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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발목 잡은 2인자들

‘국민의 정부’ 국무총리론

DJ 발목 잡은 2인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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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라는 꼬리를 뗀 김종필 총리는 자신의 주장처럼 법이 보장한 총리의 각종 권한을 떳떳이 행사하기 시작했다. 자민련은 JP의 정치적 활동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국민회의와 사전 약속한 ‘국무총리 지위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자고 압박하기 시작했다. 1998년 8월4일자 한 신문의 사설을 보면 “만일 한나라당이 이런저런 이유로 인준 절차를 지연시킬 경우 그 정치적 파장은 엄청날 것이다. 우선 김총리 서리는 더 이상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을 것이고 그가 사퇴한다면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공동정권은 사실상 붕괴하는 것이다. 표면상으로는 두 정당의 연합이지만 공동정권의 사실상 기반은 ‘김대중 대통령+김종필 총리’이기 때문이다. (중략) 따라서 한나라당이 그런 의미로 인준을 미룬다면 그것은 야당으로서 해볼만한 정치적 모험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이 사설이 어떤 의도를 가졌든 간에 김종필 총리 문제가 김대중 정부의 국정운영에 최대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했다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5개월여의 총리서리와 17개월 가까이 총리로 있으면서 JP는 각료 몇 자리와 다수의 산하 단체장 임명권을 차지하는 권력을 누렸다. 그러나 그 대가로 내각제 추진 합의를 잃었고, 내각제적 요소를 강화한 총리지위법도 제정하지 못했다.

박태준 축출한 JP

이 무렵, 국민회의 내부에서는 공동정권에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는 요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JP는 분노했고 2000년 1월 총리직을 버림으로써 결별에 나서는 듯했다. 또 당장은 눈앞에 닥친 4월 총선에서 존립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당시 자민련의 절박한 과제였다. 자민련은 JP의 총재직 복귀를 요청했다. 하지만 당시 자민련 총재는 박태준씨였다. 따라서 JP가 복귀하려면 박태준이라는 걸림돌을 뛰어넘어야 했다.

그래서 노회한 JP는 박태준씨를 자신의 후임 총리로 추천하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이것은 사실상 박태준씨를 자민련에서 축출하는 비책이었는데 여기서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있다. 공동여당을 포기하면서 자신의 후임 총리를 추천한 것도 이상하거니와, 이를 흔쾌히 수락한 김대중 대통령은 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다. 대통령이 아닌 사실상 JP가 지명한 박태준 총리내정자가 2000년 1월13일에 국회의 인준을 받아 제 32대 총리가 되게 했다.



당으로 복귀한 JP는 한나라당의 총재권한대행을 거친 이한동 의원을 자민련 총재로 선출하고 자신은 직전까지 몸담았던 김대중 정부를 거칠게 공격하면서 득표활동을 벌였다. 심지어 낙천 낙선운동을 벌인 시민단체인 총선연대를 김대중 대통령의 홍위병으로 몰아붙이기까지 했다.

2000년 4월 16대 총선의 결과를 보면 한나라당이 133석, 새천년민주당이 119석, 무소속이 4석 그리고 자민련은 교섭단체에도 못미치는 17석을 얻는 데 그쳤다. JP는 정계를 은퇴하라는 여론의 거센 압박을 받았고 청구동 자택에서 칩거에 들어갔다. 그러나 총선 민심은 어느 당에도 과반수를 부여하지 않음으로써 JP는 특유의 줄타기로 정치생명을 연장했다.

여기서 또 한가지 재미있는 일은 총선기간 내내 김대통령과 민주당을 거세게 비난하면서 야당임을 선언했던 JP가 선거참패의 후유증으로 자택에 칩거중일 때 김대중 대통령은 최측근인 한광옥 비서실장을 보내 위로했다는 사실이다. 그후로도 JP는 당사와 국회가 아닌 골프장에서 시간을 보내며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언론들은 자민련을 골프당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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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경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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