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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팔로군 출신 기공 연구가 윤금선

“울며 태어났는데, 살며 울 일 많았는데, 갈 땐 울지 말아야지…”

중국 팔로군 출신 기공 연구가 윤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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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팔로군 출신 기공 연구가 윤금선

기공수련에 열중한 윤금선씨.

밥은 세 끼를 줬지만 수수쌀 아니면 옥수수밥이었다. 물이 없어 말 오줌을 마시는 건 늘 있는 일이었다. 그냥 행군만도 아니었다. 짐을 져야 했다. 다른 보급수단이 있을 리 없었다. “길쭉한 자루를 기워서 제 먹을 식량을 넣어 각자 어깨에 메요. 이런 말은 한번도 한 적 없지만, 인민군들은 각량이라고 해서 동전을 길쭉한 자루에 넣어 메고 다녔어요. 전사들은 아니고 간부들만 그 돈을 70개씩 자루에 넣어서 멨어요. 그건 국민당이 다스리던 마을에 들어가면 그들에게 물건값을 치르기 위한 돈이었어. 우리는 물 한 모금도 인민의 것을 공짜로 취하는 법이 없었거든요. 이불을 또 한 꾸러미 메고 약통도 메고…간부일수록 짐이 무거웠다구.”

인민부대 안에서 구타나 징벌 같은 건 상상할 수도 없었다. 전사들을 진정 금쪽같이 위해줬다.

“간부는 사병의 머슴이란 생각이 투철해요. 나중 6·25 때 우리나라 군인들이 아랫사람을 구타한다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어. 아니 파시스트 군대처럼 왜 사람을 패요? 인민군대는 사병을 팼다가는 군사재판감이지. 조국을 위해 청춘과 생명을 바치러 나온 사람을 패기는 왜 패요?

장제스 부대는 기계화 부대였어. 미국이 무기를 대줬거든요. 하지만 우리는 ‘보총’이라는 길다란 구식 총밖에 없었어. 팔로군은 그걸로 결국 장제스 부대를 물리쳐서 본토에서 내쫓아버렸지. 그게 1949년 10월1일이었어. 마침내 전쟁이 끝난 거지요.

그리고 이듬해 한국에서 전쟁이 났지요? 내가 어디로 갔냐고? 그건 차마 발설할 수 없어요. 아직 아이가 넷(3남 1녀)이나 중국에 살고 있으니 그들에게 해가 가면 어떻게 해. 그저 말로는 다 못할 고초를 겪었다고만 해둡시다. 그 후 6·25전쟁이 끝난 1954년에 제대했어요. 그러니 군생활 내내 최전선에만 있었던 셈이지.”



“내가 우황청심환 팔러 왔나”

소녀 윤금선은 2000년 서울로 돌아왔다. 어머니가 아흔둘의 나이로 중국 창춘(長春)에서 돌아가시며 유언을 했다.

“내가 비록 몸은 여기서 죽지만 죽은 몸일랑 되놈들 사이에 묻지 마라. 가루 내어 송화강에 뿌려라. 뼛가루라도 내 고향 합천으로 흘러가보고 싶다….”

어머니가 그토록 그리던 고향이란 도대체 뭘까. 돌아가보고 싶었다. 실은 1992년에 서울에 온 적이 있었다. 그 사연을 말하면서 윤금선은 갑자기 눈물을 보였다. 옆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는 치열한 전투 얘기 때는 담담하기만 하던 그였다.

“당시에는 한국에 나오기가 쉽지 않았어요. 친척의 초청이 있어야 했고 준비하는 데만 1년 넘게 내부 조사를 받아야 했거든요. 그런데 비자 시효가 석 달밖에 안 돼요. 청주 사는 친척이 초청해 나오긴 했는데 법무부에서 석 달 만에 떠나래요. 떠나려니 내 마음이 대단히 섭섭하더라고요.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에 가서 항의했지요. 60년 만에 고향을 찾아온 사람을 이렇게 개 쫓듯이 내쫓는 법이 어디 있느냐, 내가 중국에 밥이 없어 온 것도 아니고 옷이 없어 온 것도 아니다. 내가 무슨 우황청심환이나 팔려고 온 사람인 줄 아느냐. 고향의 기운을 느끼고 고향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왔는데 어찌 이리 천대하느냐고.”

그때 청와대 비서실에 근무하던 김선호라는 사람과 연락이 닿았다. 김씨는 소설 ‘단’의 주인공인 권태우 옹의 수제자로 기공수련의 고단자였다. 이미 중국에서 그를 한번 만난 적도 있었다.

김씨는 출국을 연기해준 건 물론, 청와대에 데리고 가 국무위원들의 병을 보게 했다. 그는 중국 의사였다. 군 제대 후 창춘 관성 병원의 중서의(中西醫) 결합의사로 20년 넘게 근무했다. 서양의학과 한의학을 함께 공부했고, 게다가 의사 재직 중 세계 최고의 대기공사 엄신 선생 문하에서 기공술을 배웠다. 동서양 의학의 결합에 기공이란 미세한 에너지 의학까지 통달한 기술이니, 김선호씨가 그의 기술을 아까워하고 자랑스러워했을 만하다.

그해 청와대에 들어가 문화부 장관과 외무부 장관의 병을 봤던 기억이 있다. 그 가족들의 병도 봤다. 처방도 떼고 음식과 운동법을 가르쳐줬다. 당뇨병이 중해 눈에 합병증이 온 장관에게는 국화꽃을 가만히 오래 들여다보라는 묘방도 내려줬다.

“내가 특이공능(굳이 말하자면 초능력에 속하는 어떤 힘이다)이 있거든요. 병을 봐줬더니 그 사람들이 신기해하면서 할머니 이걸로 음료수나 사 드세요, 하면서 주머니에서 종이를 몇 장 꺼내줘. 지금 생각하면 그게 수표였다고. 내가 여기 돈을 아나, 그걸 선호가 모아놨다가 나중에 중국으로 별걸 다 부쳐주데요. 당시만 해도 창춘에는 냉장고니 텔레비전이니 하는 게 없었어. 그런 낯선 물건에다 전자레인지까지 다 사서 보내주더라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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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 자유기고가 psyche325@hanmail.net / 사진·김성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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