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력규모 10만~30만 될 듯
군 관계자들이나 전문가들은 이러한 전시증원 규모의 축소 혹은 재조정은 ‘알 만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예견돼온 일이라고 말한다. 당장 정부가 밝혔던 ‘69만’이라는 숫자부터 수사(修辭)에 가깝다는 것. 이는 ‘미군 69만명이 한번에 전선에 투입된다’는 것이 아니라 누적인원의 개념이다. 다시 말해 임무교대 등을 통해 교체되는 인원 등 한반도 전쟁에 참전할 수 있는 모든 병력의 수를 합산한 것이다.
미국의 전쟁권한법(Warpower Act)은 의회의 참전 결의가 없어도 60일 범위 내에서 해외파병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하고 있으며, 일단 파병하고 나면 기한을 30일 연장할 수 있다. 물론 동맹국인 한국이 침략을 당하는 경우 의회의 전쟁결의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지만, 워싱턴에서 정치적 논쟁이 길어질 경우에도 백악관의 의지만으로 90일 내에는 한반도 전쟁에 개입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전시증원 관련 논의는 90일을 기준으로 이뤄진다. 69만이라는 숫자 역시 마찬가지다. 이 가운데 9만가량을 교체투입의 부담이 별로 없는 해·공군이 차지한다고 보고, 90일 내에 30만 규모의 지상군 병력이 한번 임무교대를 한다고 보면 연인원이 60만이 된다. 이를 모두 합한 게 69만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한반도 전쟁에 동시에 참여할 수 있는 미군 병력의 최대규모는 ‘현재 기준’으로도 40만을 넘기 어렵다.
그나마 이 정도 숫자도 미군 17~18개 사단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규모로, 미 본토와 전세계에 배치된 140만 미군 가운데 동원 가능한 모든 병력을 단순 합계한 것에 가깝다. 한마디로 ‘온다’라기보다는 ‘올 수 있다’다. 이러한 사실은 전시증원의 완성 단계인 TPFDD가 한반도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만 봐도 확인할 수 있다. 다시 말해 TPFDD는 ‘세계 어느 곳에서 전쟁이 나든’ 미군이 투입할 수 있는 군사자산의 총계를 정리한 내역이다. TPFDD의 마지막 글자가 ‘Data’인 것은 이 때문이다.
이라크전 등으로 인해 최근 미군이 가용 군사자산의 대부분을 소진하고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주한미군의 숫자를 줄여가며 전장에 내보내는 형편이다. 특히 2000년대 이후 미군은 기존의 사단체계 대신 기동성을 강화한 스트라이커 여단 위주의 체계로 지상군을 재편하고 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실제로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할 경우 동원 가능한 전시증원의 규모는 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게 정설이다.
합동전력사가 추진하고 있는 전시증원 재조정 작업은 이러한 현실과 그간의 변화를 반영해 ‘합리적인 계획안’을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보인다. 비생산적인 부대 투입 시스템을 개선해 육·해·공군의 합동성을 강화하고, ‘립서비스’로 제시돼 있는 TPFDD의 거품을 제거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게 군 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런 종류의 작업은 미 국방부 내에서 이미 1990년대부터 그 필요성이 제기돼왔다는 것.
특히 합동전력사의 기본적인 정책방향이 합동성과 효율성을 강조해 지상군 투입 대신 해·공군 위주의 전쟁수행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감안하면 전시증원의 규모는 더욱 줄어들 것이라고 예측할 수밖에 없다. 극단적으로는 10만 안팎에 불과하다고 보는 게 현실적이라는 의견이 있을 정도. 합동전력사의 재조정 작업이 완료된 상태가 아니므로 정확한 숫자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대략 10만~30만을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추산했다. 그 구체적인 숫자는 전작권 전환일정에 따라 기존의 작계 5027, 5026 등을 대체하는 새로운 작계가 얼개를 갖추는 2008년 하반기에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무지했거나 정직하지 않았거나”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최근 수년간 미국측이 “69만 전시증원을 보장한다”고 말한 바 없다는 사실이다. 양측의 공식 합의문서는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안보공약은 확고하다”는 정도의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한국 정부 혼자서 이미 기정사실이 된 변화의 흐름을 무시한 채 ‘69만’이라는 숫자를 강조해왔을 뿐이라는 것. 다음은 한 전문 연구기관 관계자의 말이다.
“물론 전시증원 규모의 조정이 전작권 전환 때문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최소한 전작권 전환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예견된 변화를 무시했거나 혹은 논란이 커지는 것을 의식해 감춰왔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렵다고 본다. 한미동맹의 변화에 워싱턴의 의지가 실려 있고, 그 핵심에 ‘가급적 한반도 전쟁에서 개입 정도를 줄여나간다’는 목적이 깔려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이를 몰랐다면 한국 정부는 무지했던 것이고, 알고도 정치적 논쟁을 염려해 말하지 않았다면 정직하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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