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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 체계 세우고 후학 양성 주력한 교육자 이황…사상과 정책 아우른 현실참여 지식인의 표상 이이

이황과 이이

성리학 체계 세우고 후학 양성 주력한 교육자 이황…사상과 정책 아우른 현실참여 지식인의 표상 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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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의 완전한 이해

내 능력으로 이들의 논쟁을 상세히 검토하기는 어렵다.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두 사람 사이에 오간 편지들이 당시 지식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이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논쟁다운 논쟁이 제대로 벌어지고 이에 지식사회가 호응함으로써 학문적 공론장이 활성화됐다고 볼 수 있다.

국면사적 시각에서 조선사회는 개국 이후 세종에서 성종 때까지 안정기를 누린 다음 연산군 이후 침체기에 들어갔다. 이후의 과정은 일련의 사화(士禍)에서 볼 수 있듯이 격렬한 권력투쟁으로 점철됐다. 이러한 침체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새로운 국가비전이 제시돼야 했는데, 이 역사적 과제를 담당했던 이가 다름 아닌 정암 조광조였다. 하지만 패기만만했던 조광조의 정치적 기획은 훈구파에 의해 이내 좌절됐고, 권력투쟁은 기묘사화와 을사사화에서 볼 수 있듯이 더욱 어지러운 양상을 보였다. 이황의 학문 연구가 진행되던 시대 상황은 바로 이러했다.

“옛 성현도 나를 보지 못하고 나도 또한 옛 성현을 뵙지 못했네

옛 성현을 뵙지 못해도 그분들이 가던 길이 앞에 놓여 있네



가던 길이 앞에 있는데 나 또한 아니 가고 어떻게 하겠는가.”

이황이 63세에 쓴 시가인 ‘도산십이곡’ 가운데 하나다. 그는 학문에 전념하면서도 종종 시를 썼다. 도산십이곡은 앞의 6곡인 언지(言志)와 뒤의 6곡인 언학(言學)으로 이뤄져 있는데, 언학의 하나인 이 작품에는 학문에 대한 이황의 태도가 잘 드러나 있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이건 지식인의 본령은 진리 탐구에 있으며, 이러한 진리 탐구에서 일차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선행 사상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와 체계적인 비판이라 할 수 있다.

시대적 상황이 혼돈스러울 때 지식인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두 가지 방법이 가능하다. 하나는 적극적 참여를 통해 그 상황을 변화시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그 상황에서 물러나 학문적 연구에 전념하는 것이다. 이러한 지식인의 선택은 주체의 의지에 따라 이뤄지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자신이 놓인 구조적 조건과의 상호관계 속에서 결정된다. 천성적으로 학문하기를 좋아하기도 했으나 이황이 놓인 시대적 상황은 정치보다는 학문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조건이 강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우리 역사에서 고려 말기에 수입된 성리학은 적어도 이황 시대까지 온전하게 이해됐다고 보기 어렵다. 이황이 가졌던 문제의식은 일차적으로 성리학에 대한 심도 있는이해와 이를 기반으로 한 왕도정치의 구현에 있었다. 여기에는 사림파에 큰 영향을 드리운 조광조의 좌절로부터 얻은 교훈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올바른 통치를 위해 먼저 올바른 학문을 세우고 이 학문을 이어갈 후학을 양성하는 것이 이황에게 부여된 시대적 소명이었으며, 이황은 이를 탁월하게 수행했다.

일본 유학 발전에 영향 끼쳐

이황이 남긴 저작들은 ‘퇴계전서’에 집약돼 있다. 이 가운데 내가 특히 주목하고 싶은 저작은 ‘성학십도(聖學十圖)’다. 이황은 68세가 되던 해 17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한 선조에게 군주에게 요구되는 학문의 핵심을 열 개의 도표로 정리한 책을 올렸는데, 이것이 바로 ‘성학십도’다. 이 책은 서론 격인 ‘진성학십도차’와 ‘태극도’ ‘서명도’ ‘소학도’ ‘대학도’ ‘백록동규도’ ‘심통성정도’ ‘인설도’ ‘심학도’ ‘경재잠도’ ‘숙흥야매잠도’ 등 10개의 도표로 구성돼 있다.

이 가운데 7개는 앞선 학자들이 만든 것을 고른 것이지만, 소학도·백록동규도·숙흥야매잠도의 3개 도표는 이황이 직접 만든 것이다. 더불어 주목할 것은 심통성정도인데, 여기서 이황은 사단칠정과 이기론을 다루고 있다. ‘성학십도’가 갖는 의의는 성리학에 대한 이황의 이해가 대단히 깊었다는 데 있다. 한국철학을 전공하지 않은 내게 그 평가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지만, ‘성학십도’를 통해 비로소 조선의 주자학은 중국의 주자학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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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 kimhoki@yonsei.ac.kr
연재

김호기 교수가 쓰는 ‘시대정신과 지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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