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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군 名부대 탐방 ⑤ 육군 보병 제2사단 노도부대

9·28 서울 수복의 선봉 산악전의 명수

  • 최영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cyj@donga.com

9·28 서울 수복의 선봉 산악전의 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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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도부대는 이 마일즈시스템 전문 훈련부대도 갖추고 있다. 바로 32연대 3대대가 해당 부대다. 이 부대는 인근 중동부 전선의 보병부대들을 해발 640m에 펼쳐진 길이 16km, 폭 8km 정도의 개활지에 불러 전차까지 동원한 마일즈 훈련을 펼친다. 이때는 크레모아와 연막이 터지고, 전차가 굉음을 내며 전진하고 소총수들이 그 사이를 오가며 총질을 해댄다. 32연대 3대대가 대항군을 맡고, 소집된 부대가 이를 공격하는데, 열이면 열, 공격부대인 훈련부대가 수비부대인 대항군(32연대 3대대)을 이기지 못한다.

소집된 부대는 훈련 한번 치르고 나가는 부대지만, 항상 이곳을 수비하는 대항군은 그야말로 백전 노장들이기 때문이다. 32연대 3대대는 거의 매일 실전과 같은 마일즈 훈련을 하기 때문에 실제 전투가 벌어지더라도 다른 부대보다 훨씬 뛰어난 전과를 올릴 가능성이 많다.

노도부대는 일과만 끝나면 장병들의 자유시간을 최대한 보장하고 있다. 지난 1999년 10월에 결성된 17연대의 록밴드‘POPS’는 장병들이 저녁시간과 휴일을 즐기기 위해 만든 대표적인 동아리다. 이 동아리는 드럼, 리드기타, 베이스기타, 보컬로 구성되어 있는데, 힘들고 바쁜 훈련 일정 속에서도 매주 세 번 이상 연습하고 있다. 지금은 자작곡까지 만들어 부를 정도로 실력을 갖추었다. 동아리를 결성한 초기 멤버들은 모두 제대하고 이제는 후기 멤버들이 이끌고 있다.

육군 노도부대는 1947년 12월1일 대전에서 육군 두번째 부대인 조선국방경비대 제2여단으로 창설된 뒤 올해로 창설 55주년을 맞이했다. 이 부대는 창설 다음해인 1948년 10월 여수·순천 반란사건을 진압하기 위해 출동하여 21일간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이때 작전을 진압하는 모습이 ‘여름철 성난 파도와 같이 시원하다’고 하여 이승만 대통령이 ‘노도(怒濤)’라는 별칭을 붙여주었다.

현재는 강원도 양구지역에 주둔하고 있으며 춘천 동쪽에서 한계령까지 중동부 전선을 수비하고 있다. 이 부대가 올린 주요 전과는 한국전쟁이 일어나던 당일인 1950년 6월25∼27일, 사흘 동안 18포병대대가 동해안에서 거둔 승리다. 당시 18포병대대는 북한군 특수부대인 766부대, 549부대와 강원도 명주군 사천면에서 맞서 백병전까지 치르며 승리를 따냈다. 한국전쟁 개전 초 북한군의 압도적인 우세로 국군의 주저항선은 맥없이 무너졌다. 당시 국군 8사단 10연대는 다음 작전을 위해 대관령으로 철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당시 8사단 10연대를 지원하던 18포병대대도 사단으로부터 철수 명령을 받았지만, 고향을 북쪽에 둔 서북청년회 젊은이들로 구성된 대대 장병들은 이를 어기고 인식표를 땅에 묻고 저항을 각오했다. 당시 장병들은 “만약 내가 전사하고 네가 산다면 이것을 가족들에게 전해달라”는 유언과 함께 손톱과 머리카락을 잘라 종이에 곱게 싸서 서로 교환했다. 곧이어 포진지 앞까지 접근한 북한군과 18포병대대 장병 사이에 일대 격전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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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cy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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