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 라이프를 위해서는 제대로 놀 줄 알아야 한다. 스트레스 강도가 높을수록 이를 풀려면 건전한 여가를 보내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 악기 연주, 스포츠, 자발적 학습, 종교 활동, 전문 봉사활동 같은 충전형 여가생활을 즐기려면 반드시 선행학습이 있어야 한다. 클라리넷을 사서 그냥 분다고 되는 게 아니라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이런 여가생활 훈련을 초등학교 때부터 교육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학습이 거의 없다. 경제적으로 넉넉해지고 여유시간도 생겼지만 여가기술이 없다보니 부정적인 여가활동에 빠지기 쉽다. 도박, 음주, 성문란 행위에는 따로 훈련이 필요 없다. 경제력은 있지만 건전한 여가기술이 없는 이들이 쉽게 퇴폐문화에 빠지는 이유다.
디지털 강국으로서 세계 최고의 빠른 사회(Fast Cycle Society)가 된 한국은 속도의 경제가 주는 이익을 누리는 한편 졸속관행과 스트레스, 한탕주의나 단기성과에 집착하는 편법 경영 등의 부작용을 함께 겪고 있다. 건강한 사회, 건전한 경쟁력, 무엇보다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한국인의 시간문화가 새롭게 혁신되어야 한다. 빠름의 시테크, 느림의 시테크를 통합적으로 그리고 상황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맹수가 머무는 까닭
다시 골프장으로 돌아와보자. 필드에서도 빠름과 느림을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의 마음가짐이다. 느려야 할 때 빠르고 빨라야 할 때 느리면 그날 골프는 망가지게 마련이다.
대부분의 아마추어 골퍼들은 공이 잘 맞지 않거나 트러블이 생기면 스윙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그러나 빨라질수록 더 안 맞고 안 맞을수록 더 빨라지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저속-고속-초고속 단계를 지나 빛 광(光)자 광속이 아니라 미칠 광(狂)자 광속으로 바뀌기 십상이다. 일단 이 단계에 돌입한 골퍼는 그날의 스코어 관리는 포기한 채 ‘미친 듯이’ 팔로 공을 때리고 다닌다. 그러면 공도 미친 듯이 이리 튀고 저리 튀다가 18홀이 끝난다.
거꾸로 해보자. 나는 골프를 하다가 뜻대로 되지 않으면 스윙속도부터 줄여본다. 거리가 조금 덜 나가더라도 속도를 줄이고 스윙템포를 부드럽게 유지해주면 다시 공이 잘 맞기 시작한다. 골프의 진정한 묘미가 망중한과 정중동에 있음을 상기하는 것이다.
망중한이란 바쁜 사람일수록 골프의 효과를 더 볼 수 있다는 의미다. 골프는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이 하는 운동이 아니다. 진짜 바쁜 사람이 대자연 속에서 다섯 시간 남짓의 여유를 즐기며 재충전하는 것이 진정한 골프의 매력이다. 시간이 너무 많아 매일 골프를 친다면 골프의 묘미는 이내 사라지고 말 것이다.
정중동이란 조용히 있는 것 같으면서도 내공을 활용하는 기술이다. 매는 사냥감을 향해 내달리기 전에 공중에서 거의 정지 상태로 머문다. 사자나 표범 같은 맹수도 공격 직전에는 정지 상태를 유지한다. 이때의 정지는 쉬고 있는 것이 아니다. 폭발력을 얻기 위한 내공 쌓기 시간이다.
프로골퍼들도 마찬가지다. 백스윙의 끝 동작에서 순간적으로 정지하는 것이다. 허겁지겁 골프장에 도착해 미친 듯이 휘두른 다음 오늘도 망했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은 망중한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이다. 빠름과 느림을 통합적으로 보는 눈을 골프에 적용해보자. ‘스윙은 느리게, 이동은 빠르게’라는 한마디로 요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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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골프장은 대부분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스피드의 압박감을 느끼게 한다. 무언가 늘 쫓기듯 골프를 하게 만든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이들이 가장 여유 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을 표방하는 골프장이 늘어난다면 어떨까. 바빠서 골프를 칠 수 없다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미국 대통령이 한가해서 라운드를 하는 게 아니다. ‘바쁠수록 골프를 하라’는 말은 결코 억지 주장이 아니다. 우리나라도 제일 바쁜 사람들이 필드에 나온다. 그 결과는 대체로 만족이다. 망중한과 정중동이 있기 때문이다.
2010년에는 골프장도 골퍼들도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를 생각했으면 한다. 이를 통해 우리의 골프 문화를 세계 최고수준으로 높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