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새 연재 | 김충립 前 수경사 보안반장 육필수기 ‘음모와 암투’

“내가 너희를 살렸는데 너희가 나를 배신해?”

1963년 7·6 쿠데타 음모와 하나회

  • 김충립 전 수경사 보안반장 | kimchoonglib@naver.com

“내가 너희를 살렸는데 너희가 나를 배신해?”

2/3
 

“내가 너희를 살렸는데 너희가 나를 배신해?”

박정희 대통령 내외와 전두환, 손영길 소령(오른쪽 끝). 손 소령은 청와대 외곽경비를 책임지는 30대대장 후임에 전두환을 추천했다(1967년 8월 17일). 사진제공·김충립

하나회는 처음엔 친목 모임이었을 뿐 정치적인 성격을 띠지 않았다. 1967년 손 중령은 육군대학에 입학하면서 공수부대에 근무하던 전두환 중령을 30대대장 후임으로 추천했다. 30대대장에 부임한 하나회 회장 전 중령은 이때부터 하나회를 비밀 사조직으로 키웠다.
하나회는 1972년 육사 24기까지 150명 정도가 가입한 거대 조직으로 발전했다. 1973년에는 육사 11기 장성 진급자 4명이 모두 하나회 출신이어서 최대 경사를 맞았다. 하지만 핵심 회원인 손영길, 전두환, 김복동 회원 간 선의의 경쟁과 대결이 시작되면서 과연 끝까지 의리를 지킬 수 있을지 이심전심으로 걱정하게 된다.  
이 점을 염려한 후배 회원들은 1973년 1월 초 26사단 76연대장이던 권익현 대령의 숙소에서 손영길, 전두환, 김복동, 최성택 회원의 장군 진급 축하모임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후배 회원들은 손잡이 끝에 별을 부착한 단검을 축하 선물로 만들어 주면서 ‘하나회 회원 간 의리를 지키지 못할 경우 이 단검으로 자결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그러나 이렇게 끈끈하던 의리는 정치적 욕망에 불타는 한 사람으로 인해 축하파티 후 두 달도 안돼 물거품이 된다.
하나회가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한 군내 비밀 사조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처음 보고된 것은 1973년 3월이다. 보고자는 윤필용·손영길 장군 쿠데타 음모 사건을 조사한 강창성 보안사령관이다. 보고를 받은 박 대통령은 “철저히 조사해 뿌리를 뽑고 엄벌하라”고 지시했다. 곧 영관급 장교 30여 명이 조사를 받은 후 강제전역 당했다. 보안사는 전두환 장군과 노태우, 정호용 대령도 조사하려 했으나 박종규 경호실장의 압력으로 성사되지 못했다.
 


4. 박정희와 하나회

“내가 너희를 살렸는데 너희가 나를 배신해?”

1973년 1월 하나회 후배들이 육사 11기 장성 진급을 축하하며 선물한 단검. 사진제공·김충립

1973년 윤필용·손영길 장군이 구속되자 이들과 가깝던 장교 30여 명이 군을 떠났고, 전두환·노태우 장군과 가까운 하나회 회원만 살아남았다. 이렇게 되자 모두 전두환 장군을 영웅으로 떠받드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하나회와 박 대통령은 밀접한 관계’라는 유언비어도 나돌았다. 하나회를 누구도 손댈 수 없는 막강한 조직으로 만들려는 의도에서 누군가 흘린 얘기였다.  
“하나회는 박 대통령이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이 필요해 만들었다. 1963년 조직 당시 윤필용 방첩대장이 대통령에게 보고해 승인받았다.”   
“박 대통령이 육사 출신 중 경상도 출신 위주로 조직하라고 했다.”
“박 대통령이 하나회 출신 장성들에게 ‘일심(一心)’이라고 새겨진 장검(長劍)을 하사했다.”
이러한 유언비어는 전 장군의 권위를 세우고 박 대통령의 절대 신임을 받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의도였으나 결과적으로 박 대통령의 권위와 명예를 훼손했다. 더 나아가 ‘박정희 대통령, 전두환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은 한통속’이라는 인식을 갖게 함으로써 현 박근혜 정부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동서화합과 국민대화합을 저해한다.  
하나회 결성 시기가 1963년이라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 모임에 참석했다는 육사 17기 김진영, 허화평, 허삼수 등은 당시 임관한 지 2년밖에 안 된 소위였다. 1963년 7·6쿠데타 음모 사건이 드러났을 때도 하나회라는 이름은 언급되지 않았다. 방첩부대장 윤필용 장군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해 승인을 받았다는 얘기도 시기적으로 맞지 않다. 윤 장군은 1965년에 방첩부대장이 됐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전속부관이던 손영길 장군은 “대통령에게 보고한 사실이 없다”고 증언한다.  
박 대통령이 경상도 출신을 중심으로 조직하라고 지시했다는 주장도 터무니없다. 하나회를 조직할 당시 육사 11기 노정기, 15기 고명승, 16기 장세동 등 호남 출신이 회원으로 가입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하나회 출신 장성들에게 ‘一心’을 각인한 장식용 장검을 하사한 일도 없다.



5. 1963년 쿠데타 음모 사건

1963년은 5·16혁명 주체세력이 대혼란을 겪는 시기였다. 1963년 2월 민주공화당이 창당되고 민정 이양을 준비하면서 군부로 되돌아갈 것인지, 민정에 참여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했다. 그리고 혁명 주체세력 내 함경도 출신(정일권, 임동하, 박임항 등)과 평안도 출신(장도영), 경상도 출신(박정희)의 갈등이 표출된 해였다. 1963년 7월 3일 평안도 출신 장도영 장군이 쿠데타 음모 혐의로 구속되고, 11월에는 함경도 출신 김동하, 박창암이 역시 쿠데타 혐의로 구속되면서 경상도 출신 박정희 장군이 대세를 잡았다.
1963년 초 육사 5기 김재춘 장군이 중앙정보부장이 되면서 김종필을 위시한 육사 8기와 극심하게 대립할 때 육사 11기들이 김재춘 장군과 한 편이 돼 육사 8기들을 제거하려 한 사건이 발생한다. 당시 노태우 대위는 김재춘 중정부장의 전속부관으로, 전두환 소령은 인사과장으로 근무했다. 김재춘 부장은 부임하자마자 중정에 근무하던 육사 8기생들을 몰아내고, 육사 11기 출신을 영입하는 등 분위기를 일신하면서 조직을 강화했다.  
1963년 3월경, 노태우 대위가 주동이 돼 전두환 소령과 육사 11기 출신 7~8명이 최성택 소령 집에 모였다. 이들은 당시 공화당 창당을 위해 ‘4대 의혹사건’을 일으킨 것으로 지목된 김종필 등 육사 8기생 40여 명을 제거하려는 쿠데타를 모의했다. 4대 의혹사건이란 1961년 9월 13일 서울 광장동 부지 18만 평을 확보한 후 1962년 12월 26일 워커힐호텔을 건축하면서 건축비를 횡령해 창당자금으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사건, 1961년 11월 일본 닛산자동차를 들여와 고가로 판 새나라자동차 사건, 1962년 5월 증권파동 사건, 1962년 회전당구대 100대를 일본에서 수입해 33곳에 설치 운용하면서 거액을 만든 사건을 말한다.
11기들의 쿠데타 명분은 ‘정치군인 숙정’이었다. 김종필 등 육사 8기들이 중정을 창설하고 군으로 복귀하지 않은 채 장기 집권을 위해 부당한 방법으로 정치자금을 만들었으니 이들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 이들은 전방에 근무하던 후배 장교들에게도 가담을 종용했다.  
이들은 1963년 7월 6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쿠데타를 모의하던 중 방첩부대 요원에게 음모가 발각됐다. 이들은 방첩부대장 정승화 준장의 지시로 체포돼 구속 조사를 받았다. 박정희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은 박종규 경호실장의 보고로 사건에 대해 알게 됐다. 당시 박 대통령은 제주도 출장을 마치고 여의도공항에서 청와대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대통령 옆자리에 앉은 박 실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2/3
김충립 전 수경사 보안반장 | kimchoonglib@naver.com

관련기사

목록 닫기

“내가 너희를 살렸는데 너희가 나를 배신해?”

댓글 창 닫기

2019/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