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방랑 끝에 돌아온 빛과 냄새의 항구
주문진은 강릉 가는 김에 들르는 곳이며, 또 설악산 가는 길에 혹은 다녀오는 길에 잠시 거치는 선창 마을일 수 있지만, 막상 주문진에 발을 디디고 나면 ‘아, 어쩌면 애당초 내가 가고자 한 곳이 이곳인지도 모르겠다’는 묘한 느낌을 …
2013122013년 11월 20일뼛속 스며드는 맑은 기운 혼을 깨우는 대쪽 선비 정신
경상북도의 최북단 봉화군은 북쪽으로 소백산을 사이에 두고 단양군과 마주하며 서쪽으로는 영주시, 남쪽으로 안동시와 이웃한다. 동쪽의 울진 땅을 건너면 동해 바다다. 봉화를 찾는 이들은 대개 단양과 영주를 거치지만, 내가 디디는 행로는…
2013112013년 10월 18일벼랑에 서서 깨닫다 아, 너도 나도 섬이었구나!
수 년 전, 경남 사천과 남해 본섬 사이의 창선도를 디딤돌로 해서 뭍과 섬, 섬과 섬을 잇는 두 개의 교량, 즉 삼천포대교와 창선대교가 개통되면서부터 삼천포에서 남해로 건너가는 일이 이웃집 나들이처럼 쉬워졌다. 이들 교량은 건설 단…
2013102013년 09월 23일단절의 땅에 귀 대면 들린다, 외로운 발소리가
충북 보은 땅에 들어가려면 예전에는 청주를 지나 피반령 높은 고개를 타넘어야 했지만, 이제는 청원상주고속도로가 시원스럽게 뚫려 그런 수고로움을 겪지 않아도 된다. 회인(懷仁) 고을에 갓 부임하는 사또마다 피반령 고갯마루에서 첩첩산중…
2013092013년 08월 20일감잎처럼 은행잎처럼 느리게 떠나고 싶더라
문상할 일이 있어 밀양 가는 길 기차가 마악 청도를 지나면서 창밖으로 펼쳐지는 감나무 숲 잘 익은 감들이 노을 젖어 한결 곱고 감나무 숲 속에는 몇 채의 집 집안에는 사람이 있는지 불빛이 흐릿한데, 스쳐 지나는 아아, 저 따뜻한 불…
2013082013년 07월 19일은소금 하얀 햇살 속 그리운 아버지여
간혹, 번화한 도심에서보다 한적한 면소재지 또는 읍 거리에서 문득 방향 감각을 잃고 멍하니 서성이는 때가 있다. 타지의 풍경 때문만은 아니다. 아무리 초행의 타지라 해도 이 땅의 자연과 사람살이 풍경은 다 눈에 익은 것이요, 자못 …
2013072013년 06월 19일수려한 물길, 정갈한 山間 적벽강의 신록
꽃이 아름다고 단풍이 곱다 하지만 봄날 아침의 햇살을 머금은 채 가늘게 떠는 새순만큼 어여쁠 수 있을까. 이제 갓 세상에 나온 연둣빛 혹은 살색을 두른 그 여린 이파리들이 함박웃음처럼 떼를 지어 햇살과 어우러지는 그 봄날의 장관이야…
2013062013년 05월 22일그물코에 꿰인 삶 그 희망의 노래
내가 일하는 학과의 학생들은 베트남에서 온 두세 명을 제외하곤 전원이 중국인 유학생이다. 한국어를 배우겠다고 굳이 바다 건너온 이들을 위해 학기마다 한 번씩 우리네 문화유적지를 답사하는 과목을 개설해놓았다. 나는 경주, 안동을 가더…
2013052013년 04월 18일무창포 바닷가 늙은 어부의 꿈이여
추운 얼굴들 모여 모여서 젖은 이야기로 잠이 드는 밤 가라앉으며 떠오르며 끝없이 서성이는 세상은 눈 굵은 그물로 다 가릴 수 없는 슬픔인데 출렁일수록 깊어가는 상처 따라서 안 보이는 섬 찾아 조금씩 작아지는 푸른 물방울 소금처럼 빛…
2013042013년 03월 20일시인이 꽃을 불렀다 바람이 바다의 시간을 채웠다
선운사 골짜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갔더니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 막걸리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습니다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습니다- 서정주 시 ‘선운사 동구’ 전문고창 선운사에 가면 동백꽃이 생각나고 저절…
2013032013년 02월 21일옛 시간이 줄지어 선 땅끝 세상
망망대해가 앞을 가로막고 있어서 더 나아갈 데 없는 곳이 ‘땅끝’이다. 벽에 걸린 지도를 쳐다보며 지리 감각을 익혔던 이들에게 전라남도 해남의 땅끝마을은 그 느낌만으로도 아득하고 가파르다. 금세 모든 것이 와르르 쏟아질 것 같은, …
2013022013년 01월 21일갇힌 땅에서 울리는 노랫소리
훗날의 권력을 도모하기 위한 지금의 계책은 모두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어느 시대나 힘은 현재에만 유효하며 사람의 욕심은 그 현재의 힘에 쏠리는 이치 때문에 그렇다.중국인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친다고 1년 가까이 중국 난징(南京)…
2013012012년 12월 27일숨어 살던 이들의 행복 만나는 곳
담양의 원림(園林)과 정자를 이야기하면서 소쇄원, 식영정 등 소문난 몇 군데만 언급할 수는 없다. 담양 땅에는 가사문학관 근처뿐만 아니라 곳곳에 유서 깊고 아름다운 정자들이 흩어져 있다. 배롱나무 꽃 대궐로 이름난 명옥헌은 호남고속…
2012122012년 11월 20일옛사람의 樓閣과 園林 찾는 고상한 여로
말하건대, 유홍준이 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우리나라 여행 문화의 패턴을 바꾸는 데 크게 기여한 책이다. 물론 살림살이가 나아지고 여유가 많아지다보면 막무가내로 구경거리를 찾아가는 데서 벗어나 특정 관심사와 관련된 여행을 즐기…
2012112012년 10월 19일사라진 문명을 만나러 가는 길
부여에 오면 저절로 부소산부터 오르게 된다. 풍경이 먼저고 역사가 뒷전이라서가 아니다. 부소산은 역사가 아닌가. ‘따로 국밥’처럼 풍경을 따로 두는 역사는 없다. 아무튼 산을 오른다. 해발 106m. 큰 언덕에 지나지 않은 높이지만…
2012102012년 09월 19일소쩍새 소리 그늘에서 유유자적 쉬어가는 나그네
사람의 인상이라고 하는 것도 결국 그를 접하는 이의 주정(主情)에 좌우되듯 산의 인상 또한 그 품을 찾아들고 마루턱에 올라서는 사람의 정서에 달렸다. 골짝을 거쳐 산꼭대기에 올랐는지 아니면 능선 길을 걸었는지, 봄날에 찾았는지, 비…
2012092012년 08월 21일사람 사는 이야기 품은 청정한 풍경들
속리산은 잘생긴 바위와 소나무가 많은 산이다. 송석(松石)이 빼어난 것은 산 자체의 지기(地氣)가 탁월함을 뜻한다. 속리산의 수많은 계곡 또한 모두 수려한데 괴산군 청천면의 화양동계곡도 그중 하나다. 훤칠한 바위들을 감싸고 어루만지…
2012082012년 07월 19일쪽빛 바닷가에서 가지는 애모의 감상
신시가지를 지나와 성처럼 도시를 둘러싼 고지대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면, 작은 만(灣)을 끼고 앉은 통영 원도심은 장난감 도시처럼 올망졸망해 보인다. 저렇게 작고 예쁜 곳에 정말 배들은 닻을 내리고 자동차들은 소리를 내며 다니는 것…
2012072012년 06월 19일이효석의 길과 향기로운 땅 기운
1990년대 초, 처음으로 나는 이효석의 생가터를 찾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문학 현장 보고서라고 할 수 있는 김용성의 ‘한국현대문학사 탐방’에 몇 장의 사진과 함께 현지의 분위기가 잘 그려져 있어서 찾아가는 길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2012062012년 05월 22일고가(古家) 기왓장에 쌓인 세월
하회마을에서는 어느 쪽으로 들든 결국 풍산 류씨 종택인 양진당에 이르게 마련이다. 이 고가를 중심으로 하여 골목들이 방사선 꼴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을 이끌고 가는 때면, 이 종택에 이르러 나는 어김없이 그들에게 한 명 한…
2012052012년 04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