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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씨를 제거하라”

“K씨를 제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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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초순. 박노항과의 친분 탓에 기무사의 추적을 받던 의정장교 출신 예비역 중령 P씨가 체포됐다. P씨는 K씨의 병무비리, 곧 자민련 고위당직자 L씨 아들의 병역면제와 관련된 사람이었다. K씨는 96년에 P씨에게 L씨 아들의 병역면제를 부탁해 성사시킨 바 있다. 경기도 가평에서 체포된 P씨는 서울지검으로 인계됐다.

기무사 서열2위인 조창현 참모장(2000.1 전역)이 당시 청와대 법무비서관 박주선씨에게 찾아가 K씨 처벌을 요구한 것은 그 직후인 8월 중순이었다. 그러나 글머리에 소개한 대로 박법무비서관은 박선기 국방부 법무관리관과 검찰(민간)쪽에 K씨에 대한 면책사실을 확인한 후 조참모장의 요청을 거절했다. 조참모장이 청와대에 찾아가 설명한 K씨의 ‘비위사실’은 기무사 수사관들이 군의관들에게 시인을 강요했던 내용과 같은 것이었다.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당시 조참모장이 전직 기무사 장성 P소장(모 정보부대 지휘관)과 더불어 병무비리 수사대상에 올라 있었다는 점이다. 국군부산병원 소속 기무사 4급 군무원 K씨가 두 사람의 병무비리 연루 혐의를 털어놓았던 것. K씨와 특별수사팀 관계자는 기무요원 K씨의 자백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부산으로 내려갔다. 기초조사를 토대로 9월 중순 부산지역 기무부대장 J대령을 소환조사했다. J대령은 전직 기무사 장성인 P소장의 병무비리 관련 혐의를 자백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기무사 전·현직 장성 2명의 병무비리 혐의는 뒤에 2차특별수사팀에 의해 벗겨졌다. 수사결과에 따르면 P소장은 병무비리에 직접 관련된 사실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의병전역 대가로 뇌물을 받은 혐의를 받았던 조참모장의 경우엔 의병전역 당사자가 만기전역한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99년 10월10일 “기무사 현역 장성 3명이 병역비리에 연루됐다”고 보도했던 서울방송은 기무사 장성 5명에 의해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했다. 이들 5명은 정정보도 및 손해배상 청구소송도 제기한 상태. 이와 관련, 서울방송의 변호인측은 “일부 표현에 문제가 있었던 건 사실이다. 취재원 보호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99년 9월에 들어서도 일부 기무요원의 ‘K씨 추적’은 계속됐다. 9월3일 기무사 수사관 2명이 모지역 군의관에게 예비역 중령 P씨의 또다른 면제비리 의혹을 추궁, 진술서를 받아갔다. 이는 물론 K씨의 여죄를 캐기 위한 것이었다. 비록 성사되진 않았지만, K씨가 과거 P씨를 통해 그 군의관에게 B씨의 병역면제를 청탁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무사는 왜 이토록 K씨 제거에 집착했는가. 그 배경엔 군검찰과 기무사의 힘겨루기가 있다. 기무사는 군검찰이 기무사를 ‘표적수사’하고 있다고 판단했으며 K씨를 ‘기무 죽이기’의 주역으로 여겼다. ‘신동아’가 확보한 관련 증거들에 따르면 기무사는 K씨를 파렴치범으로 보고 수사팀에서 배제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표적수사’냐 아니냐

기무사의 논리가 얼토당토않은 것만은 아니다. 병무비리 전과자에게 면책을 조건으로 병무비리수사를 맡기는 것은 수사의 정당성과 공정성을 해칠 우려가 크다는 기무사의 주장은 2차 수사팀장 고석 대령의 시각과 일치한다. 기무사가 문제를 삼는 K씨의 전과는 대부분 98년 7월 K씨가 군검찰에 수사협조를 자원하면서 자백했던 내용이다(상자 기사 참조).

군검찰은 K씨가 털어놓은 몇 건의 병무비리에 대해 면책을 약속했다. 당시 국방부 검찰부의 수석검찰관이었던 이명현 소령은 “K씨에 대한 면책약속은 국방부장관에까지 보고가 됐으며 98년 12월 박선기 법무관리관과 함께 청와대에 찾아갔을 때 박주선 당시 법무비서관에게도 보고했다”고 증언했다. ‘신동아’가 간접적으로 확인한 박법무관리관의 증언도 이와 다르지 않다. K씨에 대해 적대적인 고석 대령도 이를 부인하지 않는다. K씨는 기무사의 ‘뒷조사’에 대해 ‘민간인 사찰’이라고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은 2차수사 당시 고석 검찰부장 또한 기무사와 마찬가지로 K씨의 병무비리 전과를 추적했다는 사실이다. 고부장은 99년 7월7일 인천·경기지방병무청장에게 이와 관련한 협조공문을 보냈다. K씨가 면제청탁을 알선했던 자민련 고위당직자 L씨 아들의 병적기록표을 보내 달라는 요청이었다. 7월19일∼20일 기무요원들이 경기병무청과 서울병무청에 찾아가 확보하려 했던 바로 그 서류다.

기무사의 ‘표적수사’ 주장은 어느 정도 근거가 있을까. 기무사 감찰실·공보실 관계자들은 “군검찰이 기무요원들을 집중 수사한 데는 기무사에 대한 보복심리가 깔려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에 따르면 98년 12월 제1차 병무비리수사팀이 발족하기 전 기무사는 법무·군종·의정·의무병과 등 이른바 특과장교들의 근무태도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해 국방부장관에게 보고한 일이 있다고 한다. 이 보고서엔 ‘출근시간이 늦다’ ‘근무시간에 골프 치러 다닌다’ 등 특과장교들에 대한 부정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다는 것. 이 보고서 탓에 상부로부터 질책을 당한 법무장교들이 ‘기무를 죽여야 한다’고 결의했고 그것이 병무비리수사에 반영돼 기무사에 대한 ‘표적수사’로 나타났다는 게 기무사측 주장.

이에 대해 군검찰의 한 관계자는 “수사와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기무사의 보고서가 있었던 건 맞아요. 하지만 보고서 작성 시기가 달라요. 제가 기억하기론 99년 2월1일로 병무비리수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때 박선기 법무관리관이 사전에 이를 알고 대응하는 바람에 당시엔 장관에게 보고하지 못했고, 5월15일 육군참모총장에게 보고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육군 법무관들은 작살났어요. 그래서 법무병과 장교들은 ‘왜 병무비리수사를 시작해 이렇게 골치 아프게 만드냐’고 수사에 참여한 검찰관들을 원망했어요.”

기무사가 ‘표적수사’의 유력한 근거로 꼽는 또 하나는 바로 K씨의 수사참여. 기무사는 K씨가 불순한 의도를 갖고 수사에 참여했다고 보고 있다. K씨는 군복무 시절(국군대구병원) 병무비리사건에 연루돼 실형을 선고받고 강제전역조치됐다. 기무사에 따르면 당시 대구병무청에 근무하던 기무사 5급 군무원 L씨가 K씨의 공문서위조를 적발했으며 이것이 강제전역 조치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기무사가 ‘보복’ 의혹을 거론하는 근거는 L씨가 99년 5월 병무비리로 구속됐다는 점이다. L씨를 구속한 것은 2차수사팀이지만 실제로 L씨의 혐의를 추적해 확인한 것은 K씨가 참여했던 1차수사팀이었다. 기무사는 이를 두고 K씨가 L씨에게 보복하기 위해 수사팀에 참여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것이 기무요원들에 대한 ‘표적수사’로 이어졌다는 것. 기무사 관계자에 따르면 기무사가 이같은 사실을 알게 된 것은 99년 6월 L씨를 면회했던 L씨의 형을 통해서라고 한다. 당시 L씨는 “병무비리를 저질렀던 놈이 병무비리수사를 하고 있다”며 흥분했다는 것이다.

병무비리 뿌리뽑는 마지막 기회

그러나 군검찰쪽 주장은 다르다. 1차수사팀장 이명현 소령에 따르면 기무사 군무원 L씨에 대한 추적은 99년 1월 청와대 사정팀이 수사팀에 내려보낸 진정서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K씨는 “당시 L씨와 알고 지냈던 것은 사실이지만 내 사건과 그는 아무 관련 없다”고 주장한다. K씨에 따르면 L씨는 당시 병원 담당이 아니어서 자신의 병무비리 사건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 K씨는 또 “L씨를 만난 지 10여 년이 됐다. 설사 감정이 있다 쳐도 민간인인 내가 군에 있는 그에게 복수하겠다고 병무비리수사팀에 합류했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이냐”고 반문했다.

기무사 관계자들은 또 “교도소에서 병무비리수사가 진행되는 사실을 안 K씨가 출소 후 자신이 저지른 병무비리사건이 드러나 처벌당할까봐 ‘수사 협조’를 내세워 면책약속을 받아냈다”고 주장했다. K씨의 얘기를 직접 들어보자.

─자신의 전과와 비리를 밝히면서까지 수사에 참여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98년 6월초였을 겁니다. 교도소에서 우연히 신문을 보다 병무비리수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처음엔 저러다 말겠지 했어요. 그런데 어느날 박노항 이름이 떡 나오더라구요. 그럼 이건 장난이 아니거든요. 나도 군에 있을 때 박노항 이름을 들어 알고 있었거든요. 병무비리 세계에서 그는 한마디로 대부예요. 장군·장관도 함부로 못 건드릴 정도의 거물이에요. 정·재계 고위공직자의 약점을 다 알고 있다고 봐야 해요. 그가 처리한 게 그만큼 많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 좋은 자리를 10년 이상 꿰차고 앉는 일이 가능하겠어요(헌병은 병무비리를 감시하기 위해 지방병무청과 국군병원 등에 분실을 설치해 운영한다. 그중 가장 큰 곳이 서울병무청분실인데 박원사는 그곳 책임자였다). 박노항은 무소불위의 존재예요. 그의 이름을 공개적으로 알리고 수배까지 해놓은 점으로 미뤄 수사팀의 의지가 남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요. 그래서 찾아간 겁니다. 과거의 잘못된 삶을 청산하고 뜻 있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제가 해볼 만한 일이 나타난 거지요. 국방부에 들어가기 전 전화통화에서 이수석(이명현 소령)과 사나이 대 사나이로 맹세했어요. ‘이 수사하려면 목숨 걸어야 한다, 끝까지 가야 한다’고.”

─기무사쪽에선 자신이 저지른 병무비리를 덮기 위해 의도적으로 수사팀에 접근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는데요.

“아내와 모친이 다 말렸어요. 미친 짓이라고. 교도소에서 나오자마자 왜 고생을 사서 하냐고. 그렇지만 그것은 나 자신과의 약속이었어요. 수감생활은 과거의 삶을 반성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지방신문에 내 사건이 났는데 딸이 그걸 보고 충격 받아 가출했어요. 감방에서 그 소식을 듣고 몇 차례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자식에게 그런 모습을 보였다는 게 너무 괴로웠습니다. 딸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답장이 오지 않아요. 그래서 다시 아버지 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면 뭐든지 하겠다, 죽을 각오로 뭔가 뜻 있는 일을 해보자고 결심한 겁니다. 만약 기무쪽 주장대로 내가 문제가 있다면 이제까지 어떻게 버틸 수 있었겠습니까. 벌써 나는 죽었을 겁니다.

내가 처음 군검찰을 찾아갔을 때 그때까지 내 이름 석자를 누가 알기라도 했습니까. 당시 수사는 중단된 상태였어요. 내가 먼저 얘기 안 했으면 나에 대한 어떤 것도 드러나지 않았을 것 아닙니까. 수사에 참여하면서 국방부에서 한 푼도 받은 게 없습니다. 호텔 숙박비를 비롯해 모든 비용을 스스로 부담했어요. 내가 자비를 들이면서까지 왜 그렇게 했겠습니까. 돈보다 중요한 건 자식에 대한 아버지로서의 명예입니다. 자식 앞에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살고 싶었어요. 면책도 내가 먼저 요구한 게 아닙니다. 군검찰에서 알아서 상부에 보고한 겁니다.”

K씨는 기무사의 ‘표적수사’ 주장에 대해 “병무비리의 커넥션을 알면 그런 얘기를 못한다”고 주장했다.

“병무비리가 저질러지는 곳은 각 지역의 군병원입니다. 그런데 모든 군병원엔 기무요원들이 파견돼 있어요. 군의관에게 직접 병무비리를 청탁하는 경우는 드물죠. 기무요원들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감시하는데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기무의 임무가 뭡니까. 첩보수집, 정보활동 아닙니까. 건국 이래 50년 동안 계속돼온 병무비리를 기무가 몰랐다는 건 말이 안 되죠. 처음부터 기무를 표적으로 삼은 게 아니라 수사를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리 된 것입니다.”

그러나 기무사는 “일부 기무요원의 개인 비리를 두고 기무사 전체가 병무비리에 관련된 것처럼 보는 것은 곤란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군검찰의 한 관계자도 “비리에 관련된 일부 기무 요원들이 움직인 것이지 기무사 전체 조직이 움직인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기무사 감찰실의 한 관계자는 “군검찰이 기무부대를 압수수색한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라며 기무사의 ‘상처받은 자존심’에 대한 이해를 구했다. “국방부 감사관실의 감사를 한 달 이상 받는 수모를 당했다”고도 말했다. 군정보기관으로 수십 년 동안 군내 최대의 파워기관으로 군림해온 점을 감안하면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그러나 ‘방어’를 넘어 ‘공격’의 양상을 띤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1차수사팀은 99년 4월16∼18일에 기무요원 8명을 조사한 적이 있다. 이들에 대한 조사 직후 당시 국방부 기무부대장인 O준장은 합수본부장인 박선기 법무관리관을 찾아가 군수사팀의 수사방식에 대해 거세게 항의했다. 이를 전해들은 수사관계자들은 ‘외압’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99년 5월24일. 부산지역 기무부대 4급 군무원 K씨는 군검찰팀에 자수하러 상경했다가 기무사 감찰실의 ‘만류’로 부산으로 되돌아갔다. 이와 관련, 그는 최근 기자에게 “장성 관련 부분만 빼고, 내가 군검찰에서 기무사에 대해 진술한 내용은 다 사실”이라고 밝혔다.

기무사의 수사방해 의혹 못지 않게 논란이 된 전 국방부 검찰부장 고석 대령의 기무사 유착 의혹은 어떤가. 고대령은 이에 대해 “터무니없는 음해”라고 주장한다. 국방부 주변에선 “육사 출신인 고대령이 병무비리수사과정에서 이명현 소령을 비롯한 법무관 출신 장교들로부터 따돌림당했다”는 얘기가 들린다. 그러나 ‘출신간 알력’이 사실이든 아니든 ‘신동아’가 확보한 여러가지 증거에 따르면 그가 병무비리수사과정에 보인 행태에는 분명 문제가 있었다. 특히 기무요원들이 병무비리로 수사를 받고 있던 상황에 중요한 정보원인 K씨의 신분을 드러낸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지난 2월 구성된 군·검합동수사반은 그 어느 때보다 ‘성역 없는 수사’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가진 것으로 전해진다. ‘K의 전쟁’의 ‘라스트 신’은 어떻게 펼쳐질까.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이 문제예요. 국민의 모범이 돼야지. 자식을 외국에 보내 그곳 영주권을 갖게 해놓고 여기서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애국심이 있겠습니까. 자기 애들은 다 (병역)면제시켜 놓고. 만약 떳떳하다면 조사에 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1차 특별수사팀이 왜 해체됐는지 아세요. 대규모 병무비리 커넥션의 뿌리를 캐려다 중단된 겁니다. 이번 기회에 완전히 뿌리 뽑도록 해야 합니다. 이번이 아니면 기회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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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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