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청정 국가 → 유럽 총기 사고 1위로 전락
교도소에 자리 없을 정도로 범죄자 폭증
극우 정당은 늘어난 이민자 탓하지만…
실상은 빈곤층 증가 영향 더 커
![칼 구스타프 16세 스웨덴 국왕(왼쪽)과 실비아 왕비가 전날 총격 사건이 발생한 스웨덴 중부 외레브로시 외곽의 추모 장소에서 헌화하고 있다. [AP뉴시스]](https://dimg.donga.com/a/700/0/90/5/ugc/CDB/SHINDONGA/Article/67/c6/82/f3/67c682f326b7d2738276.jpg)
칼 구스타프 16세 스웨덴 국왕(왼쪽)과 실비아 왕비가 전날 총격 사건이 발생한 스웨덴 중부 외레브로시 외곽의 추모 장소에서 헌화하고 있다. [AP뉴시스]
그랬던 스웨덴이 최근 들어 ‘유럽 최고의 총기 사고 발생 국가’ 자리를 몇 년째 지키고 있다. 더구나 이번 사건에선 역대 최다 사상자를 내 충격이 컸다. 군나르 스트뢰머 스웨덴 법무장관도 참사에 대해 “우리 사회 전체를 뿌리까지 흔들었다“고 개탄했다.
스웨덴은 ‘갱단 범죄의 소굴’이란 오명도 쓰고 있다. 스웨덴 갱단이 늘어나고, 활동 범위를 주변 국가로 넓히고 있다. 이웃 국가인 덴마크, 노르웨이는 스웨덴을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살기 좋은 국가로 이웃 국가들의 부러움을 샀던 스웨덴이 갑자기 어쩌다 골칫거리로 변했을까.
극우 정치인들은 스웨덴에서 급격히 늘어난 이민자를 탓한다. 사회에 융화되지 못한 이민자들이 불만을 품고 범행을 저지르게 됐다는 얘기다. 하지만 알고 보면 스웨덴의 오랜 평화의 이면엔 소리 없이 곪고 있던 더 복잡하고 고질적인 문제들이 얽혀 있다.
수감자 ‘복지’까지 챙기던 국가
‘스웨덴 등 스칸디나비아 국가에서 감옥의 수감률이 훨씬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17년 전 영국 일간 가디언에는 이런 의문에 답을 찾으려는 기고가 실렸다. 기고문에 따르면 당시 북유럽 국가들에선 수감자가 워낙 적었다. 그 덕에 당국은 수감자 복지에 신경을 쓸 수 있었다. 한 교도소에선 수감자가 115명이었는데 여가 시간에 승마, 낚시, 테니스, 크로스컨트리 스키를 즐겼다.
11년 전 같은 매체와 인터뷰한 닐스 외버그 당시 스웨덴 교도소 및 보호관찰 서비스 사무총장은 스웨덴에서 범죄자가 줄고 있는 비결을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스웨덴에서 감옥은 사람들을 처벌하는 곳이 아니라 더 나아지게 만드는 곳’이란 제목이 큼직하게 실렸다. 그는 스웨덴이 수감 인원 감소로 교도소를 폐쇄하고 수용 인원을 줄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스웨덴 수감자 수는 2004년 5722명에서 2012년 4852명으로 감소했다. 교도소는 같은 기간 4곳이 폐쇄됐다. 가디언은 이 기사에서 “스웨덴의 재범률은 약 40%로, 영국과 다른 대부분의 유럽 국가 재범률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며 “이러한 성공은 수감자 재활에 투자하는 국가의 정책 때문”이라고 그 비결에 주목했다.
‘범죄 청정 국가’ 스웨덴은 불과 10여 년 사이에 범죄 소굴로 전락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스웨덴은 최근 몇 년간 ‘1인당 총기 사고 건수’가 유럽연합(EU) 회원국 가운데 1위였다. 스웨덴 법무부 산하 범죄예방위원회 집계에 따르면 인구 100만 명당 연간 총기 살인 사망자를 나타내는 총기 살인율은 스웨덴에서 2023년 기준 약 4명이었다. 이는 유럽 국가 평균치인 1.6명을 훨씬 넘어선다.
![스웨덴 중부 외레브로시의 리스버그스카 학교 밖에서 시민들이 전날 11명의 사망자를 낸 총격 사건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있다. AP[뉴시스]](https://dimg.donga.com/a/700/0/90/5/ugc/CDB/SHINDONGA/Article/67/c6/83/45/67c683450059d2738276.jpg)
스웨덴 중부 외레브로시의 리스버그스카 학교 밖에서 시민들이 전날 11명의 사망자를 낸 총격 사건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있다. AP[뉴시스]
이제 스웨덴은 늘어난 범죄로 수용시설이 부족한 상황에 이르렀다. ‘해외 교도소를 빌려서 써야 할 판’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이민자보다 빈곤이 더 큰 문제
극우 정치인들은 스웨덴 총기 범죄의 주요 원인을 이민자들의 일탈에서 찾는다. 스웨덴 범죄 조직에 이중 국적자가 많은 게 사실이긴 하다. 유럽 전문 매체 유락티비에 따르면 지난해 스웨덴 전국의 범죄 조직에서 활동하거나 이에 연계된 사람이 약 6만2000명이었다. 이 중 대부분이 이중국적자였다.
스웨덴 중도우파 정부와 극우 정치인들은 이민자 범죄를 저격하고 나섰다. 스웨덴 의회 헌법위원회는 올해 1월 초 기자회견을 열고 형사 범죄를 저지른 시민의 시민권을 국제법에 따라 취소하는 방안을 담은 보고서를 발표했다. 시민권 취소 대상엔 귀화 과정에서 허위 정보를 제공한 이중국적자, 시민권을 얻으려 뇌물을 주거나 협박한 사람, 스웨덴의 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포함된다. 스트뢰머 법무부 장관은 이 제안에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그는 한발 더 나아가 아예 갱단원의 시민권을 박탈하겠다는 의지까지 드러냈다. 정부는 이런 방침을 담은 법안을 내년에 발표할 예정이다.
![스웨덴 사회민주당 지지자들이 2022년 9월 11일(현지 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의 워터프런트 콘퍼런스 센터에서 총선 득표율이 높게 발표된 출구조사에 환호하고 있다. 당시 총선에서 사회민주당에 이어 반이민 성향의 스웨덴민주당이 2위를 차지했다. [AP뉴시스]](https://dimg.donga.com/a/700/0/90/5/ugc/CDB/SHINDONGA/Article/67/c6/83/7a/67c6837a0c4ed2738276.jpg)
스웨덴 사회민주당 지지자들이 2022년 9월 11일(현지 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의 워터프런트 콘퍼런스 센터에서 총선 득표율이 높게 발표된 출구조사에 환호하고 있다. 당시 총선에서 사회민주당에 이어 반이민 성향의 스웨덴민주당이 2위를 차지했다. [AP뉴시스]
이민자 범죄를 지적하기에 앞서 이민자 통합 노력을 충분히 기울였어야 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스웨덴은 준비 없이 급하게 이민을 받아들인 측면이 있다. 2015년 9월엔 시리아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서 난민 16만3000명을 받았다. 당시 인구 대비 난민 수가 유럽에서 가장 많았다.
정책은 이민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스웨덴 말뫼대 범죄학 교수 마네 게렐은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JS)에 “이민자들의 사회통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데서 범죄 문제가 비롯됐다”며 “정부와 경찰, 정치인의 부족한 대응이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고 말했다.
범죄의 근원이 이민자라는 주장에 반대하는 이들도 있다. 이민 배경의 범죄자는 소수라는 연구 결과도 발표됐다. 국제 학술지인 ‘법과 정신의학 국제저널’ 2020년 7·8월호에 실린 한 논문은 “살인으로 유죄판결을 받았거나 용의자로 지목된 1만4466명을 조사한 결과 대부분은 스웨덴에서 태어나고 부모가 모두 스웨덴인이었다”며 “이민자는 소수였다”고 밝혔다.
범죄 증가는 빈곤 지역 증가 등 사회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그 중심에 사회적 취약 지역을 뜻하는 ‘웃사타’가 있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전국에 두루 분포한 웃사타엔 스웨덴 전체 인구의 5%만 거주하지만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이곳 주민의 80% 이상은 사회·경제적 어려움을 안고 있고 이 중 절반은 ‘중대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지역은 주로 유럽 외에서 출생한 주민과 이민 2·3세가 많이 거주하지만 장기간에 걸쳐 사회·경제적 영향을 받으며 형성됐다고 가디언은 짚었다. 펠리페 이스트라다 도르너 스톡홀름대 범죄학 교수는 가디언에 “범죄 증가세를 늦추려면 사회 불평등을 줄여야 한다”며 “가혹한 처벌로는 범죄 증가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범죄 단체, 소셜미디어로 쉽게 사람 모아
![2월 4일 스웨덴 외레브로의 성인 이민자 대상 교육센터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해 최소 11명이 숨졌다. [AP뉴시스]](https://dimg.donga.com/a/700/0/90/5/ugc/CDB/SHINDONGA/Article/67/c6/83/a4/67c683a41b8cd2738276.jpg)
2월 4일 스웨덴 외레브로의 성인 이민자 대상 교육센터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해 최소 11명이 숨졌다. [AP뉴시스]
견실한 경제지표에도 양극화가 심각해진 이유는 정부가 물가 잡기에 실패한 데 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전후해 전 세계 물가가 급등했으나 스웨덴 정부는 이에 대응하지 못했다. 영국 가디언은 “스웨덴에서는 특히 일상 소매품 가격 상승세가 두드러졌다”면서 “정부는 물가 급등으로부터 가계를 보호해야 했지만 거의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주택정책 실패도 결정적이었다. 저금리 시기에 스웨덴에선 빚을 내 집을 사는 사람이 늘며 주택 가격 거품이 커졌다. 물가상승세가 거세지며 거품이 터졌다. 중앙은행이 고물가를 억제하려고 금리를 급격히 인상했다. 빚을 내서 집을 산 서민의 생활 여건은 급속도로 악화했다.
브렛 크리스토퍼스 스웨덴 웁살라대 주택 및 도시 연구소 교수는 영국 가디언 기고에서 “스웨덴이 직면한 문제의 핵심은 장기적이고 대규모인 정치적 실패”라며 “정부는 주택 구입에 상당한 보조금을 계속 지급하면서 주택 거품에 불필요한 기름을 붓고 있다”고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소셜미디어의 쉽고 빠른 ‘갱단 모집’이 범죄의 기폭제가 됐다고 본다. 텔레그램, 스냅챗 등에서 익명으로 방을 만들어 조직원을 모집하고 범죄를 제안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스웨덴 범죄예방위원회는 최근 연구 과제를 공모하며 “범죄 단체가 소셜미디어로 어린이와 청소년을 모집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범죄 청소년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국경을 가리지 않고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다. 그렇다 보니 이웃 국가들도 스웨덴의 전철을 밟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실비 리스타우그 전 노르웨이 법무부 장관은 최근 “스웨덴적 상황으로 치닫지 않게 경계하라”라고 경고했다고 미국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가 지난해 9월 보도했다. 스웨덴 갱단의 범죄가 노르웨이로도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노르웨이 경찰은 스웨덴 마약 조직이 노르웨이의 12개 경찰 관할 구역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덴마크에서도 마찬가지다. 덴마크 경찰은 지난해 9월 초 스웨덴인 청소년 2명을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했다. 이들은 스웨덴과 덴마크의 조직범죄 단체에 고용됐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런 비슷한 사건을 25건이나 수사 중이라고도 소개했다.
스웨덴 갱단에 물들 것을 우려한 북유럽 국가들은 수사 공조에 나섰다. 유락티비에 따르면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에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경찰관들이 상주하는 이른바 ‘북유럽 허브’가 마련됐다. 이를 통해 스웨덴은 범죄 관련 정보를 주변 국가들과 실시간 교류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