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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열강 거부한 민족주의적 개혁론자 이건창, 서구적 개혁 추구한 근대인의 초상 서재필

이건창과 서재필

서구열강 거부한 민족주의적 개혁론자 이건창, 서구적 개혁 추구한 근대인의 초상 서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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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열강 거부한 민족주의적 개혁론자 이건창, 서구적 개혁 추구한 근대인의 초상 서재필

조선시대 당쟁을 정리한 이건창의 ‘당의통략’.

민영규 교수도 주목한 이건창의 시 ‘농삿집의 추석(田家秋夕)’은 그의 현실인식을 엿보게 한다.

“남쪽 마을에선 소주를 거르고 / 북쪽 마을에선 송아지 잡네 / 오직 서쪽 이웃집에서만은 / 밤새껏 통곡치네 / 묻노니 그 통곡하는 사람 누구뇨 / 유복자 안은 과부라네 (…)

겨울 나기도 부족하여 / 봄이면 부자집에 가 빌어 / 몇 줌 낟알 얻어온 것 / 한 알도 아껴 먹지 않고 / 종자곡식으로 삼았다오 (…)

매양 굶다보니 / 그녀가 어찌 나무같이 완강하랴 / 남편이 세상 뜨니 / 앞산 기슭에 묻었다오”

당대 농민들의 삶에 대한 생생한 증언이다. 서너 번의 암행어사와 유배 경험은 이건창으로 하여금 농민들의 구체적인 삶과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정약용이 오랜 유배생활에서 당대 현실을 새롭게 발견했듯이 이건창도 몰락해가는 조선사회의 민생 현실을 있는 그대로 목도하고 또 비판했다.



이건창이 남긴 저작으로는 ‘명미당집(明美堂集)’과 ‘당의통략(黨議通略)’이 손꼽힌다. ‘명미당집’이 그가 남긴 작품들을 모은 시문집이라면, ‘당의통략’은 조선시대 당쟁에 대한 연구서다. ‘당의통략’은 조부 이시원이 지은 ‘국조문헌’을 바탕으로 저술한 책이다.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국조문헌’을 간결하게 정리하고 자신의 생각을 덧붙였다. 자신이 소론계 양명학자였음에도 이건창은 가능한 객관적 시각에서 선조 때부터 영조 때까지 당쟁을 검토한다. 이 책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책의 마지막 ‘원론’에서 당쟁의 원인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쟁의 원인으로 이건창은 다음의 여덟 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첫째는 도학이 지나치게 중한 것이고, 둘째는 명분과 의리가 지나치게 엄한 것이며, 셋째는 문사(文詞)가 지나치게 번잡한 까닭이고, 넷째는 옥사와 형벌이 지나친 것이며, 다섯째는 대각(臺閣)이 너무 높은 것이고, 여섯째는 관직이 너무 맑은 것이며, 일곱째는 문벌이 너무 성대한 것이고, 여덟째는 나라가 태평한 것이 너무 오래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선비의 부국강병

‘당의통략’이 갖는 함의는 당쟁에 대한 이러한 분석에서 조선시대 정치에 대한 이건창의 평가와 비판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정치의 본질 가운데 하나는 독일의 법학자 카를 슈미트(Carl Schmitt)도 강조하듯이 ‘적과 동지의 이분법’이다. 문제는 이러한 정치적 적대가 사회적 통합과 함께할 때 의미를 갖는 것이지, 적대만이 일방적으로 강조될 때 그것은 ‘사회를 위한 정치’가 아니라 ‘정치를 위한 정치’, 곧 소모적 정쟁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당의통략’을 통해 이건창이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도 백성을 위한, 사회를 위한 정치의 구현이었다.

이건창과 강화학자들의 삶은 비록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전통과 모더니티의 경계에서 지식인의 존재가 무엇인지를 새삼 돌아보게 한다. 전통에서 모더니티로의 전환이라는 역사변동 속에서 선비의 지조와 절개를 지키며 전통의 쇄신을 통해 부국강병을 모색하려는 강화학자들의 정치적 기획은 결국 좌절될 수밖에 없었다.

역사의 물줄기는 이미 모더니티로 넘어가고 있다는 것, 과거는 지나간 과거일 뿐이라는 것, 연속보다는 단절이 시대적 흐름이라는 것을 포함해 역사의 도도한 흐름 앞에 선 강화학자들은 서구화라는 근대화의 물결에 합류하기를 주체적으로 거부했던 것으로 보인다. 강화학을 이끌던 이건창이 세상을 떠난 후 동료와 후학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이 땅에서, 어떤 이들은 만주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선비로서 기품 있는 고투를 이어갔다.

민영규 교수에 따르면, 일의 성패가 문제가 아니라 동기의 순수성 여부가 문제일 따름이라는 게 양명학의 가르침이다. 결과의 대소고하(大小高下)를 물을 것이 아니라, 질(質)의 참됨만이 지식인의 갈 길이라는 것이다. 이건창은 양명학의 이러한 가르침을 할아버지 이시원에게서 어릴 때부터 아침저녁으로 들었다고 한다.

정치사회학적으로 동기의 순수성과 질의 참됨이라는 메시지는 다름 아닌 지식인이 가져야 할 ‘신념윤리’를 지칭한다. 학문과 정치를 오가던 조선시대 지식인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양명학의 주장은 결과를 중시해야 할 ‘책임윤리’를 과소평가한다고 비판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권력 비판을 소홀히 한 당시 지식사회의 현실을 생각할 때 양명학의 가르침은 치열한 진리에 대한 열망으로 볼 수도 있다. 어둠을 밝힐 수 있는 것은 오직 진리의 빛이며, 그것은 지식인에게 존재의 마지막 거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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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 kimhoki@yonsei.ac.kr
연재

김호기 교수가 쓰는 ‘시대정신과 지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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