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담기담] 어느 노비의 파란만장 출세기
인생이란 언뜻 평범해 보이지만 때론 얼마나 놀라운가. 나는 성도 없이 태어난 어느 비천한 노비가 모진 세파를 뚫고 이뤄낸 믿을 수 없는 성공에 대해 말해 볼 참이다. 노비의 이름은 막둥, 충청도 후미진 고을 찢어지게 가난한 송씨 양…
윤채근 단국대 한문학과 교수2024년 10월 12일[고담기담] 그날 그 호랑이는 누구였을까
어려서부터 호랑이 꿈을 자주 꿨다. 내 성명은 김소란. 경상북도 달성군 서쪽 낙동강변에서 태어나 비슬산 아래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비록 몰락 양반 출신이었지만, 생활력 강한 어머니를 만나 억척스레 재물을 모은 덕에 자녀들은 하나같이…
윤채근 단국대 한문학과 교수2024년 09월 14일[고담기담] 어느 씨름 남매의 완벽한 복수
내 이름은 곽운이다. 부유한 양반가에서 태어났지만 공부엔 뜻이 없어 팔도유람에 청춘을 탕진했고, 세상 모든 잡기를 다 좋아했지만 유독 투기를 즐겨 싸움꾼으로 통한 자가 바로 나 곽운이다. 유명한 도박 싸움판엔 내가 빠지지 않았고, …
윤채근 단국대 한문학과 교수2024년 08월 17일[고담기담] 다모 고혜란, 조선 최초 女性 수사관
한성부 종사관 이풍교는 자신의 부하 고혜란이 갇혀 있는 우포청 감옥에 들어서며 혀를 끌끌 찼다. 혜란은 머리가 깨져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풍교를 올려다봤다. 그녀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포교 녀석들 육모 방망이 맛이 조금 맵더이다.…
윤채근 단국대 한문학과 교수2024년 07월 19일[고담기담] 조선의 허풍선이 세상을 훔치다
허풍선이 이홍은 한양 남촌의 몰락 양반이었다. 열여덟 살에 부모를 여의고 그가 손에 쥔 건 달랑 남산 밑 묵적골의 초가집 한 채였다. 형제자매는 고사하고 도와줄 먼 일가친척조차 없는 그로선 그나마 풍찬노숙을 모면한 것만으로도 다행스…
윤채근 단국대 한문학과 교수2024년 05월 11일세 얼굴을 가진 사나이
피투성이가 된 채 예조판서 댁 안채 뜰로 들어선 여종 홍련은 자신을 부축해 데려와 준 청지기 할아범을 돌아보며 물었다.“예조판서 대감께선 정말 방 안에 계신가요?”안쓰러운 표정을 지은 할아범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자네가 아까…
윤채근 단국대 교수2024년 02월 18일女검객 탄월의 마지막 칼춤
떠날 채비를 마치고 막 작별을 고한 탄월이 다소곳이 앉아 소응천의 대답을 기다렸다. 지리산 산음 고을을 밤새 적신 가을비는 어느새 그쳐 있었다. 나른한 새벽 햇살이 문지방을 타고 넘을 무렵 응천이 힘겹게 입을 뗐다.“네가 이 외진 …
윤채근 단국대 교수2023년 12월 19일우정 없는 비정한 도시와 그 적들
시신에서 흐른 피가 도랑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가 가뜩이나 을씨년스러운 한양의 새벽 풍경을 더욱 무채색으로 만들었다. 포교 이춘동은 상반신이 도랑에 처박힌 채 발견된 피살자를 우두커니 내려다봤다. 포졸 하나가…
윤채근 단국대 교수2023년 11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