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 주류 욕망 내던진 사유, 창작의 변방
비가 내렸다. 주룩주룩, 내렸다. 창원에서 일을 보고, 통영으로 갈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일이 빨리 끝나 언제 또 내려오랴 싶어 급히 소형차를 빌려 진영을 향해 달리는데, 비가 내렸다. 많이 내렸다. 와이퍼의 왕복 속도를 최고치로…
2015062015년 05월 20일고작 사흘 쓰려고 자연을 베어내겠다니
3월 11일, 수요일, 흐리고 비 오래전부터, 순환하는 시간에 대하여, 계절에 대하여 진부한 수사는 피하기로 작정하고 살았다. 순환하는 시간도 답답한 터에 그에 더하여 닳고 닳은 언어를 뒤집어씌우는 것도 숨 막힐 듯 권태로운 짓이라…
2015052015년 04월 23일목포는 설움이다 이난영이다
KTX 호남고속철도가 개통된다. 거대한 역사(役事)를 마무리해 새로운 역사(歷史)를 썼다. 4월 1일 광주 송정역에서 개통식을 열고 5월 2일부터 정식으로 운행한다. 5년 4개월 남짓 걸렸다. 2009년 12월 4일 광주 송정역에서…
2015042015년 03월 19일개천에서 난 용들은 왜 불안하고 번민하나
여기, 작은 마을이 하나 있다. 마을 사람들은 ‘현대’를 살고자 했으나 오랜 습속과 관계에 의해 ‘근대’에 머물러 있다. 사람들은 근면하고 성실해 “지난 20여 년 동안에 수공업자에서 공장주로 탈바꿈한 사람이 더러 있”을 정도로 물…
2015032015년 02월 23일흰눈에 폭설에 대설에 한 줌 번뇌를 잊다
나는, 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소백산, 그 높은 산의 깊숙한 골짜기에서 태어났고 어릴 때 자주 놀러갔던 고모네 집도 함백산 아래의 탄광 사택이었고 서울로 올라와 북한산 아래에 살았고 한때는 정릉과 미아리 사이, 꽤나 높은 곳에…
2015022015년 01월 21일누적된 시간 속에서 기억을 생산한다
영화를 보았다. 홍상수 감독의 ‘옥희의 영화’. 예전에는 극장에서 영화를 놓치면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빌려 보았을 텐데, 그 무렵이라 해도 홍상수 감독의 영화비디오테이프를 비치해놓은 가게는 드물었을 것이다. 인터넷 기반의 주문형 다…
2015012014년 12월 19일‘내’가 찾은 ‘나’의 길…어찌 여유롭지 않으리
“그래서, 형이? 형이 가서 강의를 들었어?”“…응.”“번역하신 양반이 어려워했겠는데? 현직 교수인 경제학 박사가 와서 강의를 들으니.”“그렇다고, 궁금한 걸 어쩌겠어. 잘 모르면 가서 들어야지.”두 달 전쯤, 어느 상가(喪家)에서…
2014122014년 11월 20일황량한 들판에서 온전한 자유를 꿈꾸다
들판에 서서, 철 지난 신문을 훑어본다. ‘고양이가 늘고 있다’는 기사다. ‘아, 그래, 맞아, 온 동네가 고양이 천국이지’하며 담배를 피워 문다. 오랜 습관이다. 국도변을 달리다 낡고 오래된 휴게소가 있으면 차를 세운다. 안에 들…
2014112014년 10월 22일신흥종교 발원한 순례와 은신의 땅
교황이 다녀갔다. 신드롬이 일었다. 천주교 신자는 물론이려니와 많은 이가 교황의 거룩한 발걸음과 아름다운 말씀과 은혜로운 눈빛을 우러렀다. 교황이라는 자리, 그 역사, 그 권위에 더해 가난한 이탈리아계 이민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나 오…
2014102014년 09월 18일귀거래혜(歸去來兮) 자, 돌아가자
“도시는 젊어야 한다. 아니, 젊어져야 한다. 이것은 무슨 의미 같은 걸 얘기하는 게 아니다. 연령대가 젊어져야 한다. 젊은 사람이 많이 찾아와서 구경도 하고 밥도 먹고 데이트도 하고, 그래야 도시 문화가 창조된다. 우리같이 늙어가…
2014092014년 08월 21일익명의 공간 그러나 열려 있는 세계
“그러면…내기할까요?”“…?”“9시 20분 기차라, 내 딱 그 시간까지 용산역으로 달립니다. 타쇼.”“…가능할까요?”“제때 도착하면, 팁이나 주쇼.” “…그럽시다.”택시는 탄환처럼 튀어나갔다. 오전 8시 53분, 경기도 능곡역 앞에…
2014082014년 07월 23일삶이 교차하는 미로에서의 산책
선거가 끝난 후, 한숨 돌리기 위해, 서울의 북쪽으로 바람을 쐬러 갔다가 파주출판도시에 새로 장만된 ‘지혜의 숲’에 들러보았다. 선거 때, 어느 쪽에 가서 뭐라도 열심히 활동했느냐 하면 전혀 그것은 아니고, 그저 밤새 전국의 주요 …
2014072014년 06월 19일기억하라! 인간적 삶 위해 기울여온 노력을
이렇게 말해도 될까. 우리의 일상은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뉘고 말았다고. 슬프고 슬픈 일이 생중계의 화면 속에서 적나라하게 펼쳐졌다. 그날 이후,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시커먼 구멍 하나씩 생기고 말았다. 세월호 이전에 우리의 일상…
2014062014년 05월 21일번뇌 단박에 끊는 ‘참된 지혜’ 찾아
아내가 신발부터 신는다. 마음은 벌써 바깥에 나가버렸다. 아, 봄인데 뭐하지, 라고 말할 때부터 조짐이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1층 없는 아파트 2층에 있는 우리 집 베란다 앞으로 벌써부터 봄이 꽃으로 변신해 들이닥친 지 오래였다…
2014052014년 04월 23일신독(愼獨) 혼자서 견뎌내는 방법
오래전, 황지우 시인이 쓴 칼럼이 생각난다. 그는, 문구점에서 펜이라도 사게 되면 ‘잘 써지나?’하고 써본다고도 했다. 누구는 선을 그어보고 누구는 자기 이름을 써보고 또 누구는 근사하게 사인도 해본다지만 시인은 ‘잘 써지나?’라고…
2014042014년 03월 19일권태로운 나날을 짓눌러버리는 무거운 힘
철암에 가기로 했다. 철암이라, 오지다. 멀고도 깊고 아득해 자동차로 그곳에 가려면 몇 군데 중요한 거점을 거칠 수밖에 없다. 영월, 정선 다 지나서 철암인데 그 사이를 그냥 지나칠 만한 용기가 없다. 그래서 몇 군데를 들러보기로 …
2014032014년 02월 19일나는 결코 철도원처럼 살 수 없으리라
겨울 오후, 나는 지금 임피역에 앉아 있다. 사위는 점점 어두워지고 아주 한참을 기다려야 철로 위로 무심히 기차가 지나가는데, 인적 없는 역사에 앉은 나는…. 아! 이렇게 쓰고 나니 그럴듯해 보이는데, 실은 역사 바깥에 커다란 개 …
2014022014년 01월 23일好시절이 과연 있기나 했던가
바쁘게 돌아가는 도심의 일상이지만, 어쩌다가 갑자기 시간이 텅 비어버리는, 그런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잠시 당황하지만, 곧 수습하면서 아, 이건 시간의 신이 특별히 내려주신 선물이다, 그렇게 마음을 먹는다. 11월의 마지막 주 어…
2014012013년 12월 20일짙게 밴 향기 취해 서가에서 길을 잃다
어라, 이건? 완소 득템이다! 나는 재빨리 무릎을 꿇으며 서가의 맨 아래쪽에 꽂혀 있는 진홍색 책들을 꺼낸다. ‘니체 전집’! 총 21권이 출간됐는데, 물론 그중 비교적 중요하다고 평가됐거나 내 스스로 봐야 할 일이 있는 책 8권 …
2013122013년 11월 19일세상 모든 것 저마다 자리가 있다
다시, 제주도에 가기로 했다. 지난해 초겨울, 이 연재의 시작이 제주도의 오름이었다. 몇 개의 오름을 다녀와서 마치 제주도의 풍경에서 뭔가 ‘깨달은 듯’이 쓰긴 했는데, 내내 그게 마음에 걸렸다. 마침 1년 전에 그곳에 내려간 친구…
2013112013년 10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