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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와 사귀는 ‘맛’ 한번 빠지면 못 헤어나요”

‘음지의 자유인’ 서울의 레즈비언들

“여자와 사귀는 ‘맛’ 한번 빠지면 못 헤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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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녀가 데이트를 할 땐 주로 남자가 데이트 비용을 더 많이 대는 편이죠. 레즈비언 커플의 경우 여성 역할을 하는 팸(famine)과 남성 역할을 하는 부치(butch)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 어느 한쪽이 데이트 비용을 더 많이 부담하기도 하나요.

A씨·B씨_ 반반씩(※ 이들의 설명에 따르면, 상당수 레즈비언 커플은 동거할 때도 각자의 수입과 재산을 따로 관리하며 생활비를 반반씩 부담한다고 한다).

▼ 실례되는 질문이지만, 만나는 여성분과 주로 플라토닉 러브를 원하는지 아니면 육체적인 사랑을 원하는지….

A씨_ 저는 육체적 사랑 쪽이죠. 세상에 가장 재미있는 게, 하나는 돈 버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섹스 아닌가요? 저 역시 관계 맺는 것이 좋아요.

B씨_ 결혼 상대로 여자와 사귄 여자는 반드시 피하라는 말이 있죠. 그 ‘맛’을 알면 절대 벗어날 수 없다고 해요. 레즈비언이 남자와 결혼해 파경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아요. 특히 팸은 열이면 열 전부 이혼해요. 부치는 좀 덜하지만요. 팸은 부치에게서 늘 챙김만 받아오다 남자를 챙기려고 하니 힘든 거죠. 부치는 항상 상대방을 챙겨만 주다가 남자에게 챙김을 받으니 만족해하는 거고요. 상당수 레즈비언 커플은 팸과 부치가 정해져 있어요. 팸과 팸인 경우도 많고요. 그러나 부치와 부치인 경우는 거의 없죠.



▼ 결혼에 대한 생각은?

A씨_ 하고 싶지 않아요.

B씨_ 저도 여자와의 결혼은 생각하지 않고 있어요.

A씨와 B씨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레즈비언들의 생각과 생활상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특히 여성과 사랑은 하되 결혼은 하지 않겠다는 대답이 흥미를 끌었다. 우리 사회와의 불가피한 타협처럼 들리기도 했다. 여자와 여자가 결혼을 하려면 양가의 가족을 설득해야 하고, 직장에도 알려지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며, 동성결혼을 허용하지 않는 법적 난제에 부딪혀야 한다. 감내하기 벅찬 일일 수 있다.

“아우팅이 싫어서…”

1990년대엔 서울 서대문구 신촌 창천동 어린이공원에 레즈비언이 모였다. 그래서 이 일대는 ‘레즈 공원’으로 불리기도 했다. 지금은 폐업한 최초의 레즈비언 클럽 레스보스도 1990년대 초 신촌에서 문을 열었다. 그러나 한 지상파 방송 시사 프로그램이 창천동 공원을 동성애자들의 탈선 온상으로 비판하면서 레즈비언들은 이 공원을 더 이상 찾지 않았다. 이제 레즈비언들은 홍대 앞을 터전으로 삼고 있다. 홍대 앞의 레즈비언 전용 클럽 L은 ‘금P토L’(금요일엔 P클럽, 토요일엔 L클럽)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레즈비언 사이에서 인기를 끈다. 물론 홍대 앞의 레즈비언 업소 사이에도 부침이 있다. 레즈비언 바 M은 올해 4월 문을 닫았다.

주말 저녁 L클럽을 찾았다. 이곳은 건물 8층에 위치해 고개를 들어 올려봐야만 간판이 보인다. 홍대 앞을 자주 다니는 사람도 여기에 레즈비언 클럽이 있는지 잘 모르는 이유다. L은 3개 층으로 돼 있다. 테이블이 많아 클럽보다는 술집에 가까운 인상이다. 디제잉에 맞춰 많은 여성이 스테이지에서 춤을 췄다. 이들에게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어보니 서울 강남, 부산, 수원 등 다양했다.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이름난 클럽인 듯했다. 지방에서 온 일부 여성은 KTX 첫차가 다닐 때까지 이 클럽에서 밤을 세웠다.

홍대 앞의 레즈비언 바들은 소위 레즈비언들의 번개(즉석만남)에 단골로 이용된다. 레즈비언 김은혜(25·가명) 씨는 “일반 카페에서 번개를 하면 아우팅(※ 동성애자가 원치 않게 커밍아웃당하는 일)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므로 레즈비언 술집에서 모인다”고 귀띔했다.

홍대 부근에서 레즈비언 단골 술집을 운영하는 C씨에 따르면, 서울의 레즈비언 세계에서도 계층이 나눠지고 있다. C씨는 “어느 순간부터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20대 레즈비언들만 홍대 앞 쪽 레즈비언 바에 온다. 사회적 지위가 어느 정도 있는 전문직 레즈비언끼리 따로 어울리는 경향”이라고 설명했다.

이태원의 레즈비언 바를 찾는 레즈비언들을 만나기 위해 저녁 늦게 지하철 이태원역에서 내렸다. 이번엔 업소 사장과 사전 예약을 하지 않았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5분쯤 걸어가니 주황색 가로등불 하나가 어둠을 밝히는 조그마한 언덕길이 나왔다. 단독주택들 사이에 노란색 벽돌로 지어진 가게가 나왔다.

“여긴 들어오실 수 없습니다”

방음설비가 된 문을 열자 초록색 페인트가 칠해진 복도가 나왔다. 복도 끝엔 앞의 문과 똑같은 방음문이 있었다. 그 문을 열자 내부가 드러났다. 파란색과 빨간색 네온사인이 어두운 실내를 은은하게 밝히고 있었다. 천장에는 미러볼이 천천히 돌며 초록색 불빛을 사방으로 내뿜었다. 바텐더가 칵테일을 만들고 있었고 여성 손님 4명은 소파에 앉아서, 다른 여성 손님 3명은 바에 앉아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 남녀가 들어서자 일제히 우리를 쳐다봤다. 점원이 다가와 “무슨 용무로 오셨나요?”라고 물었다. 남자의 등장에 경계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일부 손님들은 노골적으로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점원은 이어 “게이이신가요?”라고 물었다. “아닌데요”라고 하자 “남자 손님은 여기 들어오실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이때 마침 이 업소 여사장 D씨가 들어왔다. 취재 의도를 설명하고 D씨를 설득한 끝에 그와 인터뷰를 하게 됐다. 그러다 바에서 술을 마시던 여성 손님 E, F, G씨도 대화에 동참했다. 이들의 자기소개에 따르면 D씨는 30대 레즈비언, E씨는 30대 직장인 레즈비언, F씨는 28세 직장인 양성애자, G씨는 27세 레즈비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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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 고려대 미디어문예창작학과 4학년 권수현 | 고려대 영어영문학과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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