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영유아 중 76%가 민간·가정어린이집에 다닌다.
어린이집을 믿고 아이를 맡겼다가 운영 비리 사실을 알게 된 학부모들은 분개했다. 서울 양천구 신월동의 한 학부모는 “없는 형편에 아이를 위해서 매달 8만 원씩 보냈는데 그 돈이 원장 호주머니를 채워줬다니 배신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들 어린이집에 대해 △서울형 어린이집 공인 취소 △300만 원 이상 수수 시 원장 3개월 자격정지 △리베이트 수수액 반환 등의 조치를 내렸다.
하지만 부당하게 걷어간 특별활동비를 학부모들이 바로 돌려받기는 어려울 듯하다. 2012년 11월 5일 적발된 어린이집 원장 31명은 집단 진정민원을 했고 서울 양천구 등 지자체는 경찰 조사가 발표된 지 8개월 후인 2013년 7월에야 행정처분을 내렸다. 서울시는 양천구 등 지자체에 2012년 10월부터 최소 4차례 행정처분을 독촉했고 이듬해 3월에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시설에 행정조치를 취하지 않아 행정의 신뢰성이 실추된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행정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10개월 동안 해당 어린이집들은 서울시 등의 정부보조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행정처분에도 불구하고 적발된 양천구 어린이집 20곳이 행정처분취소소송을 제기하면서 불법 수수액 반환 문제는 장기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뿐만 아니라 당시 적발된 어린이집 중 상당수가 집단 혹은 개인 명의로 소송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나상희 서울 양천구 구의원은 “부당하게 걷은 돈을 학부모에게 돌려주는 것에는 인색하면서 환수금에 상응하는 소송비용을 감수하는 어린이집 원장들을 보면 도덕성이 의심스럽다”며 혀를 찼다. 한 가정어린이집 원장은 “이들 업체는 ‘다들 잘못했는데 나만 재수 없게 걸렸다’는 생각에 인정을 못하는 것 같다”고 했다. 취재 결과 적발된 어린이집 중 자체 폐업한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정상 운영 중이다.
두 살짜리가 영어, 발레?
현행법상 어린이집 특별활동은 만 2세(24개월) 이상 어린이는 모두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엄마, 물” “이거 줘” 같이 두 단어를 겨우 붙여 말하는 수준의 만 2세 아이들에게 영어, 발레 같은 특별활동이 필요한지 의문스럽기도 하다. 현직 교사 G씨는 “만 2, 3세 아이 대부분이 특별활동시간에 꾸벅꾸벅 졸고 뭐가 뭔지도 모른다. 수업도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특별활동은 원장과 학부모 등이 운영위원회를 거쳐 함께 정하지만 실질적으로 원장의 입김이 강하다.
특별활동을 신청하고 싶지 않아도 대체 프로그램이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참가하는 경우도 있다. 교사 G씨는 “어린이집 정부보조금 중 ‘교구교재비’가 있어 어린이집은 특별활동을 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적절한 교구와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하지만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 부모 입장에서 특별활동을 안 시킬 수가 없다”고 전했다.
특별활동비 논란이 커지자, 어린이집 자체적으로 특별활동비를 합리적 수준으로 정해 받자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서울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한 원장은 “유사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백화점 문화센터의 경우 1시간당 1만 원꼴로 가격이 형성돼 있다. 우리도 비슷한 수준의 특별활동비를 받는다”고 밝혔다. 한 전직 복지사는 “복지관에서 특별활동 강사를 구할 때는 1시간 강사료에 참가자 수를 나누는 방식으로 비용을 산출한다. 어린이집도 특별활동비를 합리적으로 산출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어린이집 비리, 아동 학대 사건이끊이지 않으면서 어린이집을 감시·규제하는 법령이 늘어났다. 2013년 영유아보육법이 14번 개정됐는데 이 중 12번이 어린이집에 대한 감시·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이다. 장진환 한민련 정책위원장은 “어린이집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고 계속 옥죄려는 것”이라고 비판했지만 나상희 양천구의원은 “민간어린이집이라 해도 정부 지원을 받기 때문에 정부의 지도, 점검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반박했다.
서울시는 2009년 ‘서울형 어린이집’이라는, 국공립어린이집과 민간어린이집의 절충형 어린이집을 선보였다. 당시 오세훈 시장이 야심 만만하게 선보인 ‘서울시 여성정책 여행(女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국공립어린이집을 크게 늘리는 것이 실질적으로 어려우니 평가인증을 거친 민간보육시설을 서울형 어린이집으로 공인함으로써 국·공립 보육시설 수준으로 향상시키겠다는 시도였다.
민간어린이집 중 서울형 어린이집 인증을 받으면 시설장과 영아반 보육교사 인건비를 80% 이상 지원해주고 평균 보육료 수입의 10%를 시설임차료, 건물유지비 등 지출을 위해 지원해준다. 현재 서울형 어린이집은 2700여 곳에 달한다.
하지만 서울형 어린이집도 비리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서울 양천경찰서가 2012년 10월 적발한 어린이집 171곳 중 상당수가 서울형 어린이집이었다. 서울형 어린이집만을 위한 보조금 지원을 악용하는 사례도 눈에 띈다. 경찰에 적발된 모 어린이집의 경우 원장이 서울형 어린이집과 민간어린이집 두 곳을 운영하면서, 서울형 어린이집에 민간어린이집 교사들을 등록해 불법으로 인건비를 지원받은 정황이 드러났다.
서울형 어린이집 지원에는 정부 보조금뿐 아니라 서울시민의 세금도 들어가는 만큼 관리를 더욱 철저히 해야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자 서울시 측은 “비리나 부실 운영이 확인되면 어린이집 이름과 원장 이름, 위반 내용 등을 인터넷에 공개하고 한 번이라도 비리가 밝혀지면 어린이집 운영 허가를 취소하는 등 행정처분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