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나리오가 재미있었어요. 우디 앨런의 영화 스타일을 좋아하는데 딱 그런 느낌이었어요. 영화가 방송국 스튜디오라는 한 공간에서 진행되기에 연극적인 요소도 강하고요. 이런 영화는 배경이 약하기 때문에 그만큼 배우가 끌고 가는 힘이 중요해요. 도전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 영화를 위해 창도 배웠다던데요.
“목에서 피를 토한 후에야 창을 제대로 할 수 있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감독님께 시켜만 주신다면 피를 토할 때까지 연습하겠다고 했어요. 석 달 동안 죽어라 연습했는데, 그걸로는 턱도 없는 모양이에요. 목에서 피 한 방울 안 나왔어요(웃음).”
▼ 다른 작품을 할 때도 그렇게 사전 준비를 철저하게 하나요.
“‘좋지 아니한가’를 처음 찍을 때는 캐릭터가 안 잡혀 고생했어요. 제가 예쁘게만 보이고 싶었던 모양이에요. 고민 끝에 촬영을 중단하고 고등학생 느낌을 익히러 1주일 동안 진짜로 고등학교에 다녔어요. 열일곱 살 아이들이랑 똑같이 생활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세요? 아침 8시까지 학교 가는 게 제일 힘들었어요. 처음엔 저를 쳐다보는 학생들 시선을 무시할 수 없어 자세도 바로하고 그랬는데, 3일째 되니까 애들이랑 똑같아지더라고요. 수업시간에 졸고, 애들이랑 쪽지도 주고받고…. 감독님이 왜 학교에 가라고 했는지 알겠더라고요. 그 덕에 용선이의 풋풋한 모습을 살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영화를 끝내고 쉴 때는 뭘 하나요.
“보통은 혼자 여행을 해요. 카메라 하나, 메모지 한 권 들고요. 이번엔 중국 창춘(長春)엘 갔는데, 전에 한 번 갔던 곳이라 별로 무섭지는 않았어요. 그냥 돌아다녔어요. 걸으면서 냄새도 느껴보고, 저녁엔 혼자 술 마시고, 자고…. 우리나라 1950~60년대 느낌이 나는 곳인데, 그런 느낌, 그 냄새가 좋아요. 중국의 재래시장을 구경 다니는 것도 좋고요.”
“저도 제가 미스터리예요”

황보라는 영화 ‘좋지 아니한가’에서 엉뚱한 여고생 용선 역을 리얼하게 연기해 부산영평상 신인상을 수상했다.
“고등학교 때 영화배우 차태현 팬사인회에 갔다가 연예계 관계자의 눈에 띄었어요. 그분 제안으로 고2 때 서울로 전학을 와 동국대 영연과에 진학했죠. 정식으로 연기자가 된 건 2003년 SBS 공채 탤런트가 되면서였고요.”
▼ CF로 얼굴을 알린 게 2005년이니까 2년 정도 무명 시절이 있었는데, 포기하고 싶은 생각은 안 들던가요.
“행인1, 행인2 등 단역으로 출연했을 뿐 이름 석 자를 알릴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땐 매니저도 코디도 없이 촬영 스태프 차 얻어 타고 촬영장으로 가곤 했어요. 그래도 저에 대한 확신이 있어서 힘들지는 않았어요. 언제 어떤 캐스팅 제의가 들어올지 모르니까 항상 ‘준비된 연기자’여야 한다는 생각에 끊임없이 연극, 영화를 보며 캐릭터 연구를 했어요. 힙합, 재즈댄스, 탭댄스 등 안 배운 춤이 없어요.”
그의 매력은 큰 눈과 두툼한 입술이다. 어머니를 닮았다고 한다.
“외모 때문에 그동안 코믹하고 엉뚱한 이미지의 연기를 많이 했는데, ‘황보라는 원래 성격이 그렇다’ ‘엽기적이다’라는 기사를 보면 마음이 아파요. 작품에 임할 때마다 정말 고민하고 또 고민해 그 배역에 맞는 캐릭터를 만들어내요. 지금까지는 제게 주어진 배역이 그랬던 거지, 그 배역 자체가 황보라는 아니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은 여전히 용선이=황보라=왕뚜껑으로 생각해요. 기존의 이미지가 제 내면의 모습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요.”
▼ 그럼 스스로 생각하는 황보라는 어떤 사람인가요.
“정말 모르겠어요. 저도 제 자신을…. 그냥 ‘미스터리’라고 할까요(웃음).”
▼ 나이에 비해 동안(童顔)인 게 연기하는 데는 장애로 느껴집니까.
“요즘 그걸 많이 느껴요. 나이가 있으니까 이것도 해보고 싶고 저것도 해보고 싶은데 늘 어린아이 역할만 들어오니까요. 그런 고정관념을 깨려고 해요. 지금 찍고 있는 영화 ‘라듸오 데이즈’도 처음에 제안받은 역할은 어린애였어요. 그래서 감독님께 ‘작품이 좋아서 꼭 하고는 싶은데, 이번엔 무조건 어른 역을 맡고 싶다. 내 나이가 20대 중반인데 언제까지나 17세로 살 수는 없지 않으냐’고 했어요. 그러니까 ‘그럼 명월이는 어떠냐?’ 하시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