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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립 前 수경사 보안반장 육필수기 음모와 암투

전두환〈보안사령관〉, ‘보안사령관 교체’ 정보에 정승화〈계엄사령관〉 전격 체포

12·12쿠데타 전말

  • 김충립 | 前 수도경비사령부 보안반장 kimchoonglib@naver.com

전두환〈보안사령관〉, ‘보안사령관 교체’ 정보에 정승화〈계엄사령관〉 전격 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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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참모총장 vs 보안사령관

1979년 10월 26일 오후 7시경 총격 현장에 있던 비서실장 김계원은 사건 발생 즉시 청와대 경호실에 비상을 걸고 경호실 병력을 현장에 출동시켜 대통령과 차지철의 신병을 확보해야 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을 국군서울지구병원으로 옮긴 뒤 비서실에 도착한 김계원은 8시 40분 경호실 차장 이재전에게 “경거망동하지 말고 병력을 출동시키지 말라. 내가 관련돼 있으니 더 알려고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그는 범인 김재규 체포를 방해한 죄목으로 사건 발생 3일 후인 10월 29일 구속됐다. 12월 20일 계엄 보통군법회의에서 김재규 등 7명과 함께 내란목적 살인 및 내란 중요임무 종사 미수죄로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며칠 후 무기징역으로 감형됐고, 1982년 형집행 정지로 석방됐다.

사건 당일 김재규의 요청으로 현장에 와 있던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은 사건 직후 김재규와 함께 육군본부 B-2 벙커로 향했다. 그는 김재규가 요청한 대로 계엄사령관직을 수행하면서 8시 5분 이재전 경호실 차장에게 전화를 걸어 병력 출동을 금지시키는 ‘불법 명령’을 내렸다. 8시 10분에는 수경사령관 전성각 소장에게 전화해 “앞으로는 참모총장의 명령만 받아라. 지금 즉시 출동 준비를 하라. 사령관은 즉시 B-2 벙커로 오라”고 했다. 또한 노재현 국방장관의 지시로 김재규를 체포한 전두환에겐 “안가에 정중히 모시라”고 지시했다.

정 총장은 전두환이 김재규를 체포해 보안사 서빙고 분실에 구속할 무렵 최규하 국무총리가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계엄사령관에 임명됐고, 동시에 전두환은 정승화에 의해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됐다. 당시 전두환은 정승화를 체포해야 한다고 직감했지만, 정승화가 직속상관이 되면서 이를 실행하기 어렵게 됐다. 갈등의 씨앗은 그렇게 싹을 틔웠다.   

합수부가 김계원을 구속한 10월 28일 정승화는 전두환 합수부장에게 “수사관을 총장실로 보내라”고 지시했고, 10월 29일 오후 8시부터 자정까지 총장실에서 이학봉 합수부 수사국장 등으로부터 조사를받았다. 이후 10월 31일과 11월 1일 등 모두 3차례 조사 받았다. 그는 조사를 받던 중 수시로 군 수뇌부 인사를 서울로 호출한 뒤 자신이 10·26에 연루되지 않았음을 강조했고, 전두환에게 “수사를 빨리 종결하라”며 채근했다.





죽느냐, 죽이느냐

전두환〈보안사령관〉, ‘보안사령관 교체’ 정보에   정승화〈계엄사령관〉 전격 체포

1979년 11월 19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노재현 국방장관이 정승화 계엄사령관 등 3군 총장을 동석시킨 가운데 국방부 현황 보고를 하고 있다. [동아일보]

그러나 이학봉은 11월 2일 전두환에게 정승화 연행 조사를 건의했고, 전두환은 노재현 국방장관에게 이를 건의했으나 노 장관은 “시국이 불안해진다”는 이유로 수락하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정승화가 노재현과 함께 과도정부 수립과 관련해 주목할 만한 행보를 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필자가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11월 초 정승화는 최규하 총리를 과도정부 대통령으로 모시자고 노재현과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화당에서 김종필 총재를 과도정부 대통령으로 추대한다는 정보를 입수하자 공화당 사무총장 길전식과 정책의장 장경순에게 압력을 넣어 김종필의 대통령 출마를 막았다는 얘기도 있었다. 결국 최규하는 12월 6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제10대 대통령으로 선출돼 12월 21일 제10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따라서 전두환이 최 총리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는 일각의 주장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과도정부 수립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진 정승화는 그 기세를 몰아 김재규의 사형판결을 면하게 하려고 정병주 특전사령관, 장태완 신임 수경사령관과 자주 접촉하는 정황이 포착됐다. 김재춘 전 중정부장이 육사 5기 동기생인 정승화를 만나 전두환과 노태우 등이 1963년 쿠데타를 주도한 사건을 언급하면서 이들을 조심하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합동수사본부가 자신을 겨냥하고 있음을 눈치챈 정승화가 12월 9일 노재현과 골프를 치면서 전두환을 보안사령관에서 다른 보직으로 전출시키기로 합의했다는 정보가 보안사령부에 포착됐다.

죽느냐, 죽이느냐. 결전의 시간은 다가오고 있었다. 이에 전두환은 이학봉에게 12월 12일에 정승화를 연행하라고 명령했고, 정승화 체포 시각에 맞춰 최규하 대통령으로부터 승낙을 받기로 했다. 그러나 최 대통령은 국방장관(노재현)의 결재가 있어야 승낙하겠다며 버텼다. 한참 후 노재현이 나타난 뒤에야 장관과 대통령의 결재를 받았다. 정승화를 연행한지 8시간이 지나 대통령 사후 결재를 받은 것이다.

12월 12일 정병주 특전사령관은 보안사령관으로부터 서울 신촌 모처에 만찬 초대를 받았다. 필자는 정 사령관이 수경사령부 제5헌병 대대장 조홍 대령의 장군 진급 축하 만찬에 장태완 수경사령관과 함께 초대받아 참석한다는 것을 보고하고 퇴근했다.

그런데 8시경 비상령이 발동됐다. 특전사 보안반으로 달려가니 정승화 체포와 정병주의 반발 상황을 들을 수 있었다. 8시 30분경 하달된 지시는, 신촌에서 식사 중이던 정병주가 특전사로 갈 예정이니 도착하면 보안사로 모셔 오라는 것이었다.   

9시경 특전사에 도착한 정병주는 약간의 취기가 있었고 매우 흥분돼 있었다. 도착 일성은 제1여단장 박희도 장군과 제3여단장 최세창 장군을 찾으라는 것이었다. 그 무렵 두 여단장은 30대대장실에 가 있었기에 연결되지 않았다. 그러자 정병주는 부사령관 이순길 장군과 인사처장 강리건 대령, 헌병대장 등 3명에게 “1여단으로 가서 출동을 저지하라”고 지시했다. 1여단의 무장을 해제하고 출동을 저지할 것, 1여단에 배속된 병력 수송용 차량을 경기 부천의 9여단으로 보내라는 명령이었다.

그리고 9여단장 윤흥기 장군에게는 즉시 출동해 육군본부와 국방부를 점령하라고 명령했다. 1여단의 임무를 9여단에 맡기고 1여단의 발을 묶어놓으라는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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