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정부의 대(對)국회 역량이랄까, 자세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나는 이명박 정부가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성공적인 정부를 만들기 위해 정부는 정부대로 할 일과 논리가 있지만, 국회에는 국회 나름의 논리가 있어요. 국회는 여야가 함께 공존하며 대화 타협을 해나가는 곳이에요. 목표지상주의가 아니라 과정과 절차를 좀 더 중시하는 곳이 국회라는 점을 행정부가 인식했으면 좋겠어요. 행정부는 신속 효율을 생각해야겠지만, 국회는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소외되는 사람, 손해 보는 사람을 어루만져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 국민대변기관이에요. 큰 틀에서는 같으면서도 역할이 다르다는 것을 서로 이해해야 합니다.”
▼ 지난해 7월 국회에서 미디어법 직권상정 처리를 놓고 야당은 야당대로 여당은 여당대로 의장을 원망하는 소리가 많았는데….
“한나라당은 처음엔 직권상정을 비공식적으로 요구하더니, 다음엔 공식적으로 요구하고, 나중엔 (안 한다고) 비판을 했어요. 하지만 여당으로서 기본전략이 부재(不在)했어요. 직권상정이란 다수의 권리가 소수에 의해 부당하게 막혀 있을 때 부득이하게 적용되는 것인데, 미디어법을 2008년 12월18일에야 제출해놓고 24일에 처리해달라니…, 문방위원들조차 내용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직권상정을 해달라면 어찌 되겠어요. 의원총회에서도 내용 한번 제대로 설명이 없었는데, 이걸 직권상정 안 해준다고 비난할 수 있느냐 말입니다. 물리적으로도 안 되고 절차적·내용적으로도 못하는 것인데, 안 해준다고 의장을 비난하다니…. 물론 야당도 의장실과 본회의장을 점거하고 당원이라는 사람들을 버스로 동원해서 밀고 들어오는 한심한 일을 했고요.”
김 의장이 재임 중 직권상정으로 가결한 안건은 예산부수법안 35건을 포함해 모두 40건에 달한다. 역대 의장 가운데 가장 많다. 그는 “다시 그때 상황이 와도 직권상정을 하겠느냐”는 질문에 “직권상정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했지만, 불가피한 상황이 너무 많았다”고 했다. 잘했고 못했고는 국민이 판단할 일이지만, 자신의 책임하에 했기에 떳떳하며, 그 길밖에 없었다는 얘기였다.
국회 위에 있는 정당, 헌법정신에 배치돼
▼ 미디어법이나 노동법 같은 쟁점법안 처리를 앞두고 청와대와 친정인 한나라당으로부터 ‘압박’도 좀 있었죠?
“일국의 국회의장에게 직접 ‘이거는 언제까지 처리해달라’고 하는 사람은 없어요. 다만 청와대 쪽에서 비공식적으로 법안처리를 희망하는구나 하는 느낌은 받았죠.”
18대 전반기 국회는 법안통과율(발의법안 중 가결된 비율)이 역대 최저(10.65%)에다 폭력과 파행으로 얼룩진 ‘최악의 국회’, ‘실패한 국회’였다는 평이 많다. 김 의장은 이렇게 된 원인 중의 하나로 ‘국회보다 정당이 위에 선 정치풍토’를 꼽았다.
“국회에 권한을 위임하면 되는데, 지금은 국회 위에 정당이 있어요. 헌법정신과는 배치되는 현실이죠. 국회의원이 헌법기관이라면서 자율권은 없어요. 미디어법도, 4대강 예산 문제도 당론으로 얽어매니 타협의 여지가 없는 거예요. 미디어법은 내가 가지를 많이 쳐냈어요. 일각에서는 누더기라 하지만, 누더기라도 타협을 해서 통과되는 게 낫죠. 나중에 문제가 있으면 또 개정을 하면 되니까. 여든 야든 100% 맘에 안 들더라도 타협을 하고 나가야 합니다. 법이라는 건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사람들의 최대공약수를 확대해나가는 겁니다. 그런데 자기한테 불리하다 싶으면 원천적으로 반대를 하고 당론결정 과정도 비민주적이에요. 막후에서 몇 명이 결정하고선 ‘당론’이라며 끌고 가려는 풍토도 고쳐야 해요.”
▼ 의원직 사퇴한다고 큰소리 치면서 사퇴서 제출했던 의원들 있잖아요, 그냥 본인들 소원대로 ‘확’ 사표 수리(受理)해버리지 그러셨어요. 박수 치는 국민 많았을 텐데….
“그 사람들 정치쇼하는 것 국민이 다 알아요. 기분 같아서야 수리를 해버리면 속이 시원하겠지만, 국민이 선택한 헌법기관을 국회의장이 함부로 수리하는 것은 헌법정신에 맞지 않아요. 만일 내가 수리를 하는 선례를 남긴다
면 앞으로 사퇴서 제출에 대해 선별적으로 수리한다든지,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가 있어요. 미국처럼 사표가 제출되면 선관위 같은 데서 즉시 수리하도록 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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