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호

[사바나]“정규직 월급으론 집 못 사!”…2030의 주식·부동산 ‘모두걸기’

자기 계발 NO, 자본 계발 YES!

  • 김건희 객원기자

    kkh4792@donga.com

    입력2021-04-13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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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기 계발’에서 ‘자본 계발’로 넘어간 젊은이들

    • “자본소득이 노동소득보다 가성비 높아”

    • “돈·시간에서 자유롭고 싶어 주식 투자”

    • “투자 수익, ‘흙수저’ 인생에 작은 위로”

    밀레니얼 플레이풀 플랫폼 ‘사바나’는 ‘회를 꾸는 ’의 줄임말입니다.

    [GettyImage]

    [GettyImage]

    한소은(28) 씨는 서울 한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5년차 방사선사다. 대학 졸업 후 3년간 이 병원에서 계약직 방사선사로 일하던 한씨가 치열한 경쟁을 뚫고 정규직이 될 수 있었던 건 자기 계발 덕분이었다. 현장에서 실무 능력을 쌓으며 대학원에 진학해 2019년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한씨가 주말과 연휴까지 반납하고 하루 8시간 3교대 근무하며 매달 손에 쥐는 돈은 240만 원 정도다. 

    한씨는 지난해 6월 처음으로 주식 투자를 해 2개월 만에 400만 원을 벌었다. 친구가 추천한 종목에 투자했을 뿐인데 막대한 수익을 올리자 한씨는 ‘돈은 이렇게 버는 거구나’ 하는 느낌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지금 250만 원을 굴리면서 투자에 대해 조금씩 배워나가는 상태다. 3월 중순 현재 한씨 투자 수익률은 17%. 그는 “경험이 좀 더 쌓이면 종잣돈을 5000만 원으로 불려 본격적으로 투자에 나설 생각”이라고 밝혔다. 한씨 얘기다. 

    “주식 투자를 한 지 6개월 좀 넘었는데, 이제는 주식으로 얻는 소득이 노동소득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들이는 노력과 그 결과로 얻는 수익을 비교해보면, 투자 쪽이 노동보다 확실히 ‘가성비’가 높거든요. 이런 상황에서 주식 투자에 몰두하지 않을 이유가 없죠.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정규직 일자리를 얻었지만, 임금 상승률은 집값 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하는 게 현실이니까요. 평생 회사만 다녀서는 집 한 채 마련하기 어렵잖아요.”

    자기 계발 NO, 자본 계발 YES

    지난해 5월부터 주식 투자를 하고 있는 한소은 씨 주식계좌 현황. 누적 수익률이 17.35%로 기록돼 있다. [한소은 제공]

    지난해 5월부터 주식 투자를 하고 있는 한소은 씨 주식계좌 현황. 누적 수익률이 17.35%로 기록돼 있다. [한소은 제공]

    직장인 신주영(31) 씨는 요즘 친구들 사이에서 ‘위너(승자)’로 꼽힌다. 종잣돈 3000만 원으로 부동산투자를 시작해 억대 자산가가 됐기 때문이다. 그를 ‘성공’으로 이끈 건 이른바 ‘갭투자’다. 신씨는 지난해 2월 매매가 3억6000만 원인 경기 용인시 구축 아파트를 전세(보증금 2억9000만 원)를 끼고 매수했다. 그동안 모은 돈 3000만 원에 신용대출 4000만 원을 보태 매입 자금을 마련했다. 3월 기준 이 아파트는 5억2000만 원에 거래된다. 



    신씨는 “정부의 ‘집 사지 말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집을 살 기회라고 판단한 게 주효했다. 돌아보면 그때 최고의 선택을 한 것 같다”며 만족해했다. 

    최근 2030세대 사이에서 투자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이들은 주식·부동산 등에 투자해 수익을 올리는 데 몰두한다. 이에 대해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과거 우리 젊은이들의 목표가 ‘자기 계발’이었다면, 요즘은 ‘자본 계발’ 쪽에 더 관심을 두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한 교수 얘기다. 

    “지난 10년간 우리나라 고용시장의 트렌드는 안정성 추구였다. 많은 청년이 소득은 좀 낮더라도 정년이 보장된 공무원이 되기를 바랐다. 그것을 목표로 치열하게 공부하며 ‘자기 계발’에 몰두했다. 그런데 최근 이런 흐름에 변화가 생겼다. 급속도로 치솟는 부동산 값 등을 보며 안정적인 직장을 갖는다 해도 미래 행복이 보장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 탓인 것 같다. 이제 청년들은 주식·부동산 등에 투자해 자산을 불리는 ‘자본 계발’을 추구한다.”

    “돈·시간에서 자유롭고 싶어 주식 투자”

    미국 배당주를 중심으로 투자하고 있는 권일영 씨 주식계좌 현황.  [권일영 제공]

    미국 배당주를 중심으로 투자하고 있는 권일영 씨 주식계좌 현황. [권일영 제공]

    정보통신(IT) 계열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3년차 직장인 권일영(31) 씨도 그중 한 사람이다. 그는 대학 전공을 살려 원하는 기업에 취업했지만, 업무와 사내 문화 등이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느꼈다. 직장 생활이 갑갑하게 느껴지던 지난해 4월, 권씨는 한동안 침체에 빠졌던 세계 주식시장이 스멀스멀 치고 올라온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이때부터 과거 가상화폐에 넣어뒀던 돈 일부를 찾아 애플, 테슬라, 3M, 존슨앤존스, AT&T 등 미국 배당주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현재 권씨가 미국 주식에 투자한 돈은 한화로 1억1200만 원 수준이다. 지난해 12월까지, 약 8개월간 벌어들인 수익은 1000만 원에 달한다. 그는 “미국 주식 투자를 시작한 것은 한국 주식에 비해 정치·경제 상황에 따른 변동이 적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며 “수익률이 높든 낮든 5년 이상 장기 투자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권씨 얘기다. 

    “회사 들어오기 전엔 대기업 직원이 되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을 줄 알았어요. 실상은 다르더군요. 상사 대부분이 주택담보대출금 갚고 아이들 사교육비 내느라 허덕이는 게 느껴져요. 그걸 보면서 ‘월급만으로는 경제적 자유를 얻을 수 없구나. 여기서 승진하고 연봉이 오른들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을 했죠.” 

    그때 권씨 눈에 들어온 게 주식 투자라고 한다. 그는 “열심히 정보를 모으고 공부해 투자하면 높은 수익이 따라온다는 게 좋다”며 “주식 투자를 시작한 뒤 ‘잘만 하면 내가 진짜 원하는, 돈과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이 생겨 용기가 났다”고 말했다. 

    요즘 유튜브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는 투자 관련 정보가 넘쳐난다. 젊은 세대가 투자에 뛰어드는 데는 그 영향도 적잖다. 직장인 윤성희(30) 씨는 “예전엔 주식은 패가망신의 지름길이고, 펀드 가입을 권하는 사람은 다 사기꾼인줄 알았다. 안전한 재테크 수단은 예금·적금밖에 없다는 생각에 제2금융권까지 뒤져 금리가 가장 높은 곳에 통장을 만들고 돈을 모았다”고 했다. 그런데 지난해 봄, 친구들과 함께 만든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서 주식 투자 성공사례를 접한 뒤 마음이 바뀌었다고 한다.

    “투자 수익은 ‘흙수저’ 인생의 작은 위로”

    “경제적으로 넉넉한 환경에서 자란 ‘금수저’ ‘은수저’ 친구들이 주식 투자를 해서 돈을 더 많이 불렸더라고요. 예금 적금만 하다 보면 그 애들과의 경제적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질 수 있겠다는 위기감을 느꼈어요. 용기를 내서 주식 투자를 시작했죠.” 

    윤씨가 종잣돈 3000만 원으로 투자한 종목은 정보통신기술(ICT) 인프라 제조사와 무기 화학물질 제조사 등. 3월 중순 현재 투자 수익률은 10%에 이른다. 그동안 이자 1~2%를 받는 데 만족하던 윤씨에게 이 수익률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고 한다. 그는 “이 돈이 부모님한테 물려받을 것 하나 없는 ‘흙수저’ 인생에 작은 위로가 돼주는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최근엔 일정한 소득이 없는 대학생이나 취업준비생도 앞다퉈 주식 투자에 뛰어드는 분위기다. 대학생 안재성(25) 씨는 “지난해 학과 단톡방에 20학번 새내기가 ‘돈 생기면 테슬라 장투(장기투자)해야 할까요’ 라는 내용의 질문 글을 올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모든 수업이 온라인으로 전환된 탓에 서로 얼굴도 못 본 사이인데, 얼마나 궁금했으면 이 방에 저런 글을 올렸을까 싶었다. 동시에 온 국민이 주식 투자를 한다는 걸 실감했다”고 말했다. 

    노량진 고시촌을 오가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정지훈(29) 씨도 “요즘 스터디카페 휴게실에 가면 휴대전화에 주식 거래 프로그램 창을 띄워놓고 한숨을 내뱉거나 탄성을 지르는 공시생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씨 또한 주식 투자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부모님이 자취방 월세 보증금에 보태라며 준 돈 1000만 원을 몽땅 주식계좌에 넣었다. 3월 중순 현재 수익률은 –22%. 그러나 투자를 멈출 생각은 없다고 한다. 정씨는 “내가 비록 일자리는 없지만 스마트폰과 시간이 있지 않나”라며 “투자를 해야 그나마 돈을 벌 가능성이 생기는 것 같다”고 했다.

    “일자리 없어도 스마트폰·시간이 있으니 투자한다”

    정씨는 2019년 P2P 투자를 했다가 빚을 진 경험이 있다. P2P는 ‘Peer to Peer’의 줄임말로, 대출이 필요한 개인 및 기업이 은행이 아닌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투자자 돈을 조달받는 금융 직거래 서비스를 말한다. 정씨는 “나름 안전하다고 생각해 돈을 넣었는데 손실이 났다. 그걸 주식 투자로 만회하려다 빚이 더 늘었다”며 말끝을 흐렸다. 

    최근에는 소득이 없는 2030세대가 빚을 내 투자하는 이른바 ‘빚투’도 늘고 있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 30대 미만 청년의 신용융자거래 잔고는 4178억 원이다. 전년 연말(1624억 원)과 비교해 2554억원(157.3%)이 폭증한 수치다. 신용융자 거래 잔고는 개인이 주식투자를 하려고 증권사에서 빌린 금액으로 ‘빚투’를 보여주는 지표로 쓰인다. 이에 대해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증시가 조정을 받으면 빚을 내 투자한 사람이 더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소득이 없으면 더 위험하다”며 “정부는 청년이 미래에 불안을 느끼지 않도록 일자리를 제공하고 그들 삶의 질을 높일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부동산시장에도 대출이 급증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3월 발표한 ‘2021년 2월 중 금융시장 동향’을 살펴보면 2월 말 기준 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전달보다 6조7000억 원 늘어난 1003조1000억 원을 기록했다. 2월 은행 가계대출 증가분 중 대부분은 주택담보대출로, 6조4000억 원이 늘었다. 정부가 강도 높은 부동산 가격 안정화 정책을 연달아 내놓고 있지만 부동산 관련 커뮤니티에는 여전히 “지금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쓴다는 뜻) 갭투자로 아파트 매수해도 되겠느냐”처럼 부동산 ‘빚투’를 염두에 둔 질문이 올라오고 있다. 

    이에 대해 양준모 교수는 “2030세대가 ‘영끌’로 내 집을 마련하는 걸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미 수도권 집값이 너무 올라 30대 맞벌이 부부가 30년 치 근로소득을 쏟아부어도 갚아나가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향후 집값이 하락하거나 금리가 상승할 수 있는데 큰 빚을 내 투자에 뛰어드는 건 가계는 물론 국가경제 측면에서 봐도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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