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씨는 ‘말’지 7월호 기사에 대해 분개했다. ‘말’지 기사는 당시 관련자들 개별 인터뷰를 통해 사건의 진실을 추적한 것인데 그에 따르면 임씨는 헛것을 봤거나 사실을 왜곡 또는 과장한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기자회견을 끝으로 양측 모두 더 이상의 인터뷰는 하지 않기로 약속했거든요. 그런데 그 후 ‘말’지에 아예 민주당 편들기로 관련자들의 인터뷰를 포함한 기획 기사가 나온 거예요.”
―그런데 그 날 그런 술자리가 있었다는 것은 그쪽도 인정하지 않습니까. 다만 정도의 차이라는 거지요. 자기들은 인터넷에 올라온 글 내용과 달리 여자들하고 흐느적거린 게 아니다, 또 여자들은 술과 안주를 차리느라 왔다갔다 했을 뿐이다, 뭐 그런 해명 아닌가요. 그런데 기본적인 사실도 잡아떼는 사람이 있습니까.
“있죠.”
―우상호씨(민주당 서대문구지구당위원장)는 다 인정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인정한 사람들만 이상해졌죠. 다른 사람들은 다 잡아떼고. 여자도 없었다, 춤도 안 췄다…. 그런데 영길이 형(송영길 의원)은 ‘킬리만자로의 표범’을―킬리만자로를 불렀는지 뭘 불렀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요. 자기가 그걸 불렀다고 말하니 알게 됐지―그 노래를 불렀다고 말했어요. 결국 영길이 형만 바보 된 거예요. ‘노래는 불렀습니다. 그러나 여자 끼고 술 먹는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그런 뜻으로 한 말인데 차라리 그 정도면 나아요. 상호 형도 ‘술을 많이 먹었습니다. 어쨌습니다’ 하면서 기자회견 때 울었잖아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만 지탄받고, 딱 잡아뗀 사람들은 그런 사실이 없었던 것처럼 돼버리데요.”
―김민석 의원도 잡아뗀 편입니까.
“자기는 원래 여자를 옆에 앉히지 않는대요.”
―임수경씨 글에는 양옆에 여자를 앉힌 걸로 돼 있던가요?
“웃기는 것은 서로 자기 옆에 김의원이 앉아 있었대요.”
‘말’지 기사 중 김민석 의원과 관련한 부분을 살펴보자. 김성호 의원은 “확실한 것은 내 옆에 김민석 의원이 앉아 있었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장성민 의원은 “김민석 의원 부분은 1000% 거짓말”이라며 “임수경씨는 더 이상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 김민석 의원은 나하고 얘기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우상호씨의 증언에도 김의원에 대한 배려가 엿보인다. “여종업원이 들어온 것은 맞다. 사람들이 김의원 옆에 여종업원을 앉히려고 했지만 김의원은 ‘화장실 간다’며 잠시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서는 보조의자에 앉았다.”
임씨가 문제의 글을 386정치모임인 ‘제3의 힘’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것은 술판사건이 있은 지 일주일쯤 지나서였다. 그러나 이 글은 파장을 우려한 ‘제3의 힘’ 총무 이정우 변호사에 의해 몇 시간 만에 삭제됐다. 삭제되기 전까지 조회수는 47. 이 47명의 조회자 중 누군가에 의해 임씨의 글은 일부 표현이 바뀐 채 인터넷에 떠돌기 시작했다.
―글을 올린 데는 특별한 동기가 있습니까.
“동기라기보다는 계속 고민하고 있었죠. 계속 가슴에 담고 있다가 그 사람들이 5·18 기념식에 참석하고 광주를 계승하네 어쩌네 하면서 인터넷에 인터뷰도 하는 걸 보고 한마디로 웃긴다 싶었던 거지요. 그래서 이런 사건이 있었는데 이게 잘한 건지 잘못한 건지 모르겠다, 내가 그 일 때문에 지금도 많이 아프다, 내가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그런 뜻에서 선배들의 조언을 바랐던 거예요.”
―임수경씨가 쓴 글과 인터넷에 돌아다닌 글이 조금 다르지요?
“문제가 된 글은 누가 쓴 건지 제가 알아요. 그런데 그쪽 사람들이 주장하는 건 그거예요. 제가 쓴 글이 있었고, 누가 그 글을 정말 화려하게 변조해 유포시켰다, 그러니까 애초에 그 글을 쓴 네가 잘못이다. 뭐 그런 스토리인데 그 글은 별도로 작성된 거예요.”
원문과 이를 도용한 글은 사실 내용 면에선 별차이가 없다. 임씨도 이를 인정했다. 다만 인터넷에 돌아다니다 언론사에 포착된 글에는 원문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임씨와 우상호씨 간의 언쟁 부분이 빠져 있다. 그리고 원문에는 없는 ‘흐느적거렸다’ 따위의 자극적인 표현 몇 가지가 첨가돼 있다.
―인터넷에 글을 유포시킨 사람은 ‘제3의 힘’ 회원인가요?
“아니에요. 누군가 저한테 확인을 해오더라고요. 어떻게 알았냐고 물으니 광주에서 들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얘기였어요. ‘제3의 힘’ 총무인 이정우 변호사가 그 글을 보고 전화를 걸어왔어요. ‘임수경씨 마음 알 것 같다. 나도 글을 보고 너무 화가 났다. 내가 얘들을 붙잡고 어떤 식으로든 해결을 하겠다. 그런데 이게 혹시라도 언론에 보도되면 문제가 커지니까 삭제를 하는 게 좋겠다’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삭제에 동의했어요. 뭐가 문제죠?”
―원문을 보면 그날 임수경씨에게 욕설을 퍼부었다는 우상호씨에 대한 개인 감정이 두드러져 있습니다. 이를 두고 사적인 감정이 공적 분노로 바뀐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는데요.
“개인 감정을 폭로하려 했던 건 아니에요. 다만 상호 형을 염두에 두고 썼던 것이기 때문에 개인 감정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모든 공적 분노가 그런 것 아닙니까. 개인적인 체험에서 촉발돼 공적인 것이 되지 않나요. 저도 이런 일들을 당했다는 사실을 덮어두고 가고 싶을 만큼의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이에요. 어떻게 보면 그들보다 훨씬 더 큰 도덕성이 요구되는 사람이라고요. 내가 길거리에서 불량배한테 그런 식으로 당했다면 밝힐 이유가 없어요. 밝혀서 뭘 해요, 내가 깎이는 일인데. 그런데 우리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는 거죠. 선배들로 생각했기 때문에 글을 올린 거예요.”
―그런 뜻이라면 굳이 공적인 공간에 글을 올릴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사적인 통로로 푸는 게 합리적 해결 수순 아니었을까요.
“문제는 우상호씨를 비롯한 그 사람들이 적절하지 못한 시간에 적절하지 못한 장소에 있었다는 점이에요. 그리고 내가 그 일을 알리면서 상호 형과 나 사이에 있었던 일을 빼놓으면 그건 내 얘기가 아니잖아요?”
임씨의 얘기를 들어보면 사태가 악화된 데는 자존심 문제도 있는 듯싶다. 글을 올리게 된 경위야 어떻든 임씨는 5·18 전야에 여종업원이 접대하는 술집에서,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학생운동을 기반으로 정계에 진출한 사람들이 그런 날 그런 자리에서 술 먹고 노래 부른 것을 부도덕한 행위로 봤다. 따라서 그녀는 ‘386선배들’이 마땅히 그 날 일을 반성하고 사과하길 바랐던 것이다. 그러나 선배들은 그 일에 소홀했고 그것이 그녀의 분노를 키운 것으로 보인다. “기본적으로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는 그녀의 말은 그런 추측을 뒷받침한다.
K의원의 폭탄주 로비
―운동이라는 것이 사람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이뤄지는 것 아니에요?
“그렇죠. 특히 국회의원들에게는 사람이 곧 표잖아요. 유권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하게 여겨야 하지 않습니까. 지금 나는 상호 형에게는 아무런 감정이 없어요. 오히려 상호 형이 최대의 피해자라는 생각이 들어요. 현역 의원이 아니잖아요.”
―공적인 차원에서는 그럴지 몰라도 임수경씨 개인 차원에서 볼 때는 어쨌든 분노를 심화시키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된 사람 아닙니까.
“그래도 그 사람은 나중에 반성했어요. 현역 의원들처럼 나중에 나를 매도하지는 않았죠.”
―우상호씨와의 화해 여부와 상관없이 공적인 차원에서 그 일을 문제삼아야겠다고 판단한 겁니까.
“그럼요. 만약 문제 제기 방식이 잘못됐다고 비판한다면, 좋다 이거예요.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후의 대응방식이에요. 과연 그 사람들이 얼마만큼의 책임의식을 갖고 사태를 마무리지었는가. 김민석 의원의 정치적 플랜, 마스터 플랜이 무너졌다고 하는데, 그만큼 중요한 사건이라는 걸 인식이나 하고 있는지 묻고 싶어요. 나도 미래가 많이 무너졌어요. 나는 정말 억울해요. 내게 잘못이 있다고 생각해요? 문제 제기 방식을 탓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정말로 적절한 방법이었다고 생각해요.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지 못한 사람들과 그것을 이용한 사람들의 잘못이죠. 어쨌거나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진실성 인간성 도덕성이 어떤지, 체험을 통해 알게 됐어요. 그렇기 때문에 후회는 없어요. 큰 교훈을 얻었어요.”
―결과를 놓고 보면 그 사건이 정치적으로 이용당한 측면도 있지 않습니까.
“깨끗하고 정정당당하게 나갔다면 이용당할 이유가 없었겠죠. 어쨌든 그 자리에 있었던 건 사실이니까, ‘우리 그 날 여자들 있는 데서 술 마셨다, 그게 문제가 된다면 정말 미안하다, 그렇지만 당신들은 그런 말 할 자격 있나’라고 되물을 수도 있는 거예요. 그리고 ‘우리는 이런 일을 반성할 만큼 열린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부분을 지적해준 사람에게 고맙다, 앞으로 잘하겠다, 지켜봐달라’, 그랬다면 왜 정치적으로 이용당해요. 안 그래요?”
―당시 언론의 보도태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한마디로 황당했죠. C일보가 처음 이 일을 알았어요. C일보 담당 기자한테 어떤 크기로 쓸 거냐고 물어보니 사회면 박스 정도라고 했어요. 저도 딱 그 정도의 사건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다음날 그 신문엔 기사가 실리지 않았어요. 그날 밤 K의원이 C일보 편집국에 찾아가 기자들에게 폭탄주를 한잔씩 돌렸대요. J의원도 전화로 로비를 했다고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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