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교육현실 집중 분석
교단에 선 지 벌써 20년이 넘은 황 선생이 학교 업무 중에 받는 가장 큰 스트레스는 학생들에게서 거의 매일같이 무엇인가를 받아내는 일이다.오늘도 황 선생은 화가 나서 교실에 들어섰다. 방금 전 교장과 다투고 오는 길이다. 40대 …
2010032010년 03월 03일
시장과의 힘 겨루기에 나선 북한, 최후의 승자는?
이번 화폐개혁은 화폐만의 개혁이라고 보기 어렵다. 북한은 화폐를 이용해 사회주의 이념에서 탈선돼 있던 사회 시스템을 옛 궤도에 다시 올려 세우려고 시도했고, 시장경제를 통해 돈을 번 주민 재산을 무효로 만들었다.이런 이유로 기자는 …
2010022010년 02월 01일
1966년 ‘월드컵 8강 신화’의 북한 축구팀 44년 만의 기적 가능할까
지난 6월18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의 킹파드 스타디움. 사우디와의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 B조 8차전이 끝나자마자 북한 축구 선수들은 서로 붙안고 눈물을 흘렸다. 44년 만에 월드컵 진출을…
2010012010년 01월 07일
“우리가 슬픈 노래 부르면 그는 눈물을 흘렸다”
‘그녀에게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얽힌 과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꽤 오래전이었다. 김정일의 기쁨조 일원이었다고 주장한 여성은 이전에도 여럿 있었고 새로 들어오는 탈북자 중에서도 자기가 기쁨조였다고 주장하는 여성이 나타나…
2009122009년 12월 04일
“북한 장마당 최고 히트상품은 오뚜기 사과식초”
북한에서 요즘 유행하는 우스갯소리. 북한의 어느 탁아소. 5세반(班)에 한 아이가 전학을 왔다. 아이들이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새로 온 어린이 주변에 우르르 몰려들었다.한 아이가 작은 입을 오물오물하며 물었다.“너네 엄만 뭐하니…
2009112009년 11월 05일
북한 집단체조
아리랑 공연 참가자 대다수는 학생이다. 평양시 내 학교에서 이들 거의 전부를 뽑는다. 키를 맞추기 위해 각 학교에서 특정 학년을 통째로 빼서 아리랑 공연에 참가시킨다. 같은 학년이라도 키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실제 행사에서는 키 순…
2009102009년 10월 08일
SKY보다 어려운 김일성대, 졸업하면 권력층 ‘일등사윗감’
“야,어떤 새끼가 오늘 청소당번이야. 나와.”김일성종합대학의 기숙사 복도에서 한 상급생이 핏대를 올리며 소리쳤다. 그 앞에 오전 강의를 마치고 점심 먹으러 기숙사에 내려왔던 신입생들이 머리를 푹 숙이고 한 줄로 늘어서 있었다.“접니…
2009092009년 09월 10일
“어업, 북한 자본주의 전초지대로 뜨다”
북한에서 자본주의적 요소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곳은 어디일까. 북한을 좀 아는 사람이라면 선뜻 장마당을 꼽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 질문에 주저 없이 수산업 분야라고 대답한다. 이 분야에서는 10여 년 전부터 개인이 회사를…
2009082009년 07월 30일
과정 같지만 목적지 다른 6·15남북공동선언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은 북한의 조기붕괴 가능성은 높지 않으며, 북한은 자체의 힘으로 변하기 어려운 정권이라는 전제하에서 햇볕론에 입각한 포용정책을 통해 북한의 변화 환경을 조성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김대중 정부의 대북포…
2007072007년 07월 05일
전략과 일관성 부재로 변죽만 울린 노태우·김영삼 정부의 대북정책
1988년 2월~1998년 2월의 10년은 대한민국이 산업화에서 민주화로 전환되는 역사적 시기였다. 1960~70년대 국가 주도의 근대화와 고도 경제성장이 한계에 부딪히고 시민사회의 급속한 성장으로 군부 권위주의 정부가 더 이상 통…
2007062007년 06월 04일
경제 안정 치적으로 덮을 수 없는 전두환의 폭압정치
1979년 부마항쟁에 이은 박정희의 사망은 권위주의체제의 극점이 사라진 사건으로 민주화의 청신호로 받아들여졌다. 체제 내 자유파인 민주공화당과 온건 반대세력인 신민당은 국회에서 권위주의 폐기와 대통령 직선제에 합의했다. 군부는 온건…
2007052007년 05월 02일
김일성-김정일 유일체제 구축에 희생된 북한 경제
1970년대 국제정세는 미국과 소련의 핵 군사력 균형에 따른 평화공존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미국과 중국의 화해, 일본과 중국의 국교 수립, 미국과 소련의 데탕트 등 세계적인 화해 분위기 속에 남북한도 그 흐름에 적절히 대응할 필요…
2007042007년 04월 11일
국가폭력과 개발주의의 극치, 유신체제의 비극적 종언
1972년 10월17일 오후 7시, 갑작스럽게 예고된 ‘중대뉴스’에 맞춰 박정희 대통령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전파를 타고 전국에 울려 퍼졌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나는 우리 조국의 평화와 통일, 그리고 번영을 희구하는 국민 모…
2007032007년 03월 09일
한국경제 도약의 지렛대, 박정희의 수출 드라이브
2006년 12월5일 대한민국은 세계 11번째로 수출 3000억달러를 달성했다. 수출 1억달러 초과 달성일이 박정희 시대인 1964년 11월30일이므로 43년 만에 빛나는 성과를 이룩한 것이다.이 목표는 실적 지상주의에 의해 달성됐…
2007022007년 02월 12일
‘구국의 혁명’ 꿈꾼 5·16, 정권탈취와 민주압살로 귀결
5·16은 한국사회에 심대한 변화를 예고한 정변이었다. 이로써 고려조의 무신통치가 끝난 뒤 수백년 동안 지속된 민간 우위의 정치·문화 질서가 파괴됐다. 대한민국 건국의 첫 번째 대안으로 마련된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쿠데타로 인해 일단…
2007012007년 01월 08일
미국이 버린 제2공화국, 나약하지도 무능하지도 않았다
제2공화국은 1960년 4·19혁명의 결과 수립돼 5·16군사정변으로 붕괴했다. 한국 헌정사상 유일무이하게 내각책임제를 택한 제2공화국은 1960년 8월23일 출범한 장면(張勉) 내각이 이듬해 5월18일 임시 국무회의에서 내각 총사…
2006122006년 12월 08일
이승만 장기집권의 뼈대, 한미동맹과 북진통일론
휴전 이후 한국정치는 6·25전쟁의 연속에 불과했다. 휴전협정이 맺어지고 전선의 총성은 멎었지만 전쟁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했고, 전쟁 위협은 너무도 현실적이었다. 6·25전쟁은 이후 한국사회의 진행경로를 규정했다.미국의 아이젠하워 …
2006112006년 11월 07일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
김근태(金槿泰·59) 열린우리당 의장은 내향적 감정형이다. 내향적 감정형은 대개 조용하고 사귀기가 힘들며 이해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대체로 대중의 인기를 끌지 못한다.내향적 감정형은 인내심이 강하다. 1985년 8월24일 서울대 민…
2006102006년 10월 13일
이승만 장기집권의 토대, 부산 정치파동과 발췌개헌
전쟁과 정치는 밀접한 관계를 지닌다. 레닌은 이 관계를 “전쟁은 정치를 다른 수단으로 연장한 것”이라고 했고, 마오쩌둥(毛澤東)은 “정치는 피를 흘리지 않는 전쟁이고, 전쟁은 피를 흘리는 정치”라고 했다. 두 혁명가는 전쟁과 정치가…
2006102006년 10월 09일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초등학교 때부터 반장 한번 해본 적이 없어요. 남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가장 무서웠으니까요. 웅변 잘하는 친구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양면성이 있지요. 그것을 못하니까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죠.”정동…
2006092006년 09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