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남성 사이의 섬 딸들에게 새 길 열어줘야죠”
그녀의 입술이 달싹이더니, 새하얀 치아 사이로 누에가 실을 토하듯 시가 기어 나왔다. 나는 구석이 좋다햇살이 때때로 들지 않아자주 그늘지는 곳그래서 겨울에 내린 눈이쉽게 녹지 않는 곳가을에는 떨어진 나뭇잎들이구르다가 찾아드는 곳구겨…
2014042014년 03월 20일“아, 내가 시집도 못 갔는데 바다에서 죽을 수도 있겠구나”
불법 조업을 하는 중국 어선을 179척이나 나포한 여경(女警)이라기에 선입관을 가졌던 게 사실이다. 아마도 드세 보이고 덩치도 클 거라고. 아무런 과학적 근거가 없는 선입관은 여지없이 깨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2014032014년 02월 20일생명운동 기수 도법 스님의 쾌도난담
농삿일하다 막 돌아온 것 같은 차림이다. 밀짚모자를 벗자 싱그러운 중머리가 나타난다. 환갑이 지났는데, 동안(童顔)이다. 눈이 크고 귀가 야무지게 생겼다. 눈동자가 또랑또랑하다. 입이 아니라 눈이 말하는 것처럼. 단단한 구릿빛 얼굴…
2011122011년 11월 22일‘박정희 마니아’ 김종신 전 청와대 비서관
차가 한강을 건널 무렵 도심은 어둠에 점령당한 상태였다. 50년 전 한강다리를 건너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 사진을 안방에 걸어놓고 산다는 그의 집은 서울 송파구의 한 아파트였다. 부인이 저녁상을 차려놓았다. 명함 건네는 의례적인 인…
2011112011년 10월 18일‘부드러운 투사’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을 좋아한다기에 한번 읊어달라고 부탁했다. 떠듬떠듬 시를 읊는 그녀의 얼굴이 약간 상기됐다. 비록 다 외우진 못했지만 즐겨 읽은 흔적이 드러난다. 목소리가 깔끔하고 그윽하다. 시 전문은 이렇다. 흔…
2011102011년 09월 20일노무현의 후계자 문재인
서울-부산 무정차 KTX는 바람처럼 빨랐다. 2시간10분 만에 닿는 가까운 거리건만 그와의 심리적 거리는 멀게 느껴졌다. 달리는 기차 안에서 질문지를 펴놓고 끼적거린다. 전직 대통령의 자살, 국가지도자의 품격, 진보의 역량과 한계,…
2011092011년 08월 18일“햇볕정책도 강경정책도 문제, 인도적 지원은 계속돼야”
단호하게 밀어올린 옆머리가 인상적이다. 말투에 아직 이북사투리가 배어 있다. 탈북자 출신인 조명철(52) 통일교육원장은 당당했다. 남북한의 문제점을 거리낌 없이 비판했다. 질문에 머뭇거리는 법이 없고 답변에 막힘이 없었다. 북한식 …
2011082011년 07월 22일‘승부사’ 최문순 강원지사
빗방울이 오락가락하는 스산한 날씨였다. 강원도청 앞 사거리에 플래카드 두 개가 내걸려 있었다. 하나는 4월27일 치러진 도지사 선거 때 한나라당 후보로 나섰던 엄기영씨의 낙선인사였고, 다른 하나는 최문순 지사의 당선사례였다. 낙선인…
2011062011년 05월 20일‘거짓말쟁이’ 신정아의 진실
신정아(39)씨의 얼굴은 작고 야위어 보였다. 눈 위쪽엔 연한 쌍꺼풀이, 아래쪽엔 엷은 다크서클이 자리 잡고 있다. 이목구비는 오밀조밀하고 손가락은 가늘고 긴 편이다. 옷차림은 수수하면서도 세련돼 보인다. 검은색과 회색, 남색, 붉…
2011052011년 04월 19일‘창조경영’ 문국현의 정치실험
문국현(62) 전 창조한국당 대표의 이미지는 정물화와 같다. 표정과 목소리가 일정한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이건 대체로 그의 장점이겠지만 때로 단점도 될 듯싶다. 적어도 대중적인 정치인을 꿈꾼다면. 그를 가까이에서 처음 본 것은 아…
2011042011년 03월 22일신(神)에게 무릎 꿇은 ‘한국 대표 지성’ 이어령
신(神)은 죽음과 더불어 인간의 영원한 숙제다. 2000년 전 하나님의 독생자라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후 서양의 지성은 유신론에 지배돼왔다. 기독교 사상은 정치 사회 문학 철학 음악 미술 등 인간사의 모든 분야에 깊숙이 …
2011022011년 01월 20일“교전규칙 얽매인 건 형식주의와 기회주의에 빠진 탓”
인간이 만든 게임 중 가장 잔인한 것이 전쟁이다. 국가 간 폭력의 충돌인 전쟁은 반(反)지성의 극치다. 하지만 인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 할 만큼 크고 작은 전쟁이 문명의 물줄기를 바꿔왔다. 지금도 세계 곳곳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
2011012010년 12월 21일“실세들로부터 간접적으로 사퇴 압력 받았다”
정운찬(63) 전 총리의 이미지는 정치인이라기보다는 학자다. 우리는 공부 많이 한 사람들, 이를테면 학자나 교수에 대해 몇 가지 고정관념 또는 선입관을 갖고 있다. 고지식하고 고집 세고, 언변과 사고력은 뛰어난 반면 소심하고 우유부…
2010122010년 11월 18일KTX 해고 여승무원 대표 오미선
작은 가슴 속으로 네가열차 되어 지나간다덜컹덜컹 쿵쿵내 가슴이 떨린다흔들린다네가 지나가면 빈 고요내 마음엔 두 줄금만 남는다-배준석, ‘열차같이’그녀의 해맑은 웃음자락엔 슬픔이 묻어 있었다, 라는 표현은 상투적이다. 그런데 세상사의…
2010102010년 09월 17일강력수사의 귀재 장영권 경감
서울 금천경찰서 강력계장 장영권(45) 경감. 그는 형사다. 그에게는 퇴근이라는 개념이 없다. 강력계 사무실 캐비닛 뒤에 있는 이층침대가 그의 숙소다. 1층 침대는 그가 사용하고, 2층에서는 당직자가 잔다. 세수는 샤워장에서 하고 …
2010092010년 08월 23일‘성과주의 전도사’ 조현오 서울경찰청장의 소신
조현오(55) 서울지방경찰청장과의 인터뷰는 7월10일 오후 그의 집무실에서 진행됐다. 정복을 입은 그는 5시간 동안 진행된 인터뷰 도중 여러 차례 물을 마셨다. 열성적이면서도 신중한 태도였다. 언제 자객(刺客)으로 변할지 모르는 기…
2010082010년 07월 19일프로 갬블러 이태혁의 ‘포커와 인생’
그의 도박인생은 열네 살 때 당구장에서 시작됐다. 서울 종로구 효자동의 효자시장 뒷골목은 미로처럼 복잡했다. 시장 뒷골목에 있는 한 당구장 주인이 그의 스승이었다. 산초라 불리는, 손가락이 하나 없는 사내였다. 그는 흔히 말하는 타…
2010072010년 06월 24일‘나비형 인간’ 고영의 기부인생
그가 매일같이 묵상을 한다는 얘기는 나의 뇌를 쿡 찔렀다. 묵상(默想). 오랫동안 잊고 지낸 단어다. 그를 흉내 내 회사로 향하는 출근버스 안에서 묵상을 해보았다. 나의 인생은 무엇이고, 나의 미래는 무엇이고, 아이들이 누릴 세상은…
2010062010년 06월 01일‘UDT의 神’ 조광현 전 해군 대령
천안함 사건은 한주호 준위라는 영웅을 탄생시켰다. 사나운 파도처럼 들끓던 해군과 국방부에 대한 비난여론을 일순 잠재울 정도로 그의 순직은 국민의 가슴을 울렸다. “한 준위가 해군을 살렸다”는 얘기가 나왔다. 그가 35년간 몸담은 …
2010052010년 04월 19일‘교도관의 전설’ 이태희 법무부 교정본부장
하리마오’. 인도네시아어로 용맹한 호랑이라는 뜻이다. 우리나라 교도관들의 우두머리가 하리마오라 불린다는 사실은 나를 가볍게 흥분시켰다. 법무부 고위간부에게서 그 얘기를 듣고 나서 갑자기 그가 보고 싶어졌다. 세상 속 또 하나의 세상…
2010032010년 03월 0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