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베리아·한국 등지에 서식하던 호랑이는 지금 멸종이 임박해있다.
개체 수가 많은 것은 종의 보존에는 유리한 일임에 틀림없다. 당연히 수가 많으면 그만큼 살아남을 가능성도 높아진다. 멸종 위급종, 위기종, 취약종이라고 분류되는 종들은 개체 수가 적기 때문에 그렇게 분류된다. 현재 지구에는 개체 수가 수천, 수백, 수십 마리나 몇 마리에 불과한 종들이 있다. 여기에다 번식하기 어려운 환경이 닥치면 멸종은 시간문제다.
예컨대 어떤 조류가 겨울에 멀리 남쪽으로 갔다가 봄에 돌아왔는데 그 사이에 살던 숲을 사람들이 베어버렸다면? 그 종의 개체 수가 얼마 안 된다면? 한 계절 만에 멸종할 수 있다. 반면 개체 수가 많다면 그중의 몇몇은 숲이 아닌 도시의 공원이나 건물 창턱에 둥지를 틀고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할 것이다. 따라서 개체 수가 많을수록 대멸종 사건 때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고 할 것이다.
분포도 대멸종에서 살아남는 것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 개체 수가 많다고 해도 전부 한 곳에 모여 있다면 위험한 일이다.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것은 전멸당할 확률을 낮춘다.
북아메리카 동부에 살던 여행비둘기가 대표적 사례다. 여행비둘기는 인류가 아는 그 어떤 새보다도 개체 수가 많았다. 떼를 지어 날아갈 때면 하늘이 컴컴해지고 배설물이 비처럼 쏟아졌다. 1800년대 중반까지 북아메리카에 사는 새 10마리 중 4마리가 여행비둘기였다. 그러나 유럽 이민자들이 닥치는 대로 잡으면서 개체 수가 급감했다. 마지막 여행비둘기는 1914년 동물원에서 사망했다. 만약 여행비둘기가 동부뿐만 아니라 아메리카 대륙 여기저기에 분포해 있었다면 지금까지 살아남았을 것이다.
3만년 전까지 유럽 북부에 살았던 네안데르탈인도 마찬가지다. 만일 이들이 아시아, 오스트레일리아, 아메리카에까지 퍼져 있었다면 인류는 지금처럼 호모사피엔스 한 종이 아니라 두 종으로 나뉘어 티격태격하며 살고 있을지 모른다.
개체 수와 분포의 관점에서 보면 지금의 인류야말로 어떤 위기가 닥쳐도 살아남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종인 듯하다. 개체 수가 수십억에 달하고 지구의 곳곳에, 심지어 남극, 땅속, 우주 상공에까지 퍼져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개체 수나 분포는 대멸종을 피하는 절대 조건은 되지 못한다.
생물의 역사를 보면 공룡은 지금의 인류와 비슷했다. 공룡은 개체 수가 많았고 지금의 인류에 거의 맞먹을 정도로 지구 곳곳에 퍼져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백악기 말에 한꺼번에 전멸했다.
체구나 살아가는 방식이 서로 다르고 개체 수가 많으며 곳곳에 퍼져 있다는 생존 기준은 한 가지 요소의 서로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바로 다양성이다. 생물이 대멸종에도 불구하고 살아남는 근본적인 이유는 다양성 때문이다.
지구의 생명체가 다섯 차례의 큰 위기와 그보다 규모가 작은 무수한 멸종 사건을 겪으면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생물을 다양화한 점에 있다. 생명은 꾸준히 새로운 종들을 빚어내왔다. 개체군, 생태계, 생물권도 생명이 살아남기 위해 끝없이 자신을 다양화함으로써 나온 산물이다. 생명은 다양화하면 그만큼 온갖 변화로부터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안다. 달리 말하면 유전자를 다양화할수록 환경 변화에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인류가 일으키고 있는 여섯 번째 대멸종은 이 전제 조건을 무너뜨림으로써 일어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 인류는 수를 늘리고 곳곳에 흩어져 살며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자화자찬한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