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화갑 대표는 “민주당의 최대 지지층인 호남에 이익이 되느냐 안 되느냐가 정책판단에 있어 최우선 고려 사항”이라고 말했다.
▼ 차기 대선의 키워드 중 하나가 ‘영·호남 공조’가 될 거라는 말이 있습니다.
“과거에는 지역감정이란 말을 썼는데, 이젠 좀 누그러졌다고나 할까요. 저는 ‘지역정서’라는 단어를 자주 씁니다. ‘지역감정’을 가졌을 때는 대립이나 반목이라는 말도 수반됐죠. 상대방을 무조건 거부하는 느낌의 말입니다. 그럼 지역정서란 뭐냐, 서로 공존을 전제하고, 상대방을 인정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변화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17대 총선이 끝나고 탄핵 역풍이 불 때 민주당 지지층의 다수가 열린우리당으로 등을 돌렸죠. 이분들이 그 무렵 경상도에 가면 ‘당신들은 왜 민주당이 아니라 열린우리당을 지지하는가, 그 이유나 들어보자’는 소리를 들었답니다. 과거 같으면 민주당은 무조건 싫다고 하는 사람 다수와 소수의 지지자라는 이분법적 구도였을 텐데, 이제는 상대방의 처지를 인정하고, 태도 변화에 애정을 갖고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감정의 대립에서 벗어나 정서의 공존상태가 되면 그 다음엔 정서의 연합, 나아가 통합도 가능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촉매제가 필요하죠. 국민과 나라를 위해 좋은 정책이 나오면 됩니다.”
▼ 한나라당에서는 민주당이 정서적으로 거부하는 민정당 출신이 이제 거의 없어졌다고 하더군요.
“숫자는 줄었겠지만 기억은 남아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때의 지역차별, 그보다 훨씬 더 심한 전두환 정권의 5·18 광주민주화운동…. 호남에서 아직까지 한·민 공조를 수용하지 않으려는 것은 그 시절의 기억 때문입니다. 특히 5·18 때는 김대중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보안사에 끌려가 얻어맞고 다 공산당이 되지 않았습니까. 그런 쓰라린 경험이 있기에 아직껏 1세대들이 마음으로부터 용서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물론 5·18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이야 그 정도의 쓰라린 피해의식은 없겠죠.”
▼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얼마 전 호남 유권자들에게 사과를 했습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사과를 받아도 ‘그걸로는 부족하니 더하라’고 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까닭이 있잖아요. 한나라당이 과거 집권 여당일 때 인사등용이나 지역개발에서 차별한 것은 사실이죠. 아시다시피 주로 차별받은 지역이 전라도입니다. 그럼에도 공식적으로 사과를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니 어떻게 보면 신선미가 있다고들 평가합니다. 결국 전라도에서도 표를 달라고 하는 것 아닙니까. 솔직한 거죠. 하나도 부자연스럽지 않은 겁니다.
전라도에서도 ‘과거에 너희들이 우리 차별한 거 시인했냐’고 떠들 필요 없습니다. 그냥 받아들이면 됩니다. 전에 비해서는 적대적인 감정이 한층 누그러져 있습니다. 세상이 빨리 변하고, 이제 국내 혹은 지역에만 닫혀 있으면 안 된다는 게 많은 사람의 생각입니다. 이처럼 글로벌한 사고방식이 정치권에도 스며들고 있습니다. ‘로컬’에만 국한된, 편향된 시각은 안 됩니다. 수적으로도 새로운 세대가 계속 늘고 있습니다.”
▼ 새로운 세대가 늘면 호남 유권자의 성향도 변하겠군요.
“예컨대 영남에 이주해 사는 전라도 출신들을 보죠. 1세들은 부산에 살면서도 김대중 후보를 찍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자녀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한나라당 성향이 강합니다. 1세들은 타향에서 차별받은 쓰라린 경험이 있지만, 2세들에겐 그곳이 자기네 고향이라는 생각이 있고, 때로는 아버지의 정서를 이해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좀 다른 얘기긴 하지만 축구선수 박지성의 아버지 고향은 전남 고흥인데, 박지성은 수원 출신으로 알려지지 않습니까. 야구선수 이승엽의 아버지는 전남 강진에서 저희 당 대의원까지 하셨지만, 이승엽 본인이야 대구가 고향 아닙니까. 뭐 그런 거죠.”
▼ 민주당의 이념성향이 한나라당이 내세우는 ‘보수’와 큰 차이가 없다는 시각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개별 정책에서 차이가 납니다. 전시작전통제권 문제만 봐도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스탠스가 달라요. 민주당은 전작권을 찾아오자는 데 동의합니다. 다만 충분한 준비를 하고 찾아오자는 겁니다. 지금 정권에서 섣불리 결정하지 말고 다음 정권으로 미루라는 겁니다. 2009년이니 2012년이니 하면서 시한을 정하는 것은 더 안 될 말이고요. 미국의 도움 없이는 북한에 대한 전력우위를 장담할 수 없는 현실 아닙니까. 미국이 지금 맡고 있는 역할을 우리가 담당하려면 장비, 무기 도입에 엄청난 돈이 필요합니다. 미국을 그대로 놔두고 그 많은 돈을 안 쓰거나 다른 데 쓰면 더 좋은 거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