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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공무원으로 변신한 ‘대치동 학원가 전설’ 이범

“입학사정관은 개천서 용 나는 길 막는 제도”

교육공무원으로 변신한 ‘대치동 학원가 전설’ 이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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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공무원으로 변신한 ‘대치동 학원가 전설’ 이범

그는 2003년 은퇴한 후 무료 온라인 강의를 시작했다.

▼ 교육을 좌·우파 잣대로 들여다보는 건 옳지 않다고 본다.

“그렇지 않다. 좌파 우파가 분명히 나뉜다. 자유주의 문제의식은 다양한 교육이 공교육 내에서 기능을 해야 한다는 게 골자다. 교육의 다양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겉으로는 다양화를 표방하지만 실제론 일제고사 도입, 자율형사립고 확대, 수능 개편을 통해 교육을 거꾸로 획일화하고 있다. 수능 개편 구상에서도 국·영·수를 오히려 강화했다. 전공 적성에 상관없이 국·영·수에 몰빵하는 교육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렵다.”

▼ 사회주의자는 도대체 뭘 하겠다는 건가.

“상대평가나 일제고사처럼 경쟁을 격화하는 제도를 일신하자는 거다. 이명박 정부 교육정책이 자유주의적이지 않듯 노무현 정부 교육정책도 사회주의적이 아니었다. 특목고 급증을 방치했고 대학입시를 내신 상대평가 중심으로 개편하고자 했다. 내신 성적으로 신입생을 뽑으면 고등학교 교실이 전쟁터로 바뀐다. 대학입시 내신 비중을 높일 때마다 교실 분위기가 흉흉해졌다. 노무현 정부가 그랬듯 진보진영은 내신으로 대학을 가는 제도를 선호한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내신 비중을 강화한 입시 제도를 경험한 학생에게 학교 분위기가 어땠는지 물어보라. 이과가 1개 반뿐인 여고에서 2등을 하면 1등급을 받지 못한다. 서울대 의대는 못 가는 거다. 친구를 죽여야 내가 사는 투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캐나다 스웨덴은 대학입시 없이 내신으로만 학생을 선발하지만 그런 국가들은 대학이 한국처럼 서열화해 있지 않고, 내신이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다.”

▼ 그래서 어떻게 바꾸자는 건가.



“거칠게 말하면 유럽은 사회주의 요소가 강하고 미국은 자유주의 성향이 강하다. 영국 독일 프랑스 대학입시는 국가나 공인기관이 주관하는 서술형·논술형 시험이다. 지망하는 전공별로 시험과목이 나뉘어 있는데 고등학교에서 이 시험을 준비해준다. 공교육이 입시교육기관 기능을 하는 것이다. 미국은 정규수업 시간에 SAT(미국 대학수학능력시험) 문제집을 풀지 않는다. 학교는 체험 토론 실험으로 이뤄진 교육과정을 운영한다. 미국 대학은 학생을 선발할 때 SAT에 필적하는 비중으로 내신을 반영한다. 미국 학교 시험은 객관식이 아닌 서술형·논술형이다. 한국은 유럽식 미국식이 뒤섞였다. 한쪽으로 확실히 바꾸는 게 좋다.”

▼ 고등학교가 대학입시를 전문적으로 준비해줘야 하나, 아니면 미국처럼 정상적 교육을 해야 하나.

“수학능력시험을 논술형·서술형으로 바꾸고 국·영·수 같은 공통필수 과목을 극소화해 대학 전공별로 다양한 시험과목을 지정하면 학생들이 고등학교에서 대학입시에 필요한 과목을 선택해 공부하는 유럽식을 지지하는 쪽이다. 나라별로 제도는 조금씩 다르지만 유럽은 학교교육과 대학입시를 밀접하게 연계했다. 미국식으로 가더라도 지금보단 나을 거다. 미국 교육의 힘은 상당하다. 앞서 말했듯 미국은 학교 교육이 올바르다. 한국은 어떤가. 전교 석차를 매기는 상대평가다. 이 대목에서 딜레마에 갇힌다. 미국식 제도를 도입하려면 상대평가를 절대평가로 바꿔야 한다.”

미국 교육부는 3900억원을 들여 SAT를 비롯한 선다형 시험을 폐기하는 학력평가 개혁에 착수했다. 미국이 일제고사 형식의 선다형 시험(選多型試驗·multiple-choice test) 을 없애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선다형으로 대학입시를 치르는 나라는 한국 일본만 남는다.

▼ 수능을 논술형·서술형으로 치른다? 채점을 어떻게 하나.

“우리가 입시문제를 객관식으로 출제하는 데 익숙해서 그렇지 충분히 도입할 수 있는 제도다. 독일, 프랑스, 영국이 하는데 우리라고 왜 못하나. 객관식 시험은 사교육에 백전백패다. 대치동이 수능을 정복해버리지 않았는가.”

서울시교육청은 초·중·고 학교시험에서 서술형 문항 비중을 늘리기로 했다. 선다형 시험은 비판적 사고 능력을 키우고 창의성을 높이는 데 단점을 드러낸다. 장점도 적지 않다. 채점자 간 이견이 존재할 수 없어 공정하다. 미국에서 선다형시험이 발달한 데는 인종 계급이 아닌 학습 능력으로 우열을 평가하겠단 뜻도 영향을 끼쳤다. 종적·횡적으로 서로 다른 집단의 학력수준을 비교할 때도 선다형 시험이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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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홍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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