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과 비과학을 넘나들고, 예악과 비술에 통달한 그에게선 조선시대 도사의 풍모가 풍긴다. 남다른 주도(酒道)를 봐도 그렇다. 그는 지난 30년간 매일 저녁 한 끼는 밥 대신 술로 해결해왔다. 술을 매일 마신 건 어린 시절부터지만, 그전엔 일반인처럼 식사를 먼저 한 뒤 술을 들었다.
“마흔이 되어가면서 갑자기 살이 많이 쪘어요. 체중 조절 때문에 밥과 술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겁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술이었지요.”
밥은 아침 한 끼만 먹고 점심은 굶었다. 저녁은 소주 한 병을 기본으로 삼았다. 안주는 볶은콩과 황태채 등 가벼운 것만 곁들이고, 취기가 덜 오르면 맥주 2~3캔을 보태 마셨다. 처음엔 이 정도로 충분했다. 그런데 소주의 도수가 점점 낮아지면서 문제가 생겼다. 맥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된 것이다. 도리 없이 기본을 소주 두 병으로 올렸다.
▼ 그렇게 매일 함께 술을 드실 친구 분이 계신가요?
“아. 지금 말씀드리는 건 집에서 저녁 먹을 때에 한정된 겁니다. 밖에서는 두주불사, 양껏 마시지요. 하지만 집에서는 정량이 있어야 하니까 원칙을 정해둔 거예요.”
▼ 예순이 넘은 지금도 그 식습관을 유지하시나요?
“한 2년 전부터 주종을 막걸리로 바꿨다가 지금은 마시지 않아요. 언제부턴가 바둑을 두면 자꾸 지는 겁니다. 평생 자신 있던 게 안 되니 왜 이러나 싶더군요. 저녁도 안 먹으면서 매일 소주를 두 병씩 마셔서 그런가 싶어 그만뒀더니 확실히 훨씬 좋습디다.”
‘샹그릴라’를 보다
처음엔 1700ml 들이 막걸리를 한 병씩 비웠는데, 그도 좀 많은 것 같아 다시 1200ml 들이로 바꿨다. 막걸리가 웰빙식품으로 알려져 선견지명 있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지금은 가내 음주는 자제하고 있지만 밖에서는 여전히 술을 즐긴다.
“주선이라 불러도 부족하지 않을 것 같다”고 말을 건네자 이번엔 맨정신으로 선경(仙境)을 본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는 소설 ‘단’이 화제를 모으던 무렵부터 명상 수련을 시작했다. ‘저건 뭘까. 하면 재미있을까’ 하는 예의 호기심에서 시작한 일이다. 수련단체에 가입해 호흡과 명상을 익힌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놀라운 체험이 찾아왔다. 밥을 먹지 않아도 기운이 넘치고, 추위를 타지 않게 됐다. 정원의 꽃 냄새가 생생하게 살아나고, 세상은 환한 빛으로 가득했다. 주변 모든 것이 한없이 아름다워, 신비의 세계 ‘샹그릴라’가 바로 여기구나 싶었다.
“가장 친한 친구한테도 말 못할 신비한 능력도 생겼어요. 이 정도만 얘기합시다. 숨을 들이쉬면 끝없이 숨이 들어가요. 내쉬면 또 끝없이 나옵니다. 아예 안 쉬어보면 어떨까, 물론 상관없지요. 내 몸이 이 세계를 벗어나는 느낌이었어요. 육신이 의미 없는 차원에 있었던 건지도 모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