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이명박은 정당이 만든 대통령이 아니다. ‘노사모’와 ‘경제 대통령’ 등 인터넷 여론을 통해 등장해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처럼 온라인 공간의 수많은 공동체가 우리 시대 정치·경제 질서를 바꾸고 있다. 새로운 조직과 방식으로 움직이는 ‘제4의 결사체’다. 이들은 이슈와 규모와 소통 구조에 제약이 없다는 특징을 보인다. 유연하고 자발적인 집단이다.
이 결사체가 경제·사회·정치적 영역에서 중요한 지표가 됐는데, 이는 새로운 질서로 봐야 한다. 기존의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하고 문제점을 드러내는 장치로 기능하는 것이다. 현재 대의 민주주의는 복잡한 현대사회적 요건을 끌어안기에 부족한 측면이 있다. 인터넷이 참여 민주주의의 폭을 넓혀 대의 민주주의를 보완해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직접 민주주의의 실현이라고 보는 것은 무리다. 다만, 참여 민주주의를 확장시키는 한편 대의 민주주의를 병행 발전시킨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발전으로 볼 수 있다.”(조대엽·고려대·사회학)
“한국인은 인터넷을 통해 대세를 알리는 단서를 찾고, 자신의 생각이 다른 이와 얼마나 유사한지 확인하는 행태를 보인다. 이것을 여론 형성이라고 한다면, 한국의 인터넷은 대세를 형성하는 데 폭발적인 힘을 보인다.
촛불시위를 ‘직접 민주주의의 출현’과 ‘위험한 포퓰리즘’으로 보는 것은 실제 현상과 관계없이 진보와 보수를 대변하는 표현인 것 같다. 촛불집회는 마치 티핑(tipping) 현상처럼 대중이 유행에 동참하는 양상을 보였다. 처음 참여하는 사람조차 뚜렷한 의도나 목적, 또는 이슈가 있었던 건 아니다. 미국 쇠고기 수입이 단서가 됐지만 결국은 집권세력에 대한 불만,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불만, 그리고 호기심 때문에 다양한 군중이 형성된 것이다.
그리고 집단 속에서 사람들은 군집행동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할 단서를 열심히 찾았다. 의식적인 측면에서는 미국 쇠고기 수입에 대한 반대가, 비의식적인 측면에서는 이명박 개인이나 미국과의 관계에 대한 불편한 감정이 구체적인 사회적 이슈로 드러난 것이다.
이런 경우 직접 민주주의라고 한다면, 그 ‘민주주의’는 대중의 모임 이상의 의미를 가지기 힘들다. 분명한 사실은 촛불집회는 대중의 모임이 현실에서 다양하고 예측불가능한 행태로 움직인다는 점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결국 한국사회는 대중을 아우르는 핵심 가치나 틀이 없는 상태다. 마치 촛불집회는 태풍의 형성과 진화, 그리고 소멸의 과정과 같다.”(황상민)
새로운 민주주의
“촛불집회는 한국 민주주의 정치구조 속에 나타난 대의제도의 기능 약화를 상징하는 사건이다. 근대 민주주의 정치제도는 대의제를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정당과 정당을 통해 선출된 의회가 대의제도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러나 한국은 민주주의가 공고화되는 과정에서 지역분할구도에 근거한 정당체제가 나타났다. 3김 시대가 그 시작이었다. 지역분할구도에 근거한 정당체제에서 정당은 민심(民心)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다. 후보에 상관없이 특정 지역에는 특정 정당 깃발만 내걸면 당선된다. 이러한 체제의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채 굳으면서 국민은 민심을 반영할 대의 메커니즘에 실망했다. 총선 투표율 하락이 이를 방증한다. 이런 현실 속에서 촛불집회가 국민의 의사표현 방법으로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IT 강국인 한국에서 인터넷을 통한 여론 형성은 민주주의 제도의 새로운 영역처럼 보인다. 민주주의 제도는 어떤 형태이건 국민 여론을 반영해야 하는데, 언론기관의 파행적 행태로 여론 반영 메커니즘이 실종·약화됐다. 언론기관이 여론 반영보다는 권력의 축으로 기능했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에서 인터넷을 통한 여론 형성과 오프라인의 촛불집회가 대안으로 탄생했다고 본다.”(김기정·연세대·정치학)
“‘인터넷 여론이 민주주의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인터넷 여론의 사회적, 정치적 효과를 지나치게 단순화할 위험이 있다. 오히려 인터넷 여론이 민주주의에 기여하는 바가 있다면 어떤 것이고, 부정적인 영향이 있다면 이는 어떤 것일까를 논의하는 것이 보다 생산적일 듯하다.
예컨대 인터넷을 통해 개인이 의제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이것이 개인적 네트워크의 범위를 넘어 익명의 대중에게 빠르게 전달되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 중 하나인 ‘다른 사람에게 본인의 의견을 알릴 권리(right to be heard)’를 실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이은주)
Q3 : 인터넷 여론의 형성과정과 관련해, 누리꾼 간 견제를 거친 합리적인 집단지성이라는 긍정적인 견해와 참여의 질과 수준이 낮은 감정적 비합리적인 선전·선동에 불과하다는 부정적인 견해가 엇갈립니다. 인터넷 여론을 형성하는 이른바 ‘집단지성’에 대한 선생님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인터넷에서 구현되는 집단지성(대중의 지혜)은 시끌벅적한 듯하지만 어딘가 질서가 있고, 늘 신선한 아이디어가 샘솟고, 기발하고 참신한 개성들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정말 살맛나는 세상, 마치 고대문명 발상지에나 있을 법한 정치무대, 부족사회와도 같다”(김국현. ‘WEB2.0 경제학’ 중에서)
집단지성의 사전적 의미는 ‘다수의 개체가 서로 협력 혹은 경쟁을 통하여 얻게 되는 지적 능력이 개개의 개체가 갖는 지적 능력을 넘어서는 현상’이다. 집단지성은 박테리아부터 동·식물까지 거의 모든 범주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예컨대 개미는 지능이 없지만 집단으로 모이면 대형 개미집을 만드는 지적 능력을 발휘한다.
위키피디아는 누구나 참여해 첨삭할 수 있는 백과사전이다. 내용이 틀렸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직접 고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그렇게 채워진 내용의 백과사전이 쓸 만할까 싶지만, 위키피디아는 나름의 신뢰성을 갖췄다고 평가받는다. 위키피디아의 성공은 인터넷 집단지성이 발현된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인터넷에서 나타나는 집단 의사결정 과정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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