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남댐에 가둬진 물은 태백산맥을 관통하는 45㎞의 도수터널을 통해 동해 안변 방면으로 흘러가, 그곳에서 300m의 낙차로 떨어지며 수력발전기를 돌리고 있다. 휴전선 부근의 높은 산에 올라가면 소양호보다도 더 큰 것으로 보이는 임남댐을 관측할 수 있다.
정부측 설명과는 달리 2001년 4월 화천댐으로 흘러든 유입량은 평년 유입량의 20%에 지나지 않았다. 5월의 유입량은 그보다 더 적어 평년 유입량의 7%밖에 되지 않았다.
북한이 휴전선 이북 8㎞ 지점에 건설한 임남댐 상류 유역의 연평균 총강수량은 18억t이다. 이 강수량은 2001년 화천댐으로 흘러들지 못하고 사라져버린 유입량 감소치 17.7억t과 거의 비슷하다. 이러한 비교는 임남댐 이북에서 화천댐으로 흘러드는 유입수가 거의 100% 차단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화천댐은 휴전선 북쪽에서 내려오는 북한강 지류인 금성천뿐만 아니라 다른 지천으로부터도 물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사라져버린 17.7억t은 화천댐으로 흘러들던 연간 유입량29.3억t의 60%에 해당한다. 북한강과 남한강을 합한 전체 유입량이 150억t이므로, 임남댐 건설로 인해 12%에 해당하는 엄청난 한강 물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화천댐으로 흘러드는 나머지 40%의 물 중에서 절반 이상은, 장마철 집중 호우 때 몰려드는 것이다. 이러한 물은 댐을 보호하기 위해서, 유입되는 즉시 상당부분 방류해야 한다. 이러니 40%의 절반 정도밖에 안되는 물을 가둬놓고 발전도 하지 못하면서 겨우 파로호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만 사용하는 것이다. 장마철을 제외하면 춘천 이북의 북한강 수계는 80% 이상 물이 줄어들어 상당한 피해를 일으킬 수밖에 없다.
한강은 이미 옛날의 한강이 아니다. 조금만 눈여겨 살펴보면, 서울 지역을 흘러가는 한강의 수위는 예년보다 1∼2m 정도 낮아진 것을 알 수 있다. 북한측은 1986년 임남댐을 착공하면서 이미 “임남댐이 담수를 시작하면 한강 본류에도 영향을 끼쳐 한강철교의 수위는 1m 이상 낮아져, 서울의 홍수 피해가 줄어들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1986년 여름, 북한이 유역변경식으로 ‘금강산발전소’를 건설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정부는, ‘금강산댐(북한에서는 임남댐)’이 건설될 최적지는 휴전선 북방 8㎞ 지점인 임남면 일대의 협곡일 것으로 예측했다. 이 댐에 가둔 물을 역류시켜 81만㎾의 전력을 생산할 경우 댐의 규모를 산정해본 결과, 댐의 높이는 215m가 되고, 저수용량은 200억t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1986년 10월21일 북한이 ‘금강산발전소’ 건설 기공식을 감행하자, 정부는 이러한 대규모 댐을 지으면 북한강의 수자원이 고갈돼 환경파괴를 유발할 것이라며, 즉각적인 중단을 촉구했다. 더욱이 이 댐이 자연적으로나 인위적으로 붕괴될 경우 수도권 일대는 가공할 피해를 입을 수 있다며 ‘대응댐’의 건설을 추진했다.
그해 12월25일 북한은 ‘금강산 발전소 건설 백서’를 발간하여 “금강산댐’이라는 초대형 댐 하나만 건설하는 것이 아니다. 임남댐 북방에 전곡댐을 더 건설하고, 임진강 상류에 댐 두 개를 지어 도수터널을 통해 북한강 수계로 물을 보낸 다음 다시 동해 안변 방면으로 보내어 발전한다. 이 댐들은 특수 공법에 의하여 건설되므로, 대형 댐이 붕괴되는 사태를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이를 국가안보 문제로 보고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했다. 금강산댐의 자연적·인위적 붕괴를 우려하여, 휴전선 바로 밑에 ‘대응댐(counter-dam)’인 ‘평화의 댐(peace dam)’을 짓기로 했다. 1987년 2월28일 ‘평화의 댐’ 공사를 서둘러 시작하여 1988년 5월에 제1단계 ‘평화의 댐’이 완공되었다. 이 공사에 들어간 비용은 총 1150억원 정도인데, 이중 국민의 성금이 635억원이고 나머지 515억원은 국고에서 충당되었다.
‘대응댐’은 상류국이 하류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댐을 건설해 하류국에 피해를 줄 수 있는 경우, 상류국이 하류국의 입장을 존중해 협상에 응하도록, 하류국이 상류국의 댐 건설을 방해하는 한 방법이다.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전두환 정권은 임남댐이 자연적 또는 인위적으로 붕괴될 경우에 일어나는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 ‘평화의 댐’을 건설한 것이다.
이에 대해 당시 정치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봉착해 있던 전두환 정권은,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하여 사실관계를 왜곡하고 예상되는 피해상황을 과장한 면이 많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전두환 정권이 물러가고, 올림픽이 ‘무사히’ 치러진 후, 금강산댐은 정권유지 차원에서 더 이상 이용할 가치가 없어지자 점차 잊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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