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호

똑똑한 여성은 왜 임신이 잘 안될까

[난임전문의 조정현의 생식이야기]

  • 난임전문의 조정현

    입력2022-07-1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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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의 몸은 남성보다 민감하다.[Gettyimage]

    여성의 몸은 남성보다 민감하다.[Gettyimage]

    우리 사회에 난임 부부가 날로 늘어나고 있다. 이유가 뭘까. 늦은 결혼(晩婚), 여성의 나이, 난소기능 저하, 생식기 병변, 남성 쪽 요인 등 여러 원인을 뒤로하고서 35년 이상 난임 전문의로 사는 필자의 의학적·사회적 견해로 판단하건대 우리 사회에 똑똑한 여성이 너무 많아지는 것도 일조하고 있다고 본다. 여성이 사회에 진출해 직업을 갖고 왕성한 활동을 하는 것이 보편화한 지금, 자연임신율이 전반적으로 떨어지고 있어서다. 난임 문제를 왜 여성 탓으로만 돌리려 하느냐고 하겠지만, 임신·출산 주체가 여성이므로 어쩔 수 없다.

    여성이 직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면 아무래도 임신을 기피할 수 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결혼 생활의 현실을 정확하게 알게 되고, 출산하면 모든 면에서 희생을 감내하는 어머니로서 살아갈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보니 똑똑한 뇌가 본능적으로 임신과 멀어지도록 만드는 것인지 모르겠다. 여성의 몸은 무의식의 깊은 심연에서 부르짖는 소리까지 느끼며 적응하고 변화한다.

    지금까지 통계를 봐도 고학력 여성일수록 비혼율이 높고, 결혼하더라도 첫 출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자녀를 낳지 않을 확률이 높다. 부부 합산 연간 소득이 1억 원을 넘는 경우 자녀가 없거나 원하지 않는 경우가 45%에 달했다. 철밥통 직장에, 맞벌이까지 하고 있다면 자녀 두 명 정도는 거뜬히 키울 수 있을 텐데, 출산에 관심이 없거나 아예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한편으로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아등바등 사는 부부들이 임신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례가 더 많지 않은가. 놀부보다 흥부에게 더 자식이 많은 것처럼 말이다.

    흥미로운 연구 결과로 지능지수(IQ)가 높을수록 불안장애를 겪을 가능성이 크고, 불안 수준이 높을수록 지능지수가 높게 나왔으며 리비도 저하 혹은 생식기능 저하로 이어졌다. 약간의 걱정과 스트레스는 뇌를 발달시킬 수 있지만, 지나친 불안과 초조로 정서적 불안 상태가 계속되면 생식 능력이 저하될 수 있다. 나아가 우리 의지와 관계없이 조절되는 자율신경계에 문제가 생겨 호르몬 분비 시스템이 불균형 상태에 빠지면 결과적으로 생식기능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지난해 스위스 취리히대가 발표한 세계 각국의 IQ 조사에서 독일(5위), 싱가포르(4위), 대만(3위), 일본(2위)보다도 한국인의 평균 IQ가 더 높다는 기사를 접했을 때 기뻐하기보다는 옛 노인들이 입버릇처럼 “가방끈이 길면 길수록 결혼 안 하고 애도 안 들어선다”고 했던 말이 뇌리를 스쳤다. 한국의 출산율이 가임여성 1명당 0.84명으로 세계 200개국 가운데 꼴찌라서 더 그러했을 것이다.



    불필요한 걱정 떨쳐내라

    난임 전문의로 수만 명의 난임 여성을 만나면서 내린 결론이 있다. 여성이 너무 똑똑하고 예민하면 자연임신이 잘 안되고, 시험관아기시술(IVF)을 시도하면서도 임신 성패에 대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서 스스로의 생식력을 저하시켜 버리더라는 것이다. 옛말에 걱정도 팔자라고 했다. 필자가 만나본 똑똑한 여성들은 불필요한 걱정을 지나치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당시 38세 여성이었다. 혈액검사로 호르몬 수치를 체크하는데 그녀는 혈중 호르몬 수치에 매우 민감했다. 공무원이라서 그런지 모든 부분을 객관적 데이터 등으로 이해하거나 믿었다. 임신에 성공한 후에도 프로게스테론, 에스트로겐 수치를 계속 체크해 달라고 요청할 정도였다. 초음파로 태낭(아기집으로 보이는 주머니)이 확인되면서부터는 태낭의 크기를 hcg호르몬(배아가 착상되면 분비되는 호르몬) 수치 변화로 가늠하는데, hcg호르몬 수치가 더는 올라가지 않아 안타깝게도 유산되는 것 같아 보였지만 필자는 6~7일 더 기다려보자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태낭의 크기에 변화가 없으니 소파수술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마침내 내가 입을 열고 말았다.

    “임신은 생식내분비학이라는 과학에 의존하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어요. 조바심을 버려야 건강한 임신을 할 수 있어요.”

    요즘 여성들은 정말 똑똑해서 반(半)의사나 다름없다. 지금까지 만나온 의사들의 다른 처방과 의학적 소신들을 정리해서 내게 말해 줄 정도다. 인터넷을 뒤져가면서 수집한 난임 관련 처방과 사례를 꼼꼼히 메모해 와서 내게 질문한다. 의사로서 난감할 때도 있지만 자료 수집 능력이 놀랍고 경이로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그런 여성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과 걱정도 많아진다. 사실 의사마다 소신이 다른 것은 저마다의 경험을 통해 피드백된 통계의 결과다. 아무리 같은 난임 사례라고 해도 사람마다 몸과 반응이 달라서 또 다른 케이스가 될 수 있다. 임신의 세계는 아무리 최신의 생식보조술이라고 해도 저마다의 운명도 무시할 수 없기에 ‘절대’라는 가치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

    그나저나 똑똑한 여성들은 왜 임신이 잘 안될까. 여성의 몸은 남성에 비해 민감하다.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만 해도 그렇다. 피로 누적 등의 정도가 남성에 비해 높다. 남성들은 연봉이나 근무 환경에 만족하면 어지간한 일은 감내하는 편이지만 여성은 대화와 소통에 민감해 상사와 동료, 심지어 거래처 등에서 빚어지는 인간관계로 인한 심리적 스트레스가 상당하다. 여성은 고민할 때 잠을 설치거나 불면에 시달릴 수 있다. 잠을 못 자면 뇌 전두엽 피질 활동이 저하되면서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이 떨어져 까칠하고 신경질적으로 돌변할 수 있다.

    특히 임신 주체인 여성이 걱정과 불안, 불면에 시달리면 자연임신율이 낮아질 뿐 아니라 스스로 임신을 기피하거나 포기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여성이 임신을 거부하는 이상 출산의 문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IVF 환자 중에는 실패 후 재도전을 위해 몇 달 쉬면서 자연임신에 성공하는 경우가 꽤 있다. 난임 시술을 잊고 무심하게 지낸 것이 임신이 잘되는 환경을 만드는 데 큰 보탬이 된 셈이다.

    “괜찮다, 괜찮아”

    필자는 환자가 문을 열고 들어올 때 이름을 크게 부른다. 세상 그 누구와도 다른, 아름다운 이들에게 “○○○ 씨, 잘 지내셨어요?” 하며 반갑게 맞이한다. 세상 시름 다 잊고, 마음의 짐을 다 벗어던지고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임신에 도전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서다. 임신이 안된 이유보다 그녀만의 가임력과 장점을 설명해 주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자신감으로 기분이 한껏 좋아지면 임신도 잘된다. 나는 삼신할머니가 우주에 있지 않고 여성 저마다의 가슴속에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날 좌절의 세월을 보내며 허구한 날 울었다는 축구선수 손흥민이 불굴의 투지로 세계 정상에 올랐듯 난임 여성도 포기하지 않으면 꿈을 이룰 수 있다. 그래서 똑똑하게 따지는 난임 여성들을 “괜찮다, 괜찮아” 하고 다독이며 도전을 포기하지 않도록 독려한다. 근거중심의학(Evidence based medicine)으로 모든 의학이 가고 있지만 임신만큼은 뜨거운 심장이 필요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려야 한다고 귀띔한다. 그 고단한 길에 난임 전문의의 도움이 조금은 힘이 될 것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마음이 편안해야 아기가 잘 들어선다는 것은 순리이자 의학적 팩트다.


    조정현
    ● 연세대 의대 졸업
    ● 영동제일병원 부원장. 미즈메디 강남 원장. 강남차병원 산부인과 교수
    ● 現 사랑아이여성의원 원장
    ● 前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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