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맹신
“어어, 누르지 마셔요.” 한 젊은 여성이 엘리베이터 안의 닫힘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하철 4호선 이수역에서 지상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였다. “닫힘 버튼을 누르면 또 3분을 기다려야하거든요.” …
2004052004년 05월 03일클래식 다방의 추억
대학에 다니던 1970년대 중반, 내가 다니는 학교 앞에는 클래식 다방이 네 곳 있었다. 나는 그중 ‘이삭’이라는 정겨운 이름의 다방에 자주 드나들었다. 클래식 다방이라고는 하지만 이삭의 실내 분위기는 그다지 ‘클래식’하지 않았다.…
2004042004년 03월 31일코린트의 콧대와 로마의 침략
얼마 전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열두 권을 다시 한번 찬찬히 읽어보았다. 로마인이 이룩한 방대한 역사를 흥미롭게 풀어놓은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 대목에서 수긍하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카이사르가 착수하고 아우구스…
2004032004년 03월 02일우리 문학을 위한 하소연
지난해 출판계의 키워드는 ‘불안’이었다. 북핵 문제에다 이라크전쟁, 불안한 정국, 심각한 불경기, 청년실업, 가정파탄으로 인한 자살 급증, 게다가 전국을 강타한 태풍 ‘매미’까지 우리 국민은 일년 내내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그 때문…
2004022004년 01월 30일우리 문인 아호 주변 - 어째서 可山일까
편석촌(片石村)이 누구인지 금방 아시겠지요? ‘기상도’(1936)를 자비 출판한 모더니스트 김기림의 아호이지요. 기림(起林)이 본명이겠는데, 그것만 해도 썩 본명스럽지 않음. 곧 필명이거나 아호급의 모양새와 울림을 갖고 있지만 씨는…
2004012003년 12월 30일독거노인 D씨와 이라크 파병
바빌로니아의 디오게네스는 거리에 굴러다니는 맥주통을 거처로 삼아 노숙생활을 했다. 어느 날 왕이 그를 방문하여 소원을 물었다. 디오게네스는 “따뜻한 햇볕을 즐기는 것 이외에는 다른 소원이 없다”며 왕에게 “햇볕을 가리지 말고 좀 비…
2003122003년 11월 28일매미의 추억
올해도 비 풍년이었다. 봄부터 하루 걸러 추적추적 비가 내리더니 여름은 빗속에서 훌쩍 지났다. 철 이른 가을에다 올 겨울은 또 유난히 추울 것이라고 한다. 그런 와중에 태풍 매미가 쓸고 간 상처는 너무도 깊고 처참하다. 복구는 지지…
2003112003년 10월 29일그들을 위한 새로운 당신
날마다 비가 내린 것 같은 8월이 지나 9월이 왔는데도 여전히 비가 오고 있다.창 밖으로 내다보이는 비 오는 광화문. 밤에 더 아름답다고 생각했는데, 비에 젖은 한낮의 광화문도 고색창연(古色蒼然)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광화문 거…
2003102003년 09월 29일정보의 노예시대
지난 밤 잠들기 전 알아본 오늘의 날씨를 아침에 다시 확인한다. 오늘 가야 할 곳의 교통 사정이나 만날 사람들을 하나하나 머리에 떠올려보는 일도 잊지 않는다. 식탁에 앉으면서 신문의 주식 정보부터 훑는다. 아내가 밥상을 보면서 내놓…
2003092003년 08월 26일인내의 전략
영문과를 나온 사람들이 제일 고역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그럼, 영어는 잘하시겠네요?”라는 기대 섞인 질문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교육을 전공했다고 다들 자기애들에 대한 진지한 교육상담을 하려고 할 때마다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교육 …
2003082003년 07월 30일꿈은 이루어져야 한다
IMF 체제에서 아내가 처음 한 말은 ‘생활비를 줄이자’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우리 집에서 제일 먼저 잘려나간 비용이 외식비와 음식물비였다. 먹고 마시는 비용의 최소화가 당시 아내가 설정한 절약 목표다. 다음으로 아내가 선언한 것은…
2003072003년 06월 26일집에 가서 편히 쉬라고?
인간은 참으로 별난 동물이다. 생물이라면 모름지기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자식을 낳을 수 있을까,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이 자연의 섭리건만 우리 인간은 언제부터인가 필요 이상으로 자식을 낳지 않으려고 산아제한을 하고 있다. 현대생물학…
2003062003년 05월 27일나는 날마다 로또복권에 당첨된다
지금은 약간 조용해졌지만 바로 얼마 전만 해도 우리나라를 ‘로또 공화국’이라고 부를 만큼 복권열풍이 대단했다. 토요일이면 로또복권 당첨소식에 사람들의 눈과 귀가 한곳으로 쏠린다. 어떤 이는 은행대출에 사채까지 얻어 복권을 구입한다고…
2003052003년 04월 29일봄날의 화려한 외출?
파릇한 기운이 비온 뒤에 더욱 완연하다. 봄을 시샘하는 추위 속에서도 도도한 봄기운은 어김없이 두꺼운 장막을 걷어내고 있다. 봄기운을 이렇게 느껴본 것도 정말 얼마 만인지.안식휴가를 얻어 모처럼 주변의 사물을 구체적으로 느끼고 있다…
2003042003년 03월 26일당연히 잊혀졌어야 하는 사람인데…
에세이와 미셀러니의 개념 구분은 라틴어 문자 사용 문화권에서도 명쾌하지 못한 듯하다. 얼마나 논리적이냐는 것이 기준인 듯할 뿐이어서, 우리 안목으로 보는 수필과 논설, 독후감까지를 두루 포함하여 에세이라 하는 경향이 있다.조선시대 …
2003032003년 02월 26일동네축구 이야기
내 고향마을인 제주도 북제주군 애월읍 하귀리는 축구 열기가 높기로 소문난 곳이다. 아래로는 초등학교에 들어가지도 않은 코흘리개에서 위로는 머리가 히끗히끗한 중장년층 아저씨에 이르기까지 축구라고 하면 자다가도 깨어날 정도다.아침이면 …
2003022003년 02월 04일눈이 올 듯한 날, 그가 전화를 건 이유는?
저번 날, 눈이 올 듯한 날이었다. 이미 산간지방에 눈이 너무 내려서 수해 때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임시로 지은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턴테일러 집에서 공포에 가까운 근심 속에 살고 있는 모습을 본 터라 눈이 내릴 것 같은 날씨가 심…
2003012003년 01월 06일부모 노릇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저녁을 준비하느라 바쁜 제 엄마에게 종이 한 장을 불쑥 내밀었다. “이번 주에 내방 청소한 값-2000원, 가게에 심부름 다녀온 값-1000원, 엄마가 시장 간 사이에 동생 봐준 값-3000원, 쓰레기 내다…
2002122002년 12월 03일죽지 않는 인간?
얼마 전 무심코 TV채널 서핑을 하다가 한 다큐 프로그램에서 멈추게 됐다. 인간이 죽음을 극복하고 영생을 누릴 수도 있다는 말이 대추나무에 연 걸리듯 귀에 탁 걸려들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거의 끝나갈 무렵이어서 불과 몇 분밖에 보…
2002112002년 11월 0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