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그 맛
봄치고 춥다 싶더니 성큼 여름이다. 무엇이든 미루고 보는 나는 아직 계절이 뒤섞인 옷장에서 옷을 뽑아 입고 두툼한 이불을 덮고 잔다. 그래도 올여름 첫 콩국수는 먹었다. 설컹설컹 씹히는 오이소박이도, 신 김치 쫑쫑 썰어 넣고 참기름…
이진송 작가2020년 07월 27일[정여울 에세이] 내 안의 눈부신 사랑에 눈뜰 때
오래전에 사랑했던 노래의 가사가 마음속에서 다시 예전과는 다른 울림으로 메아리쳐 올 때가 있다. “오래전에 결정해 버렸지요. 나는 결코 누군가의 그늘 아래 들어가지 않을 거예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빼앗길지라도, 그 누구도 나의 …
정여울 문학평론가2020년 07월 12일망고땡과 萬苦땡
하늘이 이렇듯 말짱한 봄날이 있었을까 싶을 만큼 오늘은 날씨가 쾌청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날씨 화창’은 코로나19로 사람들의 움직임이 줄어서라는 보도가 나왔다. 영화 제작을 업으로 삼아서일까. 요즘에는 뉴스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
엄주영 영화제작프로듀서2020년 05월 07일너도 나도 전문가 행세하는 사회
사춘기 때, 동네 재개봉관 극장을 안방처럼 드나들었다. 지금도 잠시 눈을 감으면 동네극장의 풍경이, 냄새가, 사람들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인근 동네의 양복점·금은방·예식장 광고가 이어지는데, 굵고 진하게 그린 …
정윤수 문화평론가·성공회대 문화대학원 교수2020년 04월 13일치킨 중독
겨울밤 뜨끈한 안방 아랫목에서 자다 눈을 떴다. 기름진 닭고기 냄새와 시큼한 무 냄새가 났다. 거실에서 아버지 목소리가 크게 들렸다. 퇴근길에 술 한잔 걸친 아버지가 전기구이 통닭을 사오셨다. 이불을 박차고 거실로 나갔다. 기름이 …
김주욱 소설가2020년 03월 09일責子 ; 자식을 꾸짖다
12월 말, 부모님이 서울에 올라오셨다. 과일과 반찬거리를 사서 냉장고에 넣어두었고, 고구마를 구워서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오시는 날 추위에 고생하실 것 같아 따뜻하고 편안하시도록 집을 구석구석 청소하고 보일러와 형광등을 켜두고 출…
김대근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패·경제범죄연구실장2020년 02월 09일늙을수록 고귀해지는 것은 나무밖에 없다
20만 평 수목원 조성에 매달린 지 10년을 넘기자 철마다 연출하는 숲의 풍경이 풍성해졌다. 생태계가 연출하는 모습이 경이롭기도 하다. 그동안 내 눈높이가 부지불식간에 자연에 많이 가까워졌는지도 모른다. 나무들과 씨름하며 그들과 생…
조상호 나남출판 발행인, 나남수목원 이사장2020년 01월 11일65세에 4개국 어학연수라니…
돌이켜 보면 1989년 1월 해외여행 전면 자유화가 이뤄진 이래 많은 변화가 있었다. 시행 초기에는 단순히 해외여행 활성화만 이뤄지는 것 같더니 1990년대 중반부터 어학연수라는 개념이 사회적으로 조금씩 파급되기 시작했다. 1997…
김원곤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2019년 12월 10일내가 SNS를 하지 않는 이유
나는 집에 전기밥솥도 없고 전자레인지도 없다. 가스불로 냄비 밥을 짓는데, 밥맛은 더 좋다. 전기밥솥은 전기 소모량도 상상외로 많다. 물론 내가 냄비 밥 짓는 솜씨는 퍽 괜찮은 편이다. 양말도 스스로 기워 신는다. 사실 나는 20년…
소준섭 국회도서관 조사관·국제관계학 박사2019년 11월 11일미국 최고령 은행나무가 경북 청도 은행나무 후손?
필라델피아 39번가 기차역에서 우버(승차공유기업) 택시를 호출했다. 호출 후 5분 만에 나타난 우버 기사는 교포였다. 승객이 한국인인 것을 확인한 교포 기사는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자신부터 소개했다. 미국에 온 지 5년째이고, 필라…
전영우 국민대 명예교수2019년 10월 06일탈북자 명칭과 나
가장 오래된 탈북자 단체는 ‘숭의동지회’다. 숭의동지회 새 회장으로 선출된 ‘탈북자 1호 박사’ 안찬일이 탈북자 명칭을 ‘자유민’으로 개칭하겠다고 해 논란이 인다. 필자는 같은 탈북자이자 ‘탈북자’라는 명칭을 처음으로 제시한 당사자…
이민복 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 대표2019년 09월 13일위장된 善보다 솔직한 惡이 낫다
우리 속담에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이 있다. 조직 생활 등에서 ‘튀면 주변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산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성격이 너무 곧거나 일에 두각을 보이면 오히려 질투와 시기 또는 ‘안티’의 대상이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함대진 前 서울 서초구 기획재정국장2019년 08월 08일‘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 가르쳐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평생 앞만 보고 달려온 사람들은 화려한 성공 이면에 숨은 내면의 공허함을 견디며 홀로 아파하는 경우가 많지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오직 생존과 가족, 책임과 의무를 향해 달려만 가다가 문득 우리 인생의 아픈 그림자를 되돌아보…
정여울 작가·문학평론가2019년 07월 13일싸우지 않고 굴복시키는 방법
상대를 제압하는 동시에 상생하는 최고의 전략은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다. 손자병법은 “백번 싸워 백번 이기는 것은 최선 중의 최선이 아니고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 최선 중에서 최선(是故百戰百勝 非善之善者也 …
이태환 세종연구소 명예연구위원2019년 06월 12일불륜(不倫), 커피 대국을 만들다
“커피는, 정치가를 현명하게 만들지. 또한 눈을 감고도 모든 걸 꿰뚫어보게 하지.” 영국 시인 알렉산더 포프(1688~1744)가 남긴 커피에 대한 시구(詩句)다. 당파가 다른 정치인들이 서로 싸우면서도 “포프의 시에는 찬성표를 던…
장상인 JSI파트너스 대표2019년 05월 06일사관(史官)의 가짜 뉴스
[신동아=하응백 문학평론가] 세종대왕이 승하하고 2년 정도가 지난 1452년 7월 4일의 일이다. 이날 ‘세종실록’ 편찬 책임을 맡은 지춘추관사 정인지(鄭麟趾)는 실록 수찬관들을 불러 모았다. 정인지는 사관(史官)의 황희(黃喜)에 …
하응백 문학평론가·(사)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소장2019년 04월 12일퇴계 선생의 마지막 귀향길을 따라가며
서울에서 안동 도산까지 퇴계 선생의 마지막 귀향길을 따라 걷는다. 지금으로부터 450년 전인 1569년 어느 봄날(음력 3월 4일. 이하 날짜 음력) 그동안 여러 차례 고향으로 내려갈 것을 간청하던 69세의 퇴계는 마침내 임금 선조…
김병일 도산서원 원장, 전 기획예산처 장관2019년 03월 15일삶으로 그려내는 이주청소년의 꿈
2019년 1월 1일 새해 아침부터 아이들한테 카카오톡 문자메시지가 온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新年快(중국어)’ ‘Chu′c m‵u’ng na∪m m‵o’i(베트남어)’ ‘’نیا سال مبارک(파키스탄어)‘ ‘Танд…
김수영 서울온드림교육센터 센터장2019년 02월 12일세상의 가장자리로 향하다!
2019년 새해가 밝아온다. 간지가 기해(己亥)이니 돼지의 해다. 언제부터인가 그해의 띠가 무슨 색이어서 대길(大吉)하다고 말한다. 2007년 정해(丁亥)년에는 황금돼지 띠라고 해서 출산이 많았다. 이해에 신생아는 49만7000명으…
양기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평가수석위원·의학박사2019년 01월 09일너의 모습 그대로 괜찮아
최근에 알게 된 한 지인이 그림을 보내줬다. 맨발의 집시 소녀가 들판에 서 있는 그림이었다. 일전에 내 어릴 때 사진을 보고 부그로의 그림 ‘Pastorale’이 떠올랐다고 한다. 지인은 내게 물었다. “언제부터 이 모습을 잃어버린…
김수련 소설가2018년 12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