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월18일 서울 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 초청연설에서 버웰 벨 주한미군사령관은 “주한미군의 심각한 재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몇 달 안에 한국인 고용원 등에 대한 감축 결정을 내려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주한미군사가 금융기관명 밝히기를 거절했으므로 정확한 내용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자금을 맡길 회사를 선정한 원칙이 무엇인지는 그 투명성을 따져봐야 할 부분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금융 전문가는 “한국 정부기관이 이렇게 자금을 운용했다면 당장 ‘게이트’ 의혹이 터져 나올 일”이라고 말했다.
자금이 부동산 관련 펀드에 투자된 듯하다는 의혹에 대해, 법무법인 자하연의 김윤재 미국 변호사는 “미국 정부기관은 미국내에서는 자금을 운용하는 데 있어 엄격한 제한을 받는다. 불법적인 일은 물론 국가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운용은 금지돼 있다”고 설명한다. 물론 주한미군이 맡긴 돈이 한국의 부동산에 투자됐다면 미국 국외의 일이므로 법 위반은 아니지만, 우리 처지에서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님은 분명하다.
이에 대한 ‘신동아’의 추가질의에 주한미군사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우선 이자가 발생하지 않는 자금의 경우 자금을 맡은 회사들이 수익을 얻고 있는지 아닌지, 수익을 얻고 있다면 어떤 부분에 투자하고 있는지에 대해 이자를 지급받지 않는 주한미군은 관여하지도, 파악하지도 않고 있다. 다만 불법적인 일이 없었음은 분명히 확인해줄 수 있다. 해당 금융기관을 선정하는 과정을 밝히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이자가 발생하는 자금의 경우 돈을 지급한 한국 정부 담당부처와의 상의하에 계좌를 지정했고 지금도 그대로 있다.”
“주둔비 부족해 470명 해고”?
문제의 원인은 이들 자금이 소요시점보다 앞서서, 그것도 전액 현금으로 집행됐다는 데 있다. 한국 정부가 주한미군에 현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주한미군의 소요를 제기 받은 한국 정부가 직접 건설계약을 하는 방식이었다면 이 같은 문제가 발생했을 리 없다.
2002년부터 4년간 꾸준히 누적된 잔고가 8000억원이라면, 정기예금 복리이자 5%만 적용해도 최소한 1000억원 안팎의 이자가 발생한다. 전액 현금으로 지급하는 대신 한국이 건설계약의 주체가 되는 현물지급 방식이었다면 1000억원 내외의 이자는 고스란히 한국 정부 예산으로 귀속됐을 것이다. 뒤에서 다시 설명하겠지만, 현금으로 미군 시설비를 지원하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방위시설청이 직접 건설계약을 맺는 현물지급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발생할 수 없는 구조인 것이다.
자금 운용의 적절성 여부를 제외하고도 짚어봐야 할 부분은 남아 있다. 먼저 ‘주둔비 부족’에 관해 그간 한미 정부당국이 밝힌 언급들이다. 앞서 설명한 벨 사령관의 발언 외에도, 지난해 12월6일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마친 뒤 외교부 당국자는 “2004년도 협상에서 분담금을 줄였더니 주한미군의 인건비가 줄어 한국인 근로자 470여 명이 해고되고 시간외근무수당 등을 받지 못하는 일이 생겼다”며 “이번에 증액된 대부분은 한국인 근로자 인건비에 사용될 것”이라고 말했다(‘중앙일보’ 2006년 12월7일자).
고용인원을 해고해야 할 만큼 극심한 비용부족 상태와 수천억원대 자금의 예치는 어울리지 않는 그림이다. 금융권에 맡겨 이자를 받을 정도로 재량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돈이었다면, 인원해고를 막기 위해 쓸 수는 없었던 것일까.
이에 대해 김영규 주한미군사 공보관은 “인건비 문제와 관련해 주한미군사는 공식적으로 그런 설명을 한 적이 없으며, 자금이 부족해 한국인 직원을 해고한 사실도 없다. 다만 분담금 규모가 충분치 않으면 고용인원이 은퇴하는 등 자연감소가 생겨도 이를 충원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방위비 분담금 협상테이블에 마주앉는 두 기관의 말이 다른 것은 단순한 커뮤니케이션의 문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