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남 8학군 내 초등학교들은 몰려드는 전학생들 탓에 법정 학급인원 수 32~33명을 초과해 학급당 학생 수가 50여 명에 이른다.
4당5락으로 상징되는 극단적 경쟁이 대학입시에 집중되는 이유는 한판 승부로 인생이 결판난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앞서려는 노력이 한 학생의 ‘선행학습’으로 나타나면, 다른 학생들도 함께 뛰지 않으면 낙오자가 된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공교육의 진도를 한두 해씩 앞서는 진도 나가기 경쟁을 하게 된다. 따지고 보면 개개인의 합리적 선택이 모든 이의 고통을 증대시키는 집합행동의 딜레마에 해당한다. 모든 학생들이 충분히 잠을 자고 청소년기의 정서와 체력을 함양할 수 있는 수준으로 경쟁의 강도를 낮추어도 기회분포는 변화하지 않으므로 결과는 같아질 터인데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8학군 효과’는 그 효능이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과대포장된 민간요법과 같다.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8학군 효과’를 낳은 원인에는 여러 가지 가능성이 존재한다. 첫째는 ‘위광효과(creaming effect)’라고 명명할 수 있다. 즉 뛰어난 재능을 가진 중학교 졸업자들이 모두 강남으로 몰리면 결과적으로 강남에 있는 고등학교의 대학진학률이 높아질 것이라는 논리이다.
둘째는 ‘교육효과’일 터인데, 강남의 고등학교들이 똑같은 수준의 학생들을 받아도 훨씬 교육을 잘 시킬 것이라는 가설이다. 물론 이 가설은 학교가 아니라 ‘학원의 교육효과’로 대체해서 설명할 수도 있다.
셋째는 ‘공동체효과’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즉, 교육열망이 높은 학부모와 성취욕구가 강한 학생들이 모여 있을 때 이들 간의 상호작용이 분산돼 있을 때보다 더 나은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가설이다.
이 여러 가지 중에서 어떤 효과가 가장 큰 것인지는 장기간 경험적으로 축적된 자료에 기반한 엄밀한 분석을 요하므로 이 글의 범위를 벗어난다. 다만, 필자의 분석결과 서울의 25개 자치구를 단위로 한 분석에서 명문대학 입학생수와 가장 높은 상관관계를 보이는 것은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로서 상관계수가 90%를 넘었고, 그 다음이 아파트의 평당가격, 그리고 학생 1000명당 학원 수의 순이었다.
한국적 계급화의 상징
그렇다면 의사밀도가 높다는 것과 명문대 진학자 수가 많다는 것 사이에는 무슨 관련성이 있을까? 그것은 강남지역에 의사들과 학원이 몰리는 것이 모두 공통의 메커니즘으로 설명되는 상동구조를 갖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단편적 증거들에 비추어보면, 교육효과를 기대하고 몰려들기 때문에 발생하는 위광효과가 가장 큰 것으로 보인다.
사회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자기완성적 예언’이라고 부른다. 강남 집값의 폭등현상도 이와 다르지 않다. 모든 사람이 강남의 집값이 뛸 것이라고 기대하는 한 그 값은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생겨난 결과는 거대한 집단최면현상이다. 불과 13평짜리 아파트값이 10억원을 넘나드는 것은 현실적인 효용과는 무관하게 형성된 집단최면현상을 유지하는 데 개개인이 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부동산 거품만이 아니라 교육과 의료의 거품도 걷어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문제는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중산층이 와해되고 계층의 양극화가 심화되는 시점에서 강남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희망적인 미래를 기대했던 중산층의 상당수가 명예퇴직과 신용불량, 실직 등으로 신 빈곤층으로 퇴적된 반면, 외환위기를 무사히 넘긴 자산가들은 높은 금리와 부동산가격 폭등으로 엄청난 불로소득을 올리면서 강남의 진입장벽을 크게 높임으로써 자신들의 ‘닫힌 지위’를 공고화하는 데 성공한 셈이다.
이러한 급속한 닫힘 현상이 가져오는 상대적 박탈감이 최근에는 강남 아이들에 대한 유괴 협박, 폭파 위협 등과 같은 ‘강남 저주’ 현상에까지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