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발포명령 진실 ‘병사 사망사건’ 증언이 열쇠
‘신동아’ 9월호에서 언급했지만,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 희생자 단체와 광주시민들은 5공 세력에 대해 발포명령자를 밝힐 것과 진정한 사과를 요구한다. 그들 대부분은 정호용 당시 특전사령관이 발포명령자요, 총 책임자는 전두환…
201611012016년 10월 24일‘노태우 의리 테스트’ 술상 뒤엎은 김복동
최규하 국무총리는 1979년 10·26사건 40일 후인 12월 6일 제10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임시정부 대통령’인 셈이었다. 이틀 뒤 긴급조치 위반자 68명에 대한 형 집행을 면제하고 긴급조치 9호를 해제했다. 그리고 1980년…
201609012016년 08월 23일“다들 내가 대통령 해야 한다는데…”(전두환)
부마항쟁과 10·26, 12·12사건이 수습되고 1980년 새해가 밝았다. 군부는 1월부터 최규하 대통령 이후의 정권 향방에 관심을 보였다. 긴급조치 9호 위반자와 시국사범에 대한 복권이 이뤄지자 재야 세력은 유신헌법 철폐를 주장하…
201608012016년 08월 04일전두환〈보안사령관〉, ‘보안사령관 교체’ 정보에 정승화〈계엄사령관〉 전격 체포
1979년 3월 제1사단장 전두환 소장이 보안사령관으로 전격 등용되자 군은 물론, 청와대와 정치권에도 충격적인 인사로 비쳤다. 박정희 대통령의 총애를 받는 정규 육사 출신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긴 하지만, 사단장 경력 1년 3개월 만…
201607012016년 07월 12일‘청와대 부통령님’께 받들어 총!
‘윤필용 장군 쿠데타 음모사건’ (1973년 3월)의 최대 수혜자는 전두환 장군이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그렇다는 얘기다. 윤필용 사건 이후 청와대 권력지형에 변화가 왔고, 그것이 전두환에게 이어졌다. 전두환은 1976년 3월 제1공…
201605012016년 05월 12일“전두환·노태우가 손영길 책임 물어야 한다길래…” (박종규 前 청와대 경호실장)
필자는 ‘신동아’ 3월호를 통해 ‘윤필용·손영길 장군 쿠데타 음모 사건’은 사실이 아니고, 이 사건 가해자는 박종규 당시 청와대 경호실장과 신범식 서울신문사 사장이라고 밝혔다. 또 사건을 조사한 강창성 보안사령관이 공명정대하게 임무…
201604012016년 04월 11일10월 유신 후폭풍 권력암투가 낳은 자해극
42년 세월이 지난 오늘 이른바 1973년 수도경비사령부 윤필용·손영길 장군 쿠데타 음모 사건을 자세히 기록하는 이유는 진실을 밝혀 역사를 바로잡기 위함이다. 그동안 전두환 장군 측근들이 집권 과정에서 자신들에게 불리한 이야기는 감…
201603012016년 03월 07일라이벌 제거 실패하자 8년 뒤 주군(主君) 시해
창군 이후 1960년대 초반까지 육군 내부에는 출신 지역에 따른 파벌이 있었다. 이북 출신이 다수를 점했다. 정일권 장군이 주도하는 함경도 출신과 장도영 장군을 중심으로 하는 평안도 출신이 군을 양분했고, 박정희 장군을 중심으로
201602012016년 02월 15일“내가 너희를 살렸는데 너희가 나를 배신해?”
6·25전쟁 중 부산에서 개교한 육군사관학교는 생도들에게 4년간 정규 대학과정 교육을 시킨 뒤 학사학위를 수여하고, 1955년 생도들을 육군 소위로 임관시켰다. 6개월간 단기 교육을 받고 임관한 육사 1~10기 출신과 구별하는 차원…
201601012016년 01월 0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