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으로 간 언론인들의 비참한 말로
6·25전쟁 후에 납북된 언론인에 관해서는 ‘6·25전쟁 납북’(기파랑, 2006)이라는 책을 통해 당시의 상황과 납북된 언론인에 관해 상세히 적은 바 있다. 당시 연구는 자진 월북을 제외하고 강제 납북된 언론인에 관한 연구였다. …
2010022010년 02월 03일좌우 가리지 말고 똑같은 잣대 들이대야
경성일보사가 1944년 2월에 발행한 ‘반도학도 출진보(半島學徒出陣譜)’에는 ‘반도 2500만 동포에 호소함’이라는 여운형(呂運亨)의 글이 실려 있다. ‘반도’는 조선을 의미한다. 글의 머리는 “소화 11년(1936년) 10월 조선…
2010012010년 01월 11일경성제대 졸업한 엘리트, 왜 북한은 이름을 지웠을까?
왕조시대의 전근대 신문 ‘조보’ 조보는 왕조시대에 조정의 소식을 손으로 써서 전달했던 필사신문(筆寫新聞)이었다. 중앙집권적인 왕권정치체제에서 왕과 정부의 정책과 인사이동 등을 포함하여 다양한 소식을 손으로 써서 정부의…
2009122009년 12월 09일6·25전쟁 시기 남북한의 신문(하)
해방일보-조선인민보 발행 전후의 사정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은 신문 방송 통신사를 접수하여 언론인에 대한 세뇌사업과 ‘미제구축 총궐기대회’를 열었다. 전평(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1945년 11월5일 결성한 조선공산당 산하의 노동운동단체…
2009112009년 11월 03일일제 고등경찰 피살 사건 미스터리
사이가 시치로(齋賀七郞)는 일제강점기 경기도 경찰부 고등경찰과 경부(警部)였다. 그는 20년에 걸쳐 수많은 우국 독립운동가와 사상범들을 야만적으로 고문해 악명을 떨쳤던 인물이다. 행정구역상 서울이 경기도에 속했던 시절이므로 서울을 …
2009082009년 07월 29일시인 한하운과 서울신문 기자 오소백의 필화
문둥이 시인’ 한하운(韓何雲·1920 ~1975)이 ‘문화계의 간첩’ 논란에 휘말린 사건이 있었다. 1953년 7월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되었으나 전쟁의 상흔이 채 아물지 않아 사회적으로 불안하고 긴장된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았던 때다…
2009072009년 07월 0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