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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러플린 카이스트 총장의 직격탄

“한국 대학은 사회주의식, 애국심 버리고 경제논리 챙겨라!”

로버트 러플린 카이스트 총장의 직격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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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 상태라는 것 잘 안다

-그렇다면 러플린 총장이 추구하는 개혁은 미국의 어느 대학을 모델로 삼고 있습니까.

“나는 카이스트 경영시스템을 캘리포니아주립대(UC)에 맞추고 있어요. 이 대학은 전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대학 중 하나입니다. 어쩌면 내 모델은 MIT(매사추세츠공대)와 UC의 혼합일 수도 있어요.”

-카이스트 교수들은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바랍니다.

“글쎄요. 이렇게 설명해봅시다. 교수들은 대개 민주적 의사결정을 원합니다. 그러나 자기 돈 없이 외치는 민주주의란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정부를 지지하기 때문에 세금을 내고 그 돈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하는가의 의결권은 국회에 있지요. 따라서 민주적 의사결정은 국회에서 이뤄집니다. 만일 카이스트가 국회의 동의 없이 혼자 민주주의를 하겠다면 예산을 삭감당할 수도 있고, 심한 경우 학교가 폐쇄될 수도 있어요.”



-지금 총장께선 카이스트 내에서 고립돼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물론이죠. 예상했던 바예요. 한국 사람은 예의가 바릅니다. 그렇지만 경제원리는 한국인에게 그리 친절하지 못할 것입니다. 따라서 나는 현재의 갈등을 반기는 측면도 있어요. 난 투표로 선출된 게 아니라 정부에 의해 선택된 사람이기 때문에 교수들은 나의 행동을 독재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내년에 2년 임기가 끝납니다. 임기 연장을 할 건가요.

“이런 질문엔 의도적으로 대답하지 않고 있어요. 이것은 명예나 의미와 관계가 없는 일이에요. 내년도 예산에 대한 (구두)약속을 받았는데, 그 예산을 직접 보기 전엔 답하지 않을 겁니다.”

-정부의 의지 유무를 확인하고 싶은 거군요.

“정확한 표현이에요. 많은 금액이 협상 테이블에 놓여 있을 때, 상대방에게 카드를 다 보여줄 수는 없는 거죠.”

제조업은 다른 나라에 넘겨도 된다

러플린 총장은 잠시 휴식시간을 갖고, 기자에게 전자피아노 연주를 들려줬다. 자작곡의 제목은 ‘미들킹덤(Middle Kingdom)’. 그는 낯선 땅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산악자전거와 음악으로 푼다고 했다. 이론물리학을 전공하고 인터넷 혁명의 고향인 스탠퍼드대에서 제자들을 키워냈기 때문인지 IT업계는 물론 예술 방면에도 날카로운 식견을 지녔다.

‘부자는 현명하다’는 논리로 무장한 그의 투자행태는 어떨까. 그는 지금껏 번 돈 대부분을 미국 캘리포니아와 중국 상하이의 부동산에 투자했다고 한다. 농부의 후손답게 금융보다는 부동산을 선호한단다. 한국에도 투자하고 싶지만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투자 억제 정책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한다. 자신과 같이 한국에 투자하고 싶은 외국인의 의욕을 꺾는 부동산 정책이라는 푸념이다.

-한국경제에 대해 몇 가지 묻겠습니다. 한국경제의 강점은 제조업과 첨단업종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인데, 이런 추세가 얼마나 유지될까요.

“통계를 보면 알 수 있을 거예요. 한국경제는 임금에 대한 비교우위를 점차 잃고 있어요. 특히 중국의 등장 이후 그런 흐름은 더욱 빨라져 한국이 불리한 상황입니다. 일본과 비교한 가격대비 품질은 어떨까요? 역시 코스트는 좀 낮겠지만 그 갭은 빠르게 줄고 있죠. 따라서 5∼6년 안에 한국 제조업의 경쟁력은 상당부분 상쇄될 겁니다. 기술 측면에서도 마찬가지예요. 그동안은 한국이 일본을 추격하는 국면이었지만, 이젠 중국이 한국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한국 기업의 체력이 어느 정도인지 몰라 정확히 예측하기는 힘들겠지만 5∼6년 뒤에도 제조업 분야에서 현재와 같은 경쟁력이 유지될지는 미지수입니다.”

-총장께선 중국에 커다란 관심을 가진 것으로 압니다.

“중국효과는 이미 시작됐습니다. 미래가 거기 있기 때문이죠. 중국은 이미 주변국의 고용을 흡수했을 뿐 아니라 새롭게 창출하고 있어요. 이 점에 대해 걱정하는 한국인이 많은 듯합니다. 1970∼80년대 미국인이 일본과 한국을 보며 걱정했던 것과 유사하죠. 하지만 미국경제는 좋아졌고 오히려 일본이 장기불황을 겪었어요. 단순 제조업의 전이는 자연스러운 것이지, 그리 우려할 만한 것은 아니에요. 수익은 마케팅이나 금융분야에서 창출되거든요. 따라서 제조분야는 다른 나라에 넘겨도 상관없습니다. 혹자는 미국은 대국이라 상관없지만 한국은 위험하다고 반응하기도 해요. 과연 그럴까요? 한국 정부는 억지로라도 자국 노동시장을 보호하고 싶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실패할 겁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선택은 무엇인가요.

“얼마 전 한 지인의 가족과 식사를 했어요. 그는 캐나다에서 공학을 전공했고 부산의 큰 장난감 회사에서 일해왔죠. 그는 회사가 중국으로 이전될 것을 알고 자신의 영어능력을 이용해 국제 세일즈 분야로 자리를 옮겼어요. 부산에서 판매 일만 맡고 있죠. 이는 지금 전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일감은 매우 빠르게 중국으로 이동하고 있어요. 이 나라가 점차 탈산업화하는데, 놀랍게도 한국 사람들은 아직 돈을 벌고 있어요. 왜 그럴까요? 이는 이제는 공학뿐 아니라 더 넓은 범위의 기술이 필요하다는 걸 의미해요.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구매자와 소비자의 관계를 분명히 하고, 규칙에 의한 지배를 확립하는 것입니다. 그 관계가 명확해진다면 시장을 빼앗기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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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재 동아일보 주간동아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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