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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독립군’ 김준엽을 기리며

조국 광복 위해 싸우고 군사정권에 맞선 시대의 참스승

‘마지막 독립군’ 김준엽을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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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김구 주석 앞에

탈출 작전은 적중했다. 김준엽은 학병탈출 1호가 된 것이다. 이후 김준엽은 김구(金九) 주석을 비롯한 임시정부 요인과 독립운동가들이 있다는 충칭을 향해 6000리 대장정길에 들어선다. 도중에 중국유격대에 들어가 일군과 싸우기도 하고 다른 학병탈출 동지들과 감격의 해후도 하면서 중국대륙을 문자 그대로 풍찬노숙(風餐露宿)하면서 종단하게 된다. 당시의 탈출과정은 장준하의 ‘돌베개’와 김준엽의 ‘장정’에 자세히 나와 있다.

여기서는 평생의 동지가 된 학병탈출 동료 장준하와의 첫 만남 장면만 간단히 살펴본다.

“어느덧 해가 서쪽으로 빠져 들어가기 시작할 때이다. 갑자기 마을사람들이 왁자지껄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孫(손)참모가 하는 말이 ‘일본병사’들이 방금 도착하였다는 것이었다. 마당으로 뛰어나가 보니 일본군복 차림의 청년 셋이 서 있는데, 그 지성적인 얼굴과 느낌으로 대번 나는 나와 같은 한국의 학병일 것으로 단정했다. ‘한국분들이죠?’ 그렇다는 대답을 듣자마자 와락 달려들어 그들을 차례로 꽉 끌어안았다. 나는 이때처럼 감격에 차고 희열에 넘친 일은 없었다. 이제 한국인 동지가 생긴 것이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몸을 바치려는 씩씩한 동지들을 얻은 것이다. 나는 우리 몇몇이라도 백만의 독립군이 조직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 세 청년이 바로 장준하(張俊河), 윤경빈(尹慶彬), 홍석훈(洪錫勳)이었고 함께 탈출한 김영록(金永祿)은 중도에 흩어져서 그날 밤 자정께나 사령부에 도착하였다. 나와 장준하 형과의 만남은 이때가 처음인데 이로부터 그와 나는 친형제 이상으로 가깝게 지냈으며, 그가 1975년 8월에 별세할 때까지 연인처럼 일생 고락을 함께 하게 된다.”(‘장정1’)

김준엽이 연인으로까지 묘사한 장준하는 이후 광복군 시기는 물론, 전 생애에 걸쳐 둘도 없는 동지적 관계로 일관하게 된다. 두 사람은 일군을 탈출한 학병들 가운데서도 단연 뛰어난 인재로, 학병출신그룹의 리더 노릇을 하게 된다.



1945년 1월31일, 마침내 6000리 고난의 장정이 끝난다. 충칭의 임시정부 청사 앞에 도달한 것이다. 일본군을 탈출한 지 10개월 만이었다. 학병 출신 23명을 포함한 50명의 한국인 청년과 함께였다. 꿈에 그리던 임시정부 청사에 도착한 김준엽 일행은 누런 군복을 입은 57세의, 나이보다 훨씬 늙어 보이는 이청천(李靑天) 장군에게 감격스러운 경례를 붙이게 된다. 이 장군의 짧은 훈시가 끝나자 푸른 두루마기를 입은 노인 김구 주석을 비롯해 머리가 희끗희끗한 임정요인들과 역사적인 첫 대면을 했다. 김규식 이시영 조소앙 신익희 등 혁명원로들이었다. 김준엽은 당시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한 분도 빠짐없이 백발이 성성하였고 몹시 노쇠해 보였다. 얼굴은 핏기가 없이 부석부석하였으나 두 눈과 꽉 다문 입술에는 혁명가의 굳은 의지가 한눈에도 똑똑히 알아볼 수 있었다.”

한반도 진공작전

충칭의 임시정부에서 감격의 날들을 보내던 김준엽은 임정 내 각 정치세력의 분열상과 암투에 실망하던 중 광복군 제2지대장 이범석(李範奭) 장군을 만나게 된다. 이 장군은 미군과 한반도 상륙작전을 전개할 계획을 밝히면서 함께 시안(西安)으로 갈 것을 권유한다. 장준하와 함께 이 장군을 따라나섰을 때 동행한 동지는 19명으로 이 중 10명이 학병 출신이었다.

충칭 임시정부 도착 3개월 만에 시안의 광복군 제2지대에 들어간 김준엽 일행은 미군들과 함께 미국전략정보기관(OSS)의 한반도진공계획에 따른 게릴라 훈련을 받게 된다. OSS는 정보활동과 유격활동을 병행하면서 적의 후방지역 교란 공작을 수행하기 위한 조직으로, 당시 유럽전선을 비롯해 아프리카 태평양 중국 등을 활동무대로 삼고 있었다.

시안의 광복군 제2지대에서 김준엽은 두 가지 중요한 일을 겪는다. 먼저 이범석 장군의 부관이 된다. 투철한 애국심과 독립군으로서의 사명감 그리고 성실성을 갖춘 데다 실무능력도 뛰어난 김준엽을 이범석 장군이 발탁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인연이 돼 이범석 장군의 비서로 일하던 민영주(閔泳珠)와 결혼하게 된다. 이 장군의 부관과 비서로 일하면서 자주 대화를 나누고 친근감을 느끼던 사이였는데, 부대 내에서 염문설이 퍼진 게 발단이 됐다. “나와 미스 민에 대한 동지들의 오해 때문에 괴롭기가 한이 없다”며 의논하는 김준엽에게 장준하는 명쾌하게 결론을 내려준다. “서로 호감을 갖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오늘이라도 미스 민을 만나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라. 그리고 약혼을 선포하면 동지들의 낭설도 일소될 것이다.”

얼마 후 김준엽과 민영주는 장준하의 주례로 학병동지들만 모인 자리에서 약혼식을 하게 된다. 그리고 민영주의 부친인 임시정부 민필호(閔弼鎬) 판공실 주임(김구 주석의 비서실장 격)의 결혼 승인 소식이 전해지자 아침조회 때 이범석 장군이 전 대원 앞에서 “오늘부터 김준엽 동지와 민영주 동지는 부부가 된다”고 선포했으니 이것이 두 사람의 결혼식이었다. 동지이자 아내가 된 민영주 비서는 저명한 독립운동가 신규식(申圭植) 선생의 외손녀이기도 하다. 신규식 선생은 상하이임시정부 수립의 산파역을 했을 뿐 아니라 중국 정부로 하여금 임시정부를 승인케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OSS의 훈련은 3개월 만에 예정대로 마쳤다. 침투술 폭파술 사격술 등 각종 훈련을 이수하자 무기와 무전기, 조선은행권 지폐, 금괴, 각종 가짜 증명서, 국민복, 모자, 신발 등 국내 것과 똑같은 장비 일체가 지급되었다. 이제 출격명령만 내리면 고대하던 조국으로의 진공작전이 개시되는 것이다. 8월20일 안으로 50명이 함경도로부터 남해에 이르기까지 4, 5명씩 지구공작반을 편성해 잠입하게 되어 있었는데, 김준엽은 강원도반장을, 장준하는 경기도반장을 맡아 긴밀한 협동작전을 벌일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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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봉│세종대 초빙교수·전 동아일보 출판국장 hyp861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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