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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도 죽음도 초탈한 깊은 울림 속 젖은 계곡
열여섯 살 겨울, 연탄을 때는 공부방은 냉기로 가득 찼다. 나일론 양말을 신었지만 발은 시렸고 창호 문풍지 틈으로 겨울바람이 매서웠다. 바늘구멍에 황소바람이란 말이 실감났다. 한겨울에도 더운 물이 콸콸 나오는 아파트에 사는 지금의 …
201501 2014년 12월 19일 -

사랑보다 슬픈 기억 눈물보다 진한 독백
“내가 갑자기 눈물이 나는 건, 그대 내 생각하고 계신 거죠. 함박눈 하얗게 온 세상 덮이는 날, 멀지 않은 곳이라면 차라리 오세요….사랑이란 맘이 이렇게 남는 건지, 기억이란 사랑보다 더 슬퍼.” 군산으로 향하는 길. 배경음악으로…
201501 2014년 12월 19일 -

누적된 시간 속에서 기억을 생산한다
영화를 보았다. 홍상수 감독의 ‘옥희의 영화’. 예전에는 극장에서 영화를 놓치면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빌려 보았을 텐데, 그 무렵이라 해도 홍상수 감독의 영화비디오테이프를 비치해놓은 가게는 드물었을 것이다. 인터넷 기반의 주문형 다…
201501 2014년 12월 19일 -

아리랑
익어가는 달빛이 아플까차마 못 밟아가던 길 멈춰 선한 그루 나무흐르는 달빛에 흐느적거려해묵은 심사를 파아랗게 젖힌한 포기 물초한 가닥 피리소리휘휘 저어서감아올린 옛 꿈은 언제면 저 달 속에하아얀 들국화로눈이 시게 피어볼까-시집 ‘달…
201501 2014년 12월 19일 -

김호득, ‘그냥, 문득’ 展
요즘 동양화는 미술대학에서 학과 존폐를 논할 정도로 인기가 없다. 젊은 동양화가들도 도시 풍경이나 ‘서양 출신’의 이미지를 그림으로써 탈출을 꿈꾼다. 옛 선비들이 즐긴 이 예술 장르와의 의도적인 단절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일제…
201412 2014년 11월 21일 -

세월, 희생, 죽음의 무게
작가 장숙은 한 할머니의 뒷모습을 5년 주기로 15년 동안 촬영했다. 그 뒷모습에서 삶과 죽음, 세월의 흔적, 시간의 무게가 느껴진다. 늙은 여인의 뒷모습은 아름답다. 그 여인의 희생은 인류를 지탱한 힘의 발원지다(11월 30일까지…
201412 2014년 11월 21일 -

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
1 1920년 숭실전문에 재학 중인 대구 계성학교 출신들, 앞줄 중앙이 박태준, 맨 왼쪽이 현제명이다.2 박태준이 다닌 대구 계성학교 본관, 1906년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 애덤스가 설립했다. 김동리, 박목월, 현제명 등도 이 학…
201412 2014년 11월 21일 -

서울 간 ‘오빠’가 감옥 갇힌 ‘임’으로
늦가을, 쓸쓸해진 사람들의 가슴을 사로잡는 노래가 있다. “가을에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로 시작하는 노래가 우선 떠오른다. 고은의 시에다 김민기가 멜로디를 붙인 ‘가을편지’다. ‘낙엽이 쌓이는 날에는 …
201412 2014년 11월 20일 -

‘내’가 찾은 ‘나’의 길…어찌 여유롭지 않으리
“그래서, 형이? 형이 가서 강의를 들었어?”“…응.”“번역하신 양반이 어려워했겠는데? 현직 교수인 경제학 박사가 와서 강의를 들으니.”“그렇다고, 궁금한 걸 어쩌겠어. 잘 모르면 가서 들어야지.”두 달 전쯤, 어느 상가(喪家)에서…
201412 2014년 11월 20일 -

우화는 사라지고 바람만 남았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4년 6개월 전, 그러니까 2000년 4월 17일 오후 5시쯤 충청남도 금강 하구 갈대밭에서 박찬욱(51) 감독을 만났다. 당시 37세이던 그는 세상에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1992년 가수 이승철과 배우…
201412 2014년 11월 20일 -

‘만화책’이 ‘웹툰’으로 진화하듯이
‘미생(未生)’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웹툰(웹 카툰의 준말·인터넷으로 보는 만화) 미생은 2012년 포털사이트에 연재된 작품이다. 당시 꼼꼼한 취재를 바탕으로 한 현실적 묘사가 큰 반향을 일으켰다. 현재까지 누적 조회 수가 10억…
201412 2014년 11월 20일 -

풍요의 시대 걷어찬 음악적 도발 선구자
싸이, 윤종신, 윤도현, 타블로, 이승철이 한자리에 섰다. 무대도 호텔 프레스룸도 아닌 서울 서초구 원지동 서울추모공원에서 굳은 표정으로 섰다. 신해철의 갑작스러운 죽음, 그 원인을 밝히기 위해 부검을 신청하고자 그들이 함께 섰다.…
201412 2014년 11월 20일 -

라이프 노 리미츠 外
저자가 말하는 “내 책은…”라이프 노 리미츠김명준 지음, 동아일보사, 288쪽, 1만4800원약속은 지켜야 했다. 2년 전 일이다. 내가 칠순이 되는 해였고 자식들이 책을 출판해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니까 칠순 잔치를 책 출판으로 …
201412 2014년 11월 19일 -

부자도 빈자도 가난한, ‘현대화한 빈곤’의 재앙
현대인은 어디서나 감옥에 갇힌 수인이다. 시간을 빼앗는 자동차에 갇히고, 학생을 바보로 만드는 학교에 잡혀 있고, 병을 만드는 병원에 수용되어 있다. 사람은 기업과 전문가가 만든 상품에 어느 정도를 넘어 지나치게 의존하다 보면 자기…
201412 2014년 11월 19일 -

르네상스의 새벽을 열다
‘방황하는 나그네여, 여기야말로 당신이 진정 거처할 좋은 곳이요. 여기에 우리가 추구해야 할 최고의 선(善), 즐거움이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 에피쿠로스학파의 정원으로 통하는 문에는 이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플라톤의 아카데…
201412 2014년 11월 19일 -

려명黎明
오전 9시 반, 상황실로 들어선 한정철의 기색이 흉흉했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한정철은 감정이 표정으로 드러나는 유형이다. 빈 상황실에 앉아 있던 박도영과 이인수는 한정철의 심기가 몹시 불편하다는 것을 대번에 알아차렸다. 항상 보디가…
201412 2014년 11월 19일 -

‘달걀=악당’은 오해 해독주스가 ‘害毒’ 될 수도
TV를 켜면 음식 이야기를 피해가기 어렵다. 전문가들의 설명을 듣자면, 때로 드라마를 보는 것과 같은 착각에 빠진다.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착한 음식’이 있는가 하면, 악역에 꼭 맞는 ‘해로운 음식’도 종종 등장한다. 흥미롭게도,…
201412 2014년 11월 19일 -

칸딘스키 천재성 알아본 아방가르드 후견자
뉴욕 맨해튼의 센트럴파크에는 세계 3대 미술관 중 하나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있다. 여기까지 와서 솔로몬 구겐하임 미술관(Solomon R. Guggenheim Museum)을 보지 않을 순 없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정문에서 북…
201412 2014년 11월 19일 -

그를 조금 더 닮을 수 있다면
나는 외과 전문의이지만 특이하게도 의학박사 학위를 의사학(醫史學, Medical History)으로 받았다. 원래 역사에 관심이 많기도 했지만 (내가 학위 과정에 들어가던 당시만 해도) 의과대학에서 유일하게 인문학과 맞닿은 것이 의…
201412 2014년 11월 19일 -

마흔다섯 살의 가출
네 가슴에서 별로 뜨지 못하는 내 말이어둠 속에서 우두커니 앉아 있다충혈된 눈으로 밤을 지키는 눈두레박을 내려 길어 올린 바람이죽은 이들의 뼈마디 속을 걸어간다수액을 짜면 그의 속살이 보이고전 우주를 움켜쥔 채풀섶에 매달려 있는 나…
201412 2014년 11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