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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과 포용의 새 성장체제 구축하라

내우외환의 한국 경제

  • 이필상|서울대 경제학부 초빙교수·전 고려대 총장 phillee@snu.ac.kr

혁신과 포용의 새 성장체제 구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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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뉴시스]

한국 경제가 절대위기(perfect storm)의 위험에 처했다. 지난 50년간 경제의 고속성장을 이끌던 주력산업이 수명을 다했다. 이미 해운산업은 빚더미에 눌려 파탄을 선언한 상태다. 조선산업도 위태롭다. 철강과 석유화학도 강력한 구조조정을 실시하지 않으면 부도 위험이 높다. 여기에 경제를 떠받쳐야 할 내수경기는 빈사 상태다. 기업생태계가 붕괴하면서 잠재 경제성장률이 2%대로 떨어졌다. 이에 따라 경제가 고용창출 능력을 잃어 근로자들을 실업의 사지로 내몰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가계부채가 1400조 원에 육박해 언제 연쇄부도의 뇌관이 터질지 모른다.

한국 경제는 이미 실업대란, 주거대란, 부채대란의 3중고를 겪고 있다. 청년들은 취업이 하늘의 별 따기다. 직장을 가진 근로자들도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불안에 떤다. 해고자나 퇴직자들은 단순 노동일도 찾기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집값은 물론 전세와 월세가 치솟아 저소득층이 살 곳을 잃고 있다. 더욱이 가계부채가 계속 쌓여 생계비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서민이 속출하고 있다. 북핵사태로 인해 전쟁 위험이 고조될 경우 경제가 정상적인 기능을 멈춰 가계와 기업이 동반 부도의 파국을 맞을 수도 있다.

무역전쟁의 포로

설상가상으로 한국 경제는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의 포로 상태다. 미국의 무역적자 7000억 달러 중 대중(對中)적자가 절반을 차지한다. 미국경제가 세계경제의 주도권을 잃은 주요 원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우선주의’를 선언하고 대중 무역전쟁을 공식화했다. 불공정 무역거래를 조사해 제재를 가하고 수출을 억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에 대한 중국의 대응은 임전불퇴다. 지난 25년간 고도성장을 이룩해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한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세계경제의 패권을 차지하는 것을 국가 목표로 삼고 있다. 미국이 중국을 겨냥해 무역보복을 시작하자 대미 투자억제, 미국상품 수입억제 등의 위협으로 맞서고 있다. 양국 수출의존도가 절대적인 한국 경제는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격’이다. 특히 문제는 북한의 핵 도발이 고조되자 이를 빌미로 미국과 중국이 한국 경제를 인질로 잡고 갖가지 압박을 가하는 것이다.

미국은 한국의 안보를 지키는 대가로 무역흑자의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자유무역협정(FTA)의 개정, 반덤핑 관세부과, 긴급수입제한(safe guard) 등 전방위적인 무역압박 조치를 취하고 있다. 자동차, 철강, 농업, 화학, 가전 등 주력 산업이 심각한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중국은 사드 배치에 대한 반발로 한국 경제에 대해 적극적인 공세를 펴고 있다. 중국 관광객 한국여행 제한, 주중 한국기업의 영업정지 등 무차별적인 보복을 가하고 있다. 여타 교역국가도 우호적이지 않다. 일본은 무역 대국의 부활을 위해 아베노믹스를 계속 펴고 있다. 수출시장이 겹치는 우리나라가 최대 피해국이다. 유럽 국가들은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을 계기로 자국 경제 보호를 우선으로 하고 있다. 신흥국들도 한국 경제를 맹추격 중이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가 사면초가다.

정경유착 비리

한국 경제는 내면적으로 정경유착의 덫에 걸렸다.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이 결탁해 경제를 지배하고 갖가지 비리를 저질러 경제가 방향감각을 잃었다. 정치권과 재벌기업의 부당한 유착은 특혜와 비자금을 주고받는 공생 체제를 형성해 지난 60년간 국민이 피와 땀으로 이룬 민주화와 산업화를 한꺼번에 부정하는 결과를 낳았다. 지난해 촛불혁명으로 박근혜 정권이 무너진 이유다.

재벌기업의 경제력 집중은 경제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재벌기업은 정치권력으로부터 사업의 인허가, 금융과 세제 지원 등 다양한 혜택을 받았다. 주요 산업을 독과점하고 중소기업을 하도급업체로 거느리며 부당이득을 취하는 먹이사슬 구조를 형성했다. 그리하여 경제를 양극화와 부실의 함정에 빠뜨렸다.

정부의 관료주의는 경제 위험을 재생산한다. 갖가지 규제로 경제를 통제하다 보니 기업의 자유로운 창업과 투자가 어렵다. 정부는 관치금융을 정경유착 비리의 수단으로 이용했다. 재벌기업의 경영이 부실하면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이 금융지원을 했다. 그 결과 재벌기업과 국책은행이 함께 부실화해 경제의 경쟁력을 떨어뜨렸다.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10조 원 이상의 천문학적인 지원이 대표적인 사례다.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경제가 지속적으로 발전하려면 끝없는 변화와 혁신을 해야 한다. 더구나 새로운 산업의 발굴과 기업의 창의적인 경영은 국제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필수조건이다. 정부가 경제의 발목을 잡아 위기를 재촉하는 퇴행적 결과를 낳고 있다.

‘한강의 기적’을 이룬 경제가 ‘한강의 눈물’을 낳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고속성장을 통해 1인당 국민소득 100달러에서 3만 달러 시대를 연 박정희 모델의 재현을 시도했다. 임기 내에 경제성장률 4%, 고용률 70%, 국민소득 4만 달러를 달성한다는 474비전을 제시했다. 주요 수단으로 규제 완화와 증세 반대 등 친기업 정책을 폈다. 성장동력 회복을 위해 창조경제를 주요 국정과제로 설정하고 전국에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설치해 운영했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였다. 부실 산업에 대한 근본적인 구조개혁과 신산업 발굴이 뒷받침되지 않아 모든 정책이 무위로 돌아갔다. 추후 경기부양을 위해 추진한 부동산 시장 활성화 정책은 가계부채를 사상 최대 규모로 늘리는 재앙을 초래했다.

불안한 경제실험

2014년 12월 서울 강남의 판자촌 구룡마을. 저 멀리 고층빌딩 숲이 한국 사회 빈부격차의 음울한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뉴스1]

2014년 12월 서울 강남의 판자촌 구룡마을. 저 멀리 고층빌딩 숲이 한국 사회 빈부격차의 음울한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뉴스1]

문재인 정부는 새로운 경제정책의 패러다임으로 소득주도성장을 내세웠다. 소득주도성장은 정부가 예산을 투입해 일자리를 만들고 국민소득을 늘려 소비와 투자를 활성화하는 정책이다. 그러나 이 정책이 5개월도 안 되어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정부가 재정지출을 확대하는 정책을 펴자 일자리 창출과 소득증가 효과는 미미하고 국가재정이 악화해 국민의 조세 부담만 커지고 있다. 최근 정부부채가 급격히 증가해 이미 700조 원에 육박한다. 더구나 정부가 취한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축소, 법인세 인상 등의 조치는 기업의 투자 의욕을 꺾어 성장동력을 더 떨어뜨리고 있다. 문제는 경제성장을 이끌던 주력 산업이 부실화해 성장동력이 꺼지고 기업들이 쓰러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밑 빠진 독이나 마찬가지다. 자칫 정부와 시장의 동시 실패를 가져올 수도 있다.

문 대통령은 소득주도성장의 한계를 인정하고 혁신성장을 소득주도성장과 함께 추진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정부가 혁신성장에 우선순위를 두고 과감한 개혁정책을 펴지 않는 한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놓칠 수 있다. 가장 큰 우려가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창조경제의 실패를 답습하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분배보다는 성장을 중시하는 보수 정권이었다. 그러나 창조경제의 개념조차 확립하지 못한 상태에서 구체적인 정책을 마련하지 못해 실패했다. 문 대통령이 제시한 혁신성장 역시 아직 개념조차 명확하지 않다. 더구나 친기업보다는 친노동 정책을 펴고 성장보다는 분배를 중시하는 진보정권이 혁신성장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추진할지 의문이다.

4차 산업혁명과 기업환경 개선

4차 산업혁명이 전 세계로 확산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은 기존 산업혁명과 차원이 다르다. 1차, 2차, 3차 산업혁명은 각각 증기기관 발명, 전기 발명, 정보통신 혁명으로 기계가 인간의 손을 대체하는 혁명이었다. 이에 반해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 발명으로 기계가 아예 인간 두뇌를 대체하는 혁명이다. 경제는 물론 사회 전반에 상상을 초월하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전 세계 일자리가 2025년까지 25%, 그리고 2030년까지 50%가 사라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경쟁 국가들이 인공지능기술을 먼저 개발해 미래 산업을 선점할 경우 우리 경제와 사회는 희망을 잃는다.

4차 산업혁명은 독립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기존의 산업과 융합해서 새로운 미래의 경제구조를 결정한다. 운전자 없이 목적지에 가는 자율주행차, 사람 대신 공장이나 사무실에서 일하는 로봇, 사람의 행동과 생각까지 분석하는 빅데이터, 사물과 사물이 서로 정보를 교환하는 사물인터넷(IoT), 3차원의 입체물품을 만드는 3D프린터 등이다. 실물산업과 정보통신, 인공지능이 함께 발전한 한국은 연구개발을 확대하고 융합의 경쟁력을 높일 경우 4차 산업혁명에 승산이 있다. 그러나 스위스 UBS은행의 평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4차 산업혁명 준비 수준이 세계 25위밖에 안 된다.

4차 산업혁명과 미래 경제 발전을 위해 기업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우리나라 규제제도는 허용하는 사항을 나열하고 나머지 사항을 모두 금지하는 포지티브 제도다. 기업의 창의적 활동과 산업혁명을 적극적으로 유도하려면 허용 불가한 사항만 나열하고 모든 것을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산업구조 개혁도 절실하다. 과거 고도성장을 이끌던 주력 산업이 국제경쟁력을 잃고 부실기업을 양산하고 있다. 부실기업에 대한 과감한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 한편 대기업 중심의 경제력 집중이 심하다. 시장의 독과점을 막아 벤처기업과 중소기업들이 자유롭게 일어나게 해야 한다. 더 나아가 노동시장의 개혁도 필수적이다. 양극화가 심하고 경직성이 높아 경제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거꾸로 고용을 악화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포용적 자본주의의 실현

우리나라는 경제양극화 문제가 어느 나라보다 심각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 노동자와 중소기업 노동자 사이에 신분상 차이가 현격하다.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계층격차는 주거지역과 생활문화가 다를 정도다. 교육도 자본의 오염이 심각하다. 돈이 있어야 사교육을 받고 원하는 대학을 간다.

실로 큰 문제는 경제난이 사회를 파괴하는 것이다. 청년들은 직업이 없어 결혼과 출산을 못 한다. 퇴직자들은 노후대책이 없어 거리를 헤맨다. 자신의 범행이 나라 탓이라고 항변하는 죄인이 늘고 있다. 희망이 없어 아예 생을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 이와 같은 자본주의 모순의 근본 원인은 약육강식 논리에 따라 승자독식을 허용하는 신자유주의다. 신자유주의의 지배를 받으면 경제는 양극화로 인해 스스로 무너지는 자기모순에 빠진다.

신자유주의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고용창출, 소득분배, 그리고 삶의 질을 중시하는 포용적 경제(Inclusive Capitalism)를 실현해야 한다. 경제의 미래를 결정하는 4차 산업혁명과 경제혁신이 단순하게 생산의 효율성만 높이는 데 그쳐선 안 된다. 새로운 사회가치를 창출하고 문화를 발전시켜 사람 중심의 미래경제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공정한 시장 질서를 확립해 경제주체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를 줘야 한다.

현재 우리 경제는 기계가 일을 하고 돈이 돈을 버는 구조다. 산업구조를 고용창출 능력이 높은 중소기업 중심으로 바꾸고 근로시간을 단축해 일자리를 나눠야 한다. 이를 위해 새로운 산업 수요에 맞는 교육훈련을 통해 인력의 전문성을 강화해야 함은 물론이다. 더 나아가 임금과 분배 구조를 개선해 소득과 부의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 또 일을 줄이고 여가를 늘려 생활구조를 행복추구형으로 바꾸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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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상|서울대 경제학부 초빙교수·전 고려대 총장 phillee@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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