼키다 보면 언젠가는 반드시 복통이 생기는 법이다. 미성숙한 아기처럼 씹지도 않고 꿀꺽 삼키는 행위까지 ‘정치적 소신’이라고 우기는 건 정말 곤란하다.
자신이 존경하는 인물의 인품이나 가치관을 흠모하여 그와 동화하려는 희망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나와 남의 경계도 없는 사람이 돈키호테식으로 자기 확신을 남에게 밀어붙이는 일을 지켜보는 건 피곤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박종웅은 사람들의 비난이 쏟아질 때면 ‘만약의 경우 YS를 모시고 이렇게 가다 가 잘못되면’ 자신도 정치판을 떠날 것이라고 비장하게 말하곤 한다. 그러나 박종웅이 이런 군신지의(君臣之義)나 ‘정치적 소신’을 강조하는 일보다 더 먼저 할 일은 ‘나와 내가 아닌 것을 구별하는 능력’을 키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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