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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없는 세상, 그 막돼먹음과 비천함

아버지 없는 세상, 그 막돼먹음과 비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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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없는 세상, 그 막돼먹음과 비천함
“산업화는 낮에는 아버지들을 공장으로 빨아들였다가 밤에는 작업장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공동숙소로 이들을 뱉어내었다. 가족들과 자식들에게 아버지는 점점 더 낯선 사람이 되어갔다.”(루이지 조야, 앞의 책)

그러는 사이 국가는 부성의 권위를 빼앗아갔다. 아버지들이 너무 바빠져서 가정에서 그 책임과 의무를 다할 수 없게 되자 국가는 교사들에게 그 역할을 맡겼다. 어떤 아버지들은 집단적으로 심리적인 상실감 때문에 난폭해졌고, 자식과 가족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불량 아빠’로 전락했다가 이윽고 ‘용도폐기’되는 사태에 이르렀다. 19세기에 ‘신’이 죽고, 시민혁명으로 ‘왕’이 단두대에서 사라졌는데, 이 두 가지의 사태는 머지않은 미래에 다가올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사태를 예고하는 상징적인 퍼포먼스였다.

“아버지의 권위는 민주주의의 원칙들에 굴복했고 그의 권력은 다양한 방식들을 통해 감소되어 왔다. … 소작농이 곡괭이를 집어던지고 공장 문을 드나들게 되던 날부터 그는 동시에 자식들의 시선이 닿을 수 없는 영역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동일한 운명은 차차로 수공업 장인들과 대장장이들 그리고 목수들에게도 다가왔다. 이들이 만들던 생산품들은 기계에 의해 만들어진 보다 저렴한 상품들로 대체되었고, 나무와 쇠를 가지고 작업하던 아버지들은 거리로 쫓겨나와 비인간적인 경영자의 이윤에 봉사하는 기계에 내몰리게 되었다. 공장에서의 작업은 한정되고 반복적이었기 때문에 아버지들은 차차로 자신들이 소유했던 기술들을 상실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그들은 일정한 행동만을 반복하는 단순노동자들이었기 때문에 아무런 책임감도 부여되지 않았고, 그에 따라 독창성 역시 모두 상실하고 말았다. 직업적인 전문 능력을 상실한 이후 아버지들은 자부심마저 잃어가고 있었다. 그들이 생산해 낸 제품들은 더 이상 자신들의 소유가 아니었고, 심지어는 이 제품들을 구경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도 흔했다. 하지만 이런 상실감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자식들에 대한 권위와 따뜻한 품(집)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들의 일과와 노동과 감정들은 자식들의 시야 밖에서 벌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아버지의 생활은 자식들의 생활과 관련된 것이 없었다. 아버지들은 여전히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지만 자식들이 성인으로 성장하게끔 이끌어주는 교사의 역할을 할 수는 없었다. 학교 선생님이 가족의 모든 역할을 대체할 수 없는 것처럼, 어떤 제도나 단체들도 대체할 수 없는 귀중한 교육의 기회가 박탈되어 버린 것이다.” (루이지 조야, 앞의 책)

아버지의 죽음

우리 역사 속에서 아버지는 어떤 수난을 겪었을까? 일제강점기 식민지 근대 속에서 우리의 아버지들은 독립운동을 하거나 아니면 일자리를 찾아서 만주 등지를 떠돌았다. 많은 아버지가 6·25전쟁 와중에 군인으로 차출돼 전쟁터에 끌려 나가야 했다. 그들 중 많은 아버지가 끝내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개발독재 시대에 아버지들은 산업역군으로 중동이나 독일 같은 먼 곳으로 떠났다. 그렇게 가족 곁을 떠난 아버지들은 역시 오랫동안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어디에도 진짜 아버지는 없었다.



김훈의 장편소설 ‘내 젊은 날의 숲’은 가족 안에 ‘아버지’의 자리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소설에서 군청 공무원이던 아버지는 뇌물을 받아 챙기고 일부는 상납하다가 구속된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뇌물을 받고 구속당한 아버지는 가족에게서 버림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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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 시인 kafkaj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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