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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신드롬의 허상

정치적 메시아가 아닌 ‘정치 로또’에 열광

안철수 신드롬의 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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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방미인형 인물이 정치에 입문하는 것은 필연이다. 한국에서 성공한 중년남자는 대개 정치 외도를 꿈꾼다. 늘 새로운 인물을 찾는 유권자의 성향도 이를 부추긴다. 우리가 한 분야에서 작은 성취를 이룩한 사람을 정치판에 보내지 못해 안달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금 대중이 괴물 취급하는 정치인도 크고 작고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두 한때의 안철수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안철수는 그동안 ‘기업가 정신’을 설파해왔는데 정작 그 자신은 어땠는지 모르겠다. 업을 일으켰으면 그 후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안철수가 살아온 삶으로 볼 때 그 자리에서 홀연히 떠나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의사의 아들인 그가 노벨의학상을 목표로 하거나 한국의 슈바이처가 되는 것이 과연 대통령 안철수가 되는 것보다 못한 걸까?

이런 행보에 대해서도 합리화의 근거는 있다. 우선 현실참여를 중시하는 사르트르적 지식인상(像)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나 학창시절 겁이 나서 데모를 못했다는 그가 지금은 대한민국의 모든 고민을 짊어진 양 모양새를 취하는 것은 어색하기 짝이 없다.

또 하나는 최근 유행하는 통섭형 인간으로 보는 것이다. 시대가 다양한 분야의 통합적 지식인을 요구하니 서울대학교 교수이자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인 안철수야말로 적합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이런 르네상스형 인간은 전통적인 선비상과 부합한다. 그러나 조선의 선비는 번지르르한 언변을 제외하면 대체로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헛똑똑이’에 불과했다.

외국의 경우와 비교해보면 뚜렷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한국인은 가업을 잇는 일본인의 직업윤리를 칭송한다. 일본인이 대를 이어가는 것은 구멍가게만이 아니다. 일본이나 서구에서는 정치도 가업으로 이어간다. 정치 역시 하나의 전문영역이라는 점에서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를 김영삼,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과 비교해보자. 그들은 자신의 고향에서 막강한 권한을 행사했음에도 자식들에게 지역구 하나 물려주지 못했다. 한국에서 정치는 공동구역으로 남겨둔다. 이 무주공산은 다른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엘리트들이 최종적으로 승부를 겨루는 장이 된다. 덕분에 각 분야의 싹수 있는 인재를 모조리 정치가 징발해간다.



한창 일해야 할 나이에 안철수가 기업을 떠난 행위는 기업가 정신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비친다. 그는 기업가 본연의 활동을 통해 새로운 리더십을 전파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이런 지적은 발견할 수 없다. 마치 동양화에서 여백의 미를 높이 평가하듯 적당한 선에서 멈춘 사람을 칭송한다. 덕분에 스티브 잡스처럼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분야에서 완전 연소하는 인물은 한국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이병철의 삶을 재평가해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는 아마도 그를 한국 최초의 근대적 인간으로 꼽아야 할지 모른다. 그는 정주영이 정치영역을 기웃거린 것과는 달리 기업가의 외길을 걸었다. 심지어는 기업 활동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전경련 회장 같은 감투도 한 번으로 그쳤다. 역설적으로 한국에서 일본식 가업 개념이 존재하는 것은 대기업집단밖에 없다. 오늘날 삼성전자가 일본 업체들을 제치고 정상에 오른 것은 2대에 걸친 기업가 가문의 전통에 힘입은 바 크다.

베스트셀러의 비밀

안철수의 대중강연회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것도 이유가 있다. 한 시대의 베스트셀러는 사회적으로 듣기 원하는 얘기를 들려줄 때 탄생한다. 그는 한국 대중이 듣기 원하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모든 베스트셀러가 양서는 아니듯 듣고 싶은 얘기가 모두 진실은 아니다. 안철수가 던진 메시지를 복기해보면 몇 가지 의문이 나온다.

많은 이는 대기업을 비판한 그의 발언을 시의적절한 것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그는 IT분야를 대표하는 인물로서 대중과 만나는 자리를 생산적으로 활용하지 못했다. 단임제하 한국 대통령이 임기 말에 보여주는 패턴이 있다. 지지도를 만회하기 위해 내부적으로 재벌을 때리는 것이다. 안철수 신드롬의 바탕에도 이런 정서가 깔려 있다. 한국에서 비판적 지식인으로 보이기에는 반(反)재벌 발언만한 것도 없다. 그런 점에서 안철수의 메시지는 결코 신선한 것이 아니다. 더욱이 안철수는 대중에게 진정으로 했어야 할 얘기는 하지 않았다.

그는 대기업 때문에 중소기업이 성장하지 못한다는 주장을 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 산업에 한하자면 대기업보다 더 큰 장애물이 있다. 바로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없는 대중이다. 한국 사회는 안철수에 대해 신화화된 스토리만 기억한다. 그가 바이러스 백신을 무료 배포한 것을 큰 희생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의 선의를 의심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한국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자의건 타의건 모두 무료로 배포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한국 소프트웨어 산업의 미약함은 대중이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고 정품을 구매하지 않는 토양에 일차적 원인이 있다.

여기에는 대기업을 비판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러나 안철수는 수많은 대중을 만나면서도 이런 불편한 진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은 채 대중과 거래했다. 그는 대중에게는 면죄부를 주고 존경을 얻는 ‘윈-윈 게임’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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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윤|미디어워치 객원논설위원 kinstinct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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