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호

마약 같은 ‘페이스북’ 누가 말려줘요

20~25세 조사 대상 남녀 69% “페이스북 스트레스”…끌올·뉴스피드·평판 관리 등에 매달려

  • 김신영 고려대 미디어학부 2학년 ssyy2012@korea.ac.kr이효정 고려대 영어영문학과 4학년 yeabby@korea.ac.kr 천승환 고려대 경제학과 2학년 winforchamp@naver.com

    입력2014-01-13 10: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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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약 같은 ‘페이스북’ 누가 말려줘요
    페이스북은 젊은 층에겐 이미 삶의 일부가 됐다.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강의실에서도, 지하철에서도, 카페에서도 스마트폰으로 페이스북을 한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에 따르면 20대의 69.3%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하는데, 그중 가장 많이 찾는 서비스가 바로 페이스북(34.5%)이다.

    페이스북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지인과의 소통일 것이다. 그러나 페이스북 이용에 따른 부작용과 스트레스도 의외로 만만치 않다고들 한다. 이런 점은 잘 알려지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에 필자들은 ‘페이스북 스트레스’ 실태를 살펴보려고 최근 일주일 동안 구글 기능을 활용해 서울시내 20~25세 남녀 페이스북 사용자를 취재했다. 조사 대상자들에게 온라인으로 구글 양식(설문조사 페이지) 링크를 보내 페이스북으로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그 스트레스 내용이 무엇인지 등을 직접 쓰게 했는데, 모두 132명이 답을 보내왔다.

    또 필자 가운데 한 사람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페이스북 유저분들 도와주세요! 페이스북 쓰면서 받은 스트레스 중에 어떤 요소가 있었나요? 댓글 하나씩만 달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는 내용의 게시판을 띄워 페이스북 사용자 다수로부터 스트레스 사연을 수집했다. 이어 설문조사 응답자와 댓글 작성자 가운데 일부를 인터뷰했다.

    취재 결과, 설문조사 응답자의 69%가 “페이스북으로 스트레스를 느껴봤다”고 답했으며, 47%는 “스트레스가 일상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라고 했다. 이번 취재를 위해 개설한 게시판에도 ‘남이 나를 훔쳐보는 것 같은 불안함 ㅎㄷㄷ’ 등 페이스북 스트레스를 호소한 댓글이 많이 달렸다. 이에 따르면 페이스북에 의한 스트레스는 △프라이버시 노출 △시간 낭비 △평판 관리에 집착 △게시물 무차별 열람 등 네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프라이버시 노출

    페이스북 사용자는 페이스북의 ‘함께 아는 사람’ 기능이나 ‘태그’ 기능을 통해 자신의 인간관계망이 타인에게 쉽게 노출되는 것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 이름에 마우스를 대면 ‘함께 아는 사람’에서 그 사람과 마우스를 댄 사람의 공통 친구들이 뜬다. 글이나 사진을 올릴 때도 사람 이름을 ‘태그’하면 그 사람의 담벼락(페이스북 로그인 후 처음 나오는 화면)에도 똑같은 게시물이 올라간다. 이런 점이 사생활 침해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이모(22·이화여대 경영학과) 씨는 “전 남자친구의 현재 여자친구가 ‘함께 아는 사람’ 기능을 타고 내 페이스북에 들어와 내 사진이나 게시 글을 주시한다는 것을 얼마 전 알게 됐다.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는 것 같아 ‘왕 짜증’이었다”고 말했다.

    전모(22·여·한양대 경영학과) 씨는 “과제 때문에 늦는다고 선의의 거짓말을 했다가 친구가 태그하는 바람에 들켜서 곤란했던 적이 있다. 사생활이 너무 쉽게 공개된다”고 했다. ‘Olivia Lee’ 씨와 ‘InAe Park’ 씨는 페이스북 스트레스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원치 않는 사람에게 내 사생활이 노출됐을 때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했다.

    특히 기업 인사담당자들이 입사지원자들의 페이스북을 살펴 채용에 참고하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취업을 준비 중인 페이스북 이용자들이 심적 부담을 받는다고 한다. 한 취업 준비생은 “면접에서 말한 내용과 담벼락에 쓴 내용이 다르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든다. 프라이버시 노출이 실질적 불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캐나다에 교환학생으로 가 있는 원모(22·이화여대 경영학과) 씨는 최근 모르는 남자로부터 “어제 저랑 홍대에서 같이 술 마신 분이시죠?”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원씨가 아니라고 했더니 “학교와 이름이 같아서 착각한 것 같다”는 답장이 왔다. 이 같은 동명이인 사례가 오히려 예외적이다. 응답자들은 “이름, 직장, 학교 정도만 알면 페이스북에 담긴 특정인의 사적 정보를 얼마든지 살펴볼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여러 응답자는 지워버리고 싶은 자신의 흐트러진 과거 모습이 페이스북에서 영원히 떠다닌다는 점을 심각한 스트레스로 여겼다. 이들에 따르면 페이스북 세계에선 특정인의 동의 없이 그의 민망한 모습을 다시 게재하는 일명 ‘끌올’(끌어올리기의 준말)이 광범위하게 수행된다. 어떤 사람이 잘못된 판단으로 자신의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삭제해도 이미 여러 사람이 공유한 상태이기 때문에 유포를 통제할 수 없는 것이다. 김모(21·여·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씨는 “2년 전 내 민망한 모습을 담은 사진을 올렸다가 뒤늦게 후회하면서 내렸다. 그런데 최근 누군가가 이 사진을 페이스북에 다시 띄워 너무 화가 났다”고 말했다.

    시간 낭비

    마약 같은 ‘페이스북’ 누가 말려줘요

    페이스북에 작성한 글로 곤혹을 치른 축구선수 기성용.

    박모(24·여·고려대 영어영문학과) 씨는 “페이스북 뉴스피드(News feed)에 내 신상정보를 올리거나 친구들이 올린 내용을 열람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든다. 낭비인 줄 알면서도 중독이 돼 하루에도 몇 번이고 한다. 이 점이 꽤 스트레스가 된다”고 말했다.

    박씨가 스마트폰에서 페이스북 애플리케이션을 클릭하자 자동으로 페이스북에 로그인됐고 그의 뉴스피드에 새로운 내용이 가득 올라와 있는 게 보였다. 뉴스피드는 자신과 타인이 올린 게시물을 자동 공유해서 보여주는 페이지를 뜻한다. 이모 씨는 페이스북 스트레스 게시판에 ‘실시간으로 들여다봐야만 하는 내가 한심, 두심, 세심’이라고 썼다.

    설문조사 응답자의 20%는 하루 10회 이상 페이스북에 접속하며 회당 10~20분을 보낸다고 답했다. 주로 ‘좋아요’라는 추천 수가 많아 자동으로 뜨는 동영상을 보는 데 시간을 쓴다고 했다. 이러한 ‘뉴스피드 강박증’으로 일이나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이모(24·여·홍익대 프로덕트디자인과) 씨는 “디자인과 특성상 매일 컴퓨터로 작업하는데 페이스북 창을 항상 켜둔다. 뉴스피드에 올라온 웃긴 동영상을 보는 데 정신이 팔려 과제를 제출하지 못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이씨의 말이다.

    “처음엔 재미로 봤는데 이제는 하나라도 놓치면 안 될 것 같은 강박관념에 계속 확인하게 된다. 게시물이 너무 많고 귀찮은데도 습관이 돼 끊을 수 없다.”

    최모 씨는 페이스북 스트레스 게시판에 ‘(뉴스피드에 새로운 내용이 올라왔음을 알려주는) 알람이 너무 울림’이라고 썼다. 신모(21·여·고려대 경제학과) 씨는 친구들이 ‘좋아요정’(좋아요와 요정의 합성어)으로 부른다. 하루 종일 뉴스피드에 올라온 모든 게시물을 확인하고 ‘좋아요’를 눌러주기 때문이다. 또 다른 페이스북 이용자는 “(책) 한 줄 읽고 페북하고, 한 줄 읽고 트위트하고… 요즘 공부가 잘 안 된다”고 했다. 설문조사 응답자의 31%는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습관적으로 페이스북에 들어가는 점” “뉴스피드의 모든 게시물을 봐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리는 점”이 스트레스라고 호소했다. 이에 대해 채정호 가톨릭대 의대 교수는 “페이스북 사용이 과하면 집중력 상실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고 말했다.

    평판 관리

    페이스북은 인간관계의 윤활유 구실을 한다고 알려졌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일부 페이스북 이용자가 ‘페이스북을 통한 자기평판 관리’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느낀다는 사실이다. 설문조사 응답자의 7%가 이렇게 답했다. 이들에 따르면 자기가 올린 게시물에 ‘좋아요’ 추천이나 댓글이 적게 달리면 해당 게시물을 아예 삭제하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한다.

    변모(24·여·단국대) 씨는 “게시물을 올리고 30분 안에 ‘좋아요’ 10개가 안 뜨면 삭제하는 친구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변씨는 “페이스북에 올린 내 사진에 ‘예쁘다’는 댓글이 달리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다. 반대로 외모를 지적하는 댓글이 달리면 댓글 작성자와 페이스북 친구관계를 끊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 페이스북 활동을 하면서 타인의 반응에 집착하고 이 점이 스트레스로 작용하는 것이다. 김경달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겸임교수는 논문에서 ‘타인으로부터의 평가가 즉시 나타나는 SNS 특성이 과도한 부담이 돼 스트레스를 줄 수 있다’고 했다.

    더욱이 취재에 응한 페이스북 사용자는 대부분 자기 사진이나 이야기를 페이스북에 올릴 때 실제보다 자신이 더 행복하거나 우월한 것처럼 미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답했다. 좋은 평판을 유지하려고 이미지를 끊임없이 관리한다는 얘기인데, 이 때문에 게시물 하나를 올릴 때도 여러 가지를 고려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노대영 연세대 의대 교수는 “페이스북을 통한 자기 노출은 대개 자기 과시로 흐른다. 의도한 대로 반응이 나오지 않으면 쉽게 좌절감을 느낀다”고 진단했다.

    반대로, 페이스북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받는 주변 사람의 행복한 모습이 페이스북 이용자의 열등감을 심화하기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모(24·여·고려대 영어영문학과) 씨는 “페이스북으로 친구들의 뛰어난 스펙(specification의 약자로 취업준비생의 학벌, 학점, 토익점수, 해외경력 등을 말함)을 접한 뒤 한동안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털어놓았다. 취업준비생 이모(25·여·고려대 미디어학부) 씨도 “선망하는 직장에 들어간 친구 모습을 페이스북에서 접하면서 심란해졌다. 결국 페이스북에서 탈퇴했다”고 말했다.

    게시물 무차별 열람

    마약 같은 ‘페이스북’ 누가 말려줘요
    임모(20·여·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씨는 “얼마 전 ‘대륙의 교통사고’라는 제목의 끔찍한 사진을 뉴스피드로 보고 한동안 잔상이 떠나지 않아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임씨는 “‘부천나이트클럽’이라는 제목의 야한 동영상을 볼 땐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했다. 남모(21·남·성균관대 인문과학계열) 씨도 “다리가 잘려나가 허벅지 뼈가 그대로 드러난 사진을 뉴스피드에서 얼떨결에 보게 됐다”며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페이스북 이용자 사이에서 이런 일은 흔하다. e메일의 경우 원치 않는 스팸메일은 열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페이스북은 사정이 다르다. 누군가 뉴스피드에 ‘전체 공개’로 부적절한 사진을 올릴 경우 이를 공유하는 상당수 이용자가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이를 보게 될 확률이 높다. 이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기기도 하는 것이다. ‘Taeksu Paul Kim’ 씨는 페이스북 스트레스 게시판에서 “나는 보기 원하지 않으나 다른 이들의 ‘좋아요’나 ‘공유’를 통해 나의 뉴스피드에 나타나는 것”을 스트레스 요인으로 꼽았다. 설문조사 응답자의 26%가 이런 게시물에 노출되는 점을 스트레스로 꼽았다.

    취재 결과, 페이스북 스트레스는 일상생활을 좀먹는 수준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지만, 설문조사 응답자의 대다수(96%)는 “페이스북을 끊지 못한다”고 답했다. 끊을 경우 당장 인간관계 단절이 초래될 정도로 페이스북은 20대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필자들은 취재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자연스럽게 내렸다. 첫째, 페이스북은 싸이월드가 아니라는 점이다. 싸이월드는 자신과 일촌 간의 사적 공간이다. 그러나 페이스북은 친구 맺기를 통한 사적 공간과 불특정다수로의 전파력을 가진 공적 공간을 모두 지닌 복합 공간이다. 페이스북을 사적 공간으로만 접근하면 언젠가 프라이버시 침해 피해를 입기 십상이다.

    둘째, 페이스북은 오락이지 의무가 아니라는 점이다. 게시물을 올려야 한다는, 게시물을 봐야 한다는 강박증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자신에게 무거운 굴레를 하나 더 씌우는 꼴이 된다.

    *이 기사는 고려대 미디어학부 ‘미디어 글쓰기’ 수업의 수강생들이 기획기사과제물로 취재해 작성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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