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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마스터’ 이창후

“태권도 잘 하는 게 ‘유식함’이라는 걸 보여주겠다”

‘블루 마스터’ 이창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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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마스터’ 이창후

새파란 파카를 입고 태권도 자세를 취한‘파깨비’ 이창후씨

초등학교 시절 1품을 따고는 한동안 잊고 지내던 태권도를 다시 시작한 건 대학에 들어오고부터. 학교 태권도부에 가입했다가 운명처럼 이광희 사범을 만났다. 서울대 사학과 64학번인 이씨는 10여 년간 중동 건설현장에 나가 있다 마침 그 해 귀국해 후배들의 연습장을 찾은 터였다. 그런데 그의 움직임이 남달랐다. 그동안 보아온 발차기, 주먹지르기가 아니었다. 수련을 마친 후 이어진 막걸리 파티 자리에서 이 사범의 한 마디가 가슴을 쳤다.

“태권도는 스포츠가 아니다. 무술이다. 남이 보기에 멋있고 화려한 동작은 필요 없다. 절제된 동작에서 가장 효율적인 공격이 나온다. 밤길을 걷고 있는데 깡패가 몇 명 따라 붙었다. 무기는 없다. 어떻게 싸울 것인가. 주머니에 있는 열쇠꾸러미를 손에 쥐고 상대방의 얼굴을 한번 그어보라. 칼 휘두른 것과 똑같은 공격효과가 나온다. 주먹만 휘두르는 것보다 훨씬 파괴력이 크다. 이것이 무술이다. 목숨 걸고 해야 한다.”

태권도에 빠져드는 순간이었다. 다시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그의 자기소개를 보자.

‘초등학생 때 삼국지를 탐독하다 병법 독심술 화술에 관심을 갖기 시작. 칼 쓰는 법과 중국의 비전 무술, 점술과 관상에 능하다.’

▼ 일찍부터 무술에 관심이 많으셨군요.



“어릴 때 꿈꾸는 건 누구나 비슷한 것 같아요. 중국 무술영화 같은 거 보면서 ‘아, 저것만 배우면 천하무적일 텐데’ 생각하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저는 싸움 못하고 겁도 많은 아이였어요. 울기도 많이 울었죠.”

▼ 맞고 다니는 편이셨나요?

“너무 겁이 많은 애는 맞지도 않아요. 적당히 자신이 있어야 덤비다가 맞는 거지, 저는 미리 눈치보고 주눅 드는 쪽이었어요. 상대방이 때리기도 전에 심리적 압박에 못 이겨 우는 거죠.”

실전 태권도

성인 남자가 됐을 때 무엇이든 운동을 하나 해야겠다는 마음이 간절했던 건 이 때문이다. 대충이 아니라 제대로, 이 사범의 말처럼 ‘목숨 걸고’ 하고 싶었다. 그는 태권도를 제대로 하려면 기본동작 중 하나인 ‘주춤 서 몸통지르기’를 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을 듣고 3년간 이 동작만 반복했다. 양 다리를 어깨 넓이 이상으로 벌리고 말 탄 자세로 구부려 앉아 주먹으로 정면을 지르는 동작이다. 허리에 놓인 주먹을 곧장 직선으로 뻗으면 안 된다. 허리를 틀어 어깨와 주먹을 뒤로 뺐다가 다시 앞으로 밀어 온몸을 격렬하게 비트는 게 중요하다.

“뻣뻣하게 주먹만 지르는 것은 위력이 없습니다. 하체를 낮춘 후 어깨의 힘을 빼고 허리를 비틀어야 주먹에 온몸의 힘이 실리게 되죠.”

그는 많은 사람들이 태권도를 배우고도 정작 필요할 때 쓰지 못하는 이유는 ‘제대로 수련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곱상하게 생긴 손등 마디마디마다 굳은살이 딱딱하게 맺혀 있다. 끝없는 정권 단련의 흔적이다. 그는 수련을 계속하다보니 특전사를 제대할 무렵부터는 ‘인간으로부터의 폭력’에 대한 공포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말했다. 지금 그의 내공은 “술집에서 한 잔 할 때 옆 테이블에서 와장창 소리가 나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수준이다.

“특전사 사람들이 우락부락하잖아요. 고등학교 때 반에서 제일 잘 싸우던 애들만 모아놓은 것 같은 분위기인데, 그 사람들하고 겨루기해도 제가 차면 다 맞더라고요. 태권도가 정말 실전성이 있구나. 내 몸을 내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구나 라는 걸 실감했죠.”

이쯤해서 그의 시범을 보기로 했다. 서울대 태권도부 훈련실로 자리를 옮겼다. 하얀 도복으로 갈아입은 그가 까만 띠를 매고 나온다. 가끔 “파란 도복을 입으면 안 됩니까. 아예 파란 띠를 매면 어떻습니까”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태권도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태권도는 무술이면서 동시에 정신이기 때문이다. 하얀 도복과 까만 띠, 도장마다 걸려 있는 태극기 안에는 나름의 이유와 철학이 담겨 있다는 게 그의 말이다. 태극기에 인사하고, 진지한 자세로 끈을 당긴 뒤 그가 발차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뭔가 어색한 느낌이다. 쭉쭉 시원스레 뻗어나가는 대신 어딘지 모르게 엉거주춤하다.

▼ 좀 더 위로 쭉 뻗어 차실 수는 없나요. 이게 그림이….

“이것도 사진 찍는 데 맞추려고 최대한 높이 차는 건데요. 실제 상황에서는 절대 발을 위로 찰 필요가 없습니다. 위력도 없고 상대방에게 잡히기만 쉬워요. 그러다 잡혀서 넘어지면 어떡합니까. 발을 위로 올리는 건 무술에서는 금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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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화선│동아일보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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