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연합제와 낮은 단계의 연방제의 공통점은 기본적으로 1국 2지방정부에 있고, 차이점은 북측이 2체제의 고려민주연방제 틀에서 보는 반면 남측의 관점은 1체제의 연방제 틀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이것이 논란거리가 되는 이유는 ‘연방제’라는 용어가 그동안 북한에 의해 독점되어 저들의 ‘고려민주연방제’와 일치하는 것으로 보려는 저간의 인식과 무관하지 않다.
김대중 대통령은 1987년 영연방과 비슷한 ‘공화국연방제’를 공식 제기했지만, ‘연방’이라는 단어 때문에 당시 정부·여당의 집중 공격을 받자 이 명칭을 잠정 폐기했다. 그 후 1991년 4월 발표한 공화국연합제 통일방안에서 김대통령은 “공화국 연방제보다 연합제가 더 정확하게 1단계의 통일내용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연합제로 바꿨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그는 공화국연합에 대해서 “북한의 인민공화국과 남한의 대한민국 두 공화국이 모여서 하나의 연합을 이루는 것”이고, “남북은 통일해야 할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서로 영원히 갈라서서 살게 되는 독립국가로 취급될 수 있는 국가연합 명칭은 피하고자 하기 때문”(‘나의 길 나의 사상’ 1994년. 170쪽)이며, “상대방을 독립정부로는 인정할 수 있지만 독립국가로는 인정할 수 없다”(위의 책. 66쪽)는 등 1국론을 바탕으로 한 통일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또, 제1단계 공화국연합제 아래에서 “남북 쌍방이 가입한 유엔에는 새로 형성된 연합의 이름으로 단독 가입”(위의 책. 66쪽)하게 하고, “외교·국방·내정은 현재의 남북 두 정부가 완전히 장악하되 모든 결정을 만장일치로 한다”(위의 책. 73쪽)고 설명함으로써 실질적으로 단일 주권국가로서 기능하는 것을 상정하고 있다. 나아가 김대통령은 남북연합이라는 명칭에 대해서 “북한의 현 정권과 남한의 현 정권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두 공화국이 연합하자는 정치적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위의 책. 66쪽) 거부한다고 했다.
반면에 그가 95년에 체계화하여 내놓은 저서 ‘3단계 통일론’에서는 “남북연합은 국가 대 국가의 공존을 전제로 하며, 화해·협력을 촉진시키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서의 의미가 강하다”(25쪽)며 2국가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렇지만 결국은 연합단계의 완성이 1연합기구의 구성이며, 이것이 대외적 국가주권을 대표하기 때문에 실상은 1국가로 봐야 타당하다. 이처럼 1단계 연합제에서 1국론과 2국론을 넘나드는 까닭은 이론적으로도 국가와 (독립)정부를 구분하기 어렵지만, 특히 북한체제의 특성상 정권(정부)과 체제, 국가를 구분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데 기인한다.
따라서 김대통령은 남북연합에 관한 93년의 주장과 95년의 주장에 드러난 차이를 분명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95년의 주장을 따를 경우 김대통령은 북한의 수령독재정권의 유지를 인정한다는 것인지, 그렇다면 남북연합단계에서 “북한이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민주주의적 체제로의 전환을 상당 정도 이루어야”(‘김대중의 3단계를 통일론’ 64쪽)하고, 또 그렇게 되어서 1연합기구가 구성될 경우에도 여전히 2국가 인식을 가져야 하는지 설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야당 시절의 김대통령은 자신의 공화국연합제 통일방안에 대해서 북한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여러 차례 언급했다. 아마 북한이 공화국연합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이유는 형식논리상 고려민주연방제와 ‘1민족 1국가 2정부’라는 면에서 일치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1체제인가, 2체제인가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정상회담에서 논의된 두 방안의 공통점은 겉으로 보면 1민족 2체제 2독립정부의 유지에 있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1민족 1국가 2지방정부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일단 이번 합의는 독립정부의 권한에 초점을 맞추어 공통점을 부각시킨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내정권 뿐만 아니라 외교권과 군통수권도 지금처럼 남북 양쪽의 지방정부가 가진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인정한 것이다. 체제문제는 워낙 민감한 사안인지라 아예 정상회담에서 논의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합의를 북한의 고려민주연방제 통일방안을 남한이 받아들인 것으로 간주해서는 곤란하다. 그 까닭은 남북한의 경우 연방제의 본질을 정치학 교과서에 나오는 대로 해석하기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연방제의 본질을 1국가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분단상황의 체제대결적 특수성을 고려하여 1체제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논의를 엄밀하게 분석할 때 우리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는 듯이 보인다. 곧 김대통령의 남북연합은 1연합이 구축되기 이전 단계와 1연합이 구축된 이후 단계 등 2단계로 구분지어 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1연합 구축 이전 단계에는 지금처럼 2체제 2독립정부가 유지된다. 그러나 1연합이 구축된 이후 단계로 넘어가면 북한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의 체제전환을 전제로 1체제 2지방정부가 되어 연방단계로 넘어간다.
반면에 북한은 2체제 2지방정부의 유지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지난 12월5일 평양방송 보도에서 6·15 공동선언의 통일방안 대목을 ‘연방제 통일로 나가는 길’이라고 한 것은 1국 2체제 2지역자치정부를 상정한 ‘고려민주연방공화국’ 방식의 통일방안을 의미한 것이다. 이는 1체제를 상정한 김대통령의 연방제와는 다르다.
따라서 남북 양측이 서로 상대방이 자기 방안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전인수다. 왜냐하면 연방제에 대한 양측의 인식은 ‘1국가’라는 외형의 면에서는 일치하지만 ‘체제’라는 본질의 면에서는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왜 북한은 연방 단계에서 1체제가 아니라 2체제를 고집하느냐 하는 점에 맞추어야 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다음에서 논하듯이 북한의 2체제를 전제한 연방제를 우리가 합의해줄 때 발생한다.
따라서 셋째, 현 시점에서 통일방안에 대한 논란은 통일과정과 통일국가의 건설에 있어서 본질적인 문제를 오히려 은폐할 우려가 있다. 연방제든 연합제든 통일방안을 김정일 위원장과 논의한다는 것 자체가 일단은 양 체제의 공존을 인정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김대통령은 통일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자신의 ‘3단계 통일론’ 정신에 충실해야 한다. 상황논리에 따른 정략적 해결책은 피해야 한다.
남한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갖고 있다. 반면 북한은 수령 독재체제다. 북한의 고려민주연방제 통일방안은 상이한 2체제의 공존을 전제로 한다. 과연 서로 다른 2체제가 공존하는 연방제가 가능한 것인지, 그리고 더 큰 문제는 북한의 수령절대주의 체제를 그대로 두고서 공존을 택하는 것이 통일을 위한 올바른 길인지를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
통일은 인간답고 평화롭게, 그리고 번영되게 살기 위해서 필요하다. 우리가 통일방안의 형식논리를 갖고 논쟁에 빠져 있을 때 수령절대주의 체제하의 북한 주민의 인간다운 삶을 어떻게 찾아줄 것인가. 만약 연방제든 연합제든 김정일과 통일방안을 합의한다면, 이는 김정일 수령독재에 대한 면죄부를 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남한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문제가 있다면 제3의 길을 선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북한이 수령독재체제를 포기하고 최소한 주민의 자유의사가 반영된 선거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따라서 현 단계에서 필요한 일은 쉽게 합의하지도 못할 통일방안을 가지고 소모적인 논쟁을 벌일 것이 아니라, 북한체제의 민주화를 위해서 실질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돼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
김대중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이 북한을 국제사회로 끌어내기 위한 것이었다면 그 정책은 일단 성공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어쨌든 한반도 정세의 큰 물길은 평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고 봐도 무리는 없다.
김정일시대의 북한도 제한된 범위이긴 하지만 대외 개방을 통해 자본주의와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에 조금씩 적응하고 있는 것 같다. 역사상 처음으로 남북정상회담을 했고, 북·미간 특사교환을 통해서 관계개선의 계기를 마련해 놓았다. 그리고 유럽을 비롯한 국제사회와의 교류에 부쩍 관심을 보이고 있다.
계속 검증해야 하겠지만, 앞으로 대북 포용정책의 성과를 유지하고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정책의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정파적 이해를 떠나서 대북 포용정책이 지속성을 가질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대북 포용정책이 김대통령 개인의 의지에 상당부분 의존한 측면이 많았음을 부인할 수 없다. 행정부의 각 부서는 대통령의 지시를 그때그때 집행하는 수단으로 전락한 측면이 있다. 이 때문에 대북정책이 김대통령 개인의, 그리고 국내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이용돼온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또 있다. 미래는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인식이다. 여기서 전략적 사고에 입각한 ‘엔지니어링 어프로치(engeering approach)’가 나온다. 일례로 남남갈등을 심화시킨 결정적인 문제는 “김정일을 과연 믿을 수 있는가”하는 논란이었다. 정답은 물론 “좀 더 지나봐야 알겠다”는 것이지만, 그러면 그때까지 논란만 하면서 마냥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이제 논란의 핵심은 “김정일과 북한의 변화를 무엇으로 판단할 것인가”로 바꿔야 한다.
정상회담으로 형성된 김정일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런 현상을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이라는 큰 목표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김정일을 믿고 안 믿고는 각자의 경험과 사상에 달려 있다. 중요한 것은, 김정일의 행태가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면 이를 계속 유지하는 전략이 필요하고, 그렇지 않다면 김정일이 궤도 수정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정상회담 이후 우리 사회는 이른바 ‘남남갈등’으로 이념적 혼란이 심화되고 이로 인해 국론분열 위기가 조장되고 있다는 우려가 있다. 이런 갈등은 크게 다음 세 가지 문제에 기인한다. 첫째, 김정일과 북한의 변화를 과연 신뢰할 수 있는가. 혹시 우리가 김정일의 대남 통일전선전술에 말려든 것은 아닌가. 둘째, 대북 포용정책은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가. 셋째, 김대통령은 대북정책을 국내정치나 자신의 개인적 목적에 이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등이다.
이러한 갈등을 해소하려면 무엇보다 대북정책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확보해야 한다. 끊임없는 토론과 계몽을 통해서 정책 판단의 제도화된 기준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예컨대 국가보안법 개폐 문제도 여론몰이식으로 갈 것이 아니라 북한의 변화를 확인하는 것이 우선순위가 돼야 한다. 이는 보수와 진보의 논쟁거리가 아니라 국가안보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국가보안법의 개폐는 북한의 노동당 규약과 형법의 변경, 군사적 신뢰구축, 북·미, 북·일수교,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등의 구체적 달성과정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면 된다. 현재로선 이중 어느 하나도 제도화된 것이 없다.
우리 사회에는 북한의 붕괴를 주장하면서 김대통령의 대북 포용정책을 비판하는 세력이 엄연히 존재한다. 그러나 이런 비판세력을 지금까지처럼 극우보수니 냉전의 잔재니 하면서 일방적으로 매도만 할 일은 아니다. 토론을 통해 이들을 논리적으로 설득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국민들의 의구심을 풀어주고 컨센서스를 갖춘 판단 기준이 만들어질 때 비로소 김대통령의 대북정책이 성공하는 것은 물론이고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길도 반석 위에 올라서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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