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바리데기’ 표지.
“젊은이란 불확실성의 안개에 둘러싸여 있는 존재고 선택에 따라서는 무한한 자유와 엄청난 억압에 짓눌려 있다. 성인이 되는 길은 독립운동처럼 험난하고 외롭다. 대부분 그 무렵의 연애는 첫사랑이라고 불려지면서 애처롭게 좌절하게 되어 있다. 이 소설에서 나는 사춘기 때부터 스물한 살 무렵까지의 길고 긴 방황에 대하여 이야기할 것이다. ‘너희들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끊임없이 속삭이면서도 다만 자기가 작정해둔 귀한 가치들을 끝까지 놓쳐서는 안 된다는 전제를 잊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너의 모든 것을 긍정하라고 말해줄 것이다. 물론 삶에는 실망과 환멸이 더 많을 수도 있지만 하고픈 일을 신나게 해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태어난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말에도 리듬이 있다”
▼ ‘개밥바리기 별’ 서두에 군대 이야기가 나옵니다. 거기서부터 과거로 돌아가는 방식인가요.
“제1장에서 주인공 준이는 베트남 전쟁터로 출발하면서 ‘내 청춘이 막을 내린다, 끝이다’는 인식을 갖습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으로 돌아가서 되짚어 올라오는 식으로 진행될 겁니다. 아직 독자들은 눈치를 못 챘을 텐데요. 2장에는 1장에서 거론된 인물 중에 누군가가 화자로 등장해 자신이 겪은 준이와의 일을 객관적으로 진술합니다. 3장에선 다시 준이, 4장에선 또 다른 화자가 등장하겠죠. 그렇게 해서 주인공의 객관적인 여러 모습이 나올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 서술 방식이 독특하군요.
“사실 내레이터가 여럿 등장하는 것은 민담에도 많이 나오는 방식입니다.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묵도 ‘내 이름은 빨강’에서 그런 기법을 잘 사용했고, 윌리엄 포크너도 ‘내가 죽었을 때’에서 비슷한 방식을 썼어요.”
사실 그는 이런 방식을 종종 사용해왔다. ‘손님’ ‘심청, 연꽃의 길’ ‘바리데기’에서 세계적인 현실이나 현상을 우리 전통양식에 담아내는 실험들을 해왔다. ‘오래된 정원’에서는 과거의 서술체계를 해체해서 서술문과 독백체 서간문, 1인칭이 서로 엇갈리는 양식적 변화가 드러난다. 주인공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그대로 진술되거나, 세밀한 묘사도 과감하게 축약되고 장면 전환도 빨라졌다.
▼ 조만간 ‘한겨레’에 새 소설을 연재한다는 얘기가 있더군요.
“하반기쯤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주제는 오래전에 생각한 겁니다. 서울 강남 형성사. 우리 사회 욕망의 뿌리, 한국 자본주의 근대사를 한 가족의 부침을 통해 그려볼까 합니다. 한국형 중산층이 바로 거기서 탄생했거든요.”
그의 글은 밑줄 치면서 읽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좋은 문장이 많다. ‘바리데기’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나는 사람이 살아간다는 건 시간을 기다리고 견디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늘 기대보다는 못 미치지만 어쨌든 살아 있는 한 시간은 흐르고 모든 것은 지나간다.’
▼ 소설가 지망생들이 문장 공부할 때 황 선생 소설을 베껴 쓴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좋은 문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건가요.
“우선 정확한 문장이 중요합니다. 사실 나는 문장론을 그다지 강조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문장은 독서하는 사이 저절로 배거든요. 특히 고전을 많이 읽으면 좋습니다. 저는 ‘장길산’을 쓰면서 학습을 많이 했습니다. 그때 우리말에도 리듬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즉 문장을 쓸 때 저는 그 리듬을 중시하고, 같은 단어를 가까운 행에서 반복하지 않고 다른 표현을 쓴다는 정도만 염두에 둡니다. 사람은 누구나 독서 많이 하고 경륜이 생기면, 편지로 자기 생각을 잘 전달할 수 있는 정도만 돼도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봐요. 감각이니 작품이 주는 인상 같은 것은 바로 구성에서 옵니다. 결국 좋은 구성이 좋은 글을 만드는 셈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