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호

개헌, 다수 의석 앞세운 속도전은 실패 공식

[긴급분석 | 지금 왜 개헌인가] 역대 정부 ‘개헌 잔혹사’의 교훈

  •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석학교수

    입력2026-08-27 07:00:02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1987년 이전 여덟 차례 개헌, 집권 연장 도구로 동원

    • 개헌은 제도적 난관 아닌 정치적 산술로 난항 겪어

    • 역대 대통령 개헌 제안, 정치적 이득은커녕 부메랑 돼

    • 헌법대로 총리에 힘 실어 국정 운용하는 게 강력한 개헌 캠페인

    • 소수 야당을 돌파 대상 취급하면 개헌 시도는 좌절할 것

    이재명 대통령이 8월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제81주년 광복절 경축식 경축사를 낭독하고 있다. 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이 8월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제81주년 광복절 경축식 경축사를 낭독하고 있다. 뉴시스

    1987년 직선제 개헌이 이뤄진 이래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아홉 명의 대통령이 나왔지만 지금껏 개헌은 단 한 차례도 성사되지 않았다. 개헌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5년 단임제의 한계,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에 대해서는 정치권과 학계에서 폭넓은 동의가 있다. 여러 여론조사에서도 개헌 필요성에 과반 또는 3분의 2 안팎의 국민이 동의했다. 그런데도 번번이 개헌 시도는 무산됐다. 

    재적의원 3분의 2라는 좁은 문

    돌이켜 보면 우리 헌정사에서 개헌은 늘 잔혹하게 이뤄졌다. 1987년 이전의 여덟 차례 개헌은 대부분 집권자의 손에서 집권 연장의 도구로 동원됐다. 이승만의 발췌 개헌과 사사오입 개헌, 박정희의 3선 개헌과 유신헌법이 대표적이다. 국민의 손으로 쟁취한 유일한 개헌이 1987년 직선제 개헌이었다. 그런데 민주화 이후에는 정반대의 잔혹사가 펼쳐진다. 권력자가 마음대로 헌법을 주무르던 시대에서, 누구도 헌법에 손댈 수 없는 시대로 바뀐 것이다. 이쯤 되면 개헌의 역사가 아니라 개헌 잔혹사라 불러야 마땅하다.

    개헌은 발의부터 국민투표까지 최장 110일 남짓이면 끝나는 의외로 간명한 여정이다. 문제는 제도적 난관이 아니라 정치적 산술이다. 개헌 의결 정족수는 현재 국회 재적의원 299명의 3분의 2가 되는 200명이다. 더불어민주당 161명에 조국혁신당 등 범여권 정당과 무소속을 모두 합쳐도 180명대 후반에 그친다. 결국 국민의힘 소속 의원 110명 가운데 최소 10명 이상이 찬성표를 던져야 개헌안은 본회의를 통과할 수 있다. 자기 이름을 걸고 하는 기명투표라 부담이 되는 결정이다. 그러나 불가능하다고 단정할 일도 아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국민 3분의 2가량이 개헌에 찬성한다는 여론조사가 이어졌고, 제왕적 대통령제의 극복과 권력구조 개편은 본래 보수진영이 먼저 내걸었던 의제이기도 하다. 

    당론과 지역구 민심 사이에 선 수도권 의원들, 차기 구도에서 셈법이 다른 소장파들을 감안하면 10여 명이라는 숫자는 넘지 못할 벽이 아니다. 개헌저지선을 지키는 것과 개헌 협상의 지분을 갖는 것 중 어느 쪽이 당의 미래에 유리한지를 두고 국민의힘 내부의 계산이 갈라지는 순간, 문은 열릴 수 있다. 열 명이라는 숫자는 정치공학의 문제가 아니라 설득의 문제이며, 그 설득의 조건을 만드는 작업은 집권 세력의 몫이다.

    개헌 설득 조건 만드는 작업, 집권 세력의 몫

    역대 대통령들이 개헌을 언급한 상황을 검토해 보면 흥미로운 규칙이 드러난다. 노태우는 6·29선언으로 직선제 개헌을 수용하고 그 헌법으로 당선된 당사자였다. 그는 집권 뒤인 1990년 1월 3당 합당의 대가로 김영삼·김종필과 내각제 개헌 추진 비밀 각서에 서명했다. 그러나 각서의 존재가 언론에 폭로되자 차기 대권을 노리던 김영삼이 당무 거부로 맞섰고, 노태우는 내각제 포기를 약속하며 물러섰다. 밀실에서 합의된 권력구조 개편은 공개되는 순간 붕괴한다는 선례였다. 김영삼은 집권하자 어떠한 형태의 개헌도 단호히 반대한다며 임기 내내 논의 자체를 봉쇄했다. 김대중은 1997년 대선에서 김종필과의 후보단일화 대가로 내각제 개헌을 문서로 약속했으나, 집권 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극복이 최우선 과제가 되면서 개헌 약속을 유보했고, 그 파기는 결국 DJP연합 붕괴의 원인이 됐다.



    노무현은 2007년 1월 대국민담화에서 5년 단임제는 역사적 소명을 다했다며 4년 연임제와 대통령·국회의원 임기 일치만 고치는 원포인트 개헌을 제안했다. “지금 이 기회를 놓치면 대선과 총선의 주기 구조상 20년간 개헌이 어렵다”는 논증까지 곁들인, 내용적으로는 이후 모든 개헌론의 원형이 된 제안이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참 나쁜 대통령”이라는 박근혜 야당 대표의 비난이었고, 각 당이 다음 국회에서 논의하겠다고 약속하자 발의 계획을 철회했다. 하지만 차기 국회에서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임기 중반 분권형 개헌 드라이브가 있었다. 그러나 차기 주자 박근혜를 견제하려는 포석이라는 의심 속에 사그라들었다. 박근혜는 “개헌 논의는 경제 살리기의 블랙홀”이라며 논의를 막다가 2016년 10월 24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돌연 “임기 내 개헌 완수”를 선언했다. 그런데 바로 그날 저녁 최순실 관련 태블릿PC 보도가 터지면서 개헌 선언은 하루 만에 묻혔다. 2007년 노무현의 제안을 정략이라 비난했던 당사자가 자신의 위기 국면에서 개헌 카드를 꺼내 든 아이러니였다.

    문재인은 2018년 3월 헌정사상 두 번째로 대통령 개헌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야당이 표결에 불참해 투표 불성립으로 폐기됐고, 윤석열은 탄핵심판 최후진술에서 “직무에 복귀하면 개헌에 집중하겠다”고 했으나 파면됐다.

    1987년 헌법이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진단 자체는 틀리지 않다. 그러나 대통령들이 개헌을 꺼낸 시점에 공통점이 있다. 헌법 조문의 낡음과는 무관하게, 정치 연합의 결성과 유지가 필요할 때, 임기 말 국면 전환이 절실할 때, 차기 대권 구도에 개입하고 싶을 때 개헌 카드가 어김없이 등장했다. 그리고 결과는 정치 국면의 악화였다. 각서 파동은 당내 권력이 김영삼에게 넘어가는 계기가 됐고, 약속 파기는 연합을 무너뜨렸으며, 임기 말의 제안은 예외 없이 정략 시비 속에 좌초하며 제안자의 처지를 더 어렵게 만들었다.

    정치적 이득은커녕 부메랑이 돼 돌아온 것이다. 대통령이 추진의 중심에 설수록 현직의 이해관계가 개헌의 진정성을 가리는 역설은 반복됐다. 개헌의 적기는 정치 일정상 존재한 적이 없고, 현직 대통령은 가장 강력한 추진자인 동시에 가장 큰 불신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것이 개헌 잔혹사의 교훈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개헌 구상은 크게 두 축이다. 4년 중임 또는 연임제를 통해 중간평가와 책임정치를 가능하게 하고,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하되 그 권한을 국회로 넘기겠다는 것이다. 후보 시절인 지난해 5월 발표한 구상에는 대선 결선투표제, 국무총리 국회 추천제, 주요 기관장 임명 시 국회 동의가 담겼고, 8월 14일 SNS에 올린 입장문에서도 감사원 관할권과 국무총리 추천권, 인사권 일부의 국회 이양을 거듭 제안했다. 이원집정부제와 내각제에 대해서는 바람직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며 명확히 선을 그었다. 계엄 요건 강화까지 포함하면 내용적으로는 40년 개헌 논의가 수렴해 온 지점에 서 있는 셈이다.

    그러나 권한 분산이 진심이라면 그 첫 번째 시험대는 개헌 이후가 아니라 지금이어야 한다. 현행 헌법 제86조와 제87조는 이미 국무총리에게 행정각부 통할권과 국무위원 임명 제청권, 해임 건의권을 부여하고 있다. 대통령의 권한을 나눠 받을 헌법상 2인자가 이미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역대 정부에서 이 조항들은 사실상 사문화돼 ‘대독 총리’라는 오명만 남겼다. 

    현 정부도 다르지 않다. 한성숙 총리는 네이버 최고경영자를 지낸 기업인 출신으로, 선출직 경험도 정당정치의 경험도 없다. 기업경영의 성과가 곧 정치적 조정 능력을 보증하지는 않는다. 부처 간 이해 충돌을 조정하고, 당정을 조율하고, 야당과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는 일은 본질적으로 정치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총리가 내각의 정책조정자로서 실질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듣기 어려운 지금의 운용은 개헌으로 분권하겠다는 주장의 설득력을 스스로 약화시킨다. 헌법이 이미 부여한 분권의 장치조차 제대로 쓰지 않는다면 헌법을 고쳐 분권하겠다는 말을 국민이 믿기 어렵다. 총리에게 실질적 권한을 위임하는 국정 운용을 지금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개헌 캠페인일 것이다.

    개헌, 내용이 아니라 신뢰가 문제다

    이 대통령은 개헌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임기 단축도 수용할 수 있다고 했다. 임기를 줄이는 것이 개헌에 무슨 도움이 되느냐고 묻는다면, 답은 내용이 아니라 신뢰에 있다. 헌법 제128조 2항은 임기 연장이나 중임 변경을 위한 개헌이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게는 효력이 없다고 못 박고 있다. 그럼에도 잔혹사 내내 현직이 수혜자가 될 것이라는 의심은 한 번도 해소되지 않았다. 7월 28일 조정식 국회의장의 “현직 대통령 연임 가능 여부는 국민이 선택할 문제”라는 발언이 연임 개헌 논란으로 번지며 모처럼의 개헌 동력을 떨어뜨린 것이 최근의 사례다. 국민의힘은 “대통령이 연임 의사가 없음을 직접 선언하기 전에는 협조할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 결국 임기 단축 수용 발언은 이런 불신을 끊을 수 있는 승부수다. 개헌이 현직의 권력 연장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행동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발언은 의지가 수반돼야 의미를 갖는다. 8월 14일 청와대 입장 표명 다음 날 광복절 경축사에서 대통령이 개헌을 언급하지 않은 것을 두고도 진정성과 우선순위에 대한 해석이 엇갈렸다. 또한 40년간 쌓인 의심을 정말 끊어내려면 선언에 그칠 것이 아니라, 부칙에 현직 대통령 배제와 새 제도의 적용 시점을 명문화하는 제도적 확약까지 포함해야 한다. 수혜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조문이 명시됐음에도 불구하고 개헌 논의를 거부한다면, 그때는 발목을 잡는 쪽의 정치적 부담이 커지게 될 것이다.

    40년 개헌 잔혹사가 남긴 교훈은 첫째, 개헌의 성패를 가른 것은 개헌안의 내용이 아니라 제안자가 자신의 이해관계를 단절하는지 여부다. 40년의 논의를 거치며 무엇을 고칠 것인지에 대한 답은 이미 수렴돼 있다. 남은 것은 개헌 내용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의 문제다.

    둘째, 재적 3분의 2라는 문턱은 표결이 아니라 보이콧만으로도 지켜진다는 사실이다. 2018년과 2026년 두 차례 모두 제1야당은 반대표를 던진 것이 아니라 표결장에 들어가지 않는 것만으로 개헌을 좌초시켰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분명하다. 개헌은 표 대결의 문제가 아니라 합의 형성의 문제이며, 진영 대결 구도가 유지되는 한 어느 쪽이 다수가 돼도 성사될 수 없다. 다수 의석을 앞세운 속도전은 실패 공식이고, 소수당을 협상 상대가 아니라 돌파 대상으로 취급하는 순간 개헌 시도는 좌절된다. 그렇다면 개헌 추진의 주체도 달라져야 한다. 대통령이 개헌을 주도하는 순간 정략 프레임이 작동해 온 것이 잔혹사의 일관된 문법이었다면, 이번에는 국회 개헌특위와 시민 공론화가 전면에 서고 대통령은 한 걸음 물러서 있는 편이 성공 가능성을 높인다.

    셋째, 개헌 실패의 비용은 공짜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동안 제도를 고치지 못한 대가는 사람에 대한 심판으로 치러졌다. 두 명의 대통령이 파면됐고 급기야 비상계엄까지 목격했지만, 우리는 그때마다 제도의 결함을 통치자 개인의 일탈로 환원하며 헌법은 그대로 둔 채 지도자만 교체했다. 그러나 같은 제도하에 같은 비극이 반복된다면 그것은 더는 우연이 아니다. 이번 논의마저 무산된다면 그 비용은 다음 정부, 다음 위기에서 청구될 우려가 있다.

    다행히 시간은 남아 있다. 지금부터 준비해서 전국 단위 선거가 없는 2027년에 여야 합의된 개헌안을 만들고 2028년 총선에서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시나리오다. 아홉 번째 대통령이 잔혹사의 종결자가 될 것인지, 아홉 번째 실패 사례로 기록될 것인지. 그 갈림길은 결국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절연 의지가 얼마나 신뢰받는지에 달려 있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