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인 백종원은 한때 ‘골목상권의 신’으로 불렸다. 하지만 현재 그는 ‘논란 폭탄’으로 불린다. 그야말로 ‘백종원 신드롬’을 일으켰던 인물이 어째서 지금은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논란의 주인공이 됐을까. 그리고 우리는 백종원 현상에서 무엇을 봐야 할까.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가 3월 28일 서울 서초구의 한 회의 공간에서 열린 더본코리아 주주총회에 참석해 취재진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뉴스1

연돈볼카츠가맹점주협의회·전국가맹점주협의회 회원들이 2024년 6월 18일 연돈볼카츠 가맹점 피해 사례를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마침 상장을 앞두고 있던 더본코리아는 논란을 수습하면서 좋은 분위기를 그대로 이어갈 수 있었다. 지난해 11월 상장한 더본코리아는 첫날 장중 공모가인 3만4000원보다 90% 높은 6만4500원까지 주가가 오르는 등 상승세를 보였다.
상장 이후 끊이지 않은 논란
하지만 상장 이후 더본코리아는 현재까지 끊이지 않고 다양한 논란에 휩싸였다. 그 시작은 1월 17일 터진 캔 햄 제품 ‘빽햄’의 돼지고기 함량 미달 논란이다. 국내산 돼지고기 한돈을 이용해 만든 햄이라는 점을 강조한 이 제품은 캔 햄 점유율 1위인 스팸과 비교해 가격이 더 비싼 데 반해 함량은 오히려 적다는 게 논란의 요지였다. 백종원 대표는 개인 유튜브 채널 ‘백종원 PAIK JONG WON’을 통해 “후발 주자이기 때문에 생산단가가 높아 원가 차이가 많이 난다”고 해명했지만 여론의 비판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3월 13일에는 식품제조시설의 농지법 위반 의혹이 제기됐고, 같은 달 17일엔 2년 전 충남 홍성군 바비큐축제 현장에서 백 대표 측이 농약 통에 사과주스를 넣어 고기에 뿌린 사실이 드러나면서 여론의 질타가 이어졌다. 1월에 터진 빽햄 사태 이후 백종원은 미디어에 단골로 등장하는 ‘논란의 주인공’이 됐다.
이후 새로운 논란이 연달아 터졌다. 방송 도중 액화석유가스(LPG)통을 실내 조리 공간에 두고 사용한 법 위반 사실이 드러나 과태료 처분을 받았고, 자사 대표 제품인 감귤맥주의 감귤 함량 미달 논란이 터졌다. 식품의 원산지 허위 표시, 임원의 술자리 면접 논란에 이어 백종원 대표의 방송 갑질 의혹까지 제기됐다.
잇따른 논란에 백 대표는 무려 다섯 차례나 공식적으로 사과했지만, 그 과정에서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1월 4858억여 원이던 시가총액은 5월(9일 기준) 3840억여 원으로 약 4개월 만에 1000억 원가량이 날아가 버렸다. 백 대표는 5차 공식 사과 당시 이미 찍고 있는 방송 프로그램을 제외하고 앞으로 방송활동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그간 방송을 통해 ‘골목상권의 대명사’이자 ‘장사의 신’ ‘프랜차이즈의 신’ 등으로 불리며 대중적 인기를 끌던 그였다. 이러한 이미지가 더본코리아의 급성장과 유가증권시장 상장으로까지 이어지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방송활동까지 접겠다고 선언한 건 지금의 사태가 가진 중대성을 말해 주는 것이면서, 방송과 사업 사이에 놓인 백종원 대표의 딜레마를 말해 주는 것이기도 했다. 백종원 대표는 방송을 통해 인기도 얻고 사업도 키워냈지만 갖가지 논란의 주인공이 되면서 방송도, 이를 통해 키운 사업도 리스크가 되는 변곡점을 맞이하게 됐다.
사업가와 방송인 사이
백종원 대표는 2004년 SBS ‘해결 돈이 보인다’ 같은 솔루션 프로그램 출연을 시작으로 방송활동을 해왔다. 그의 인기가 급상승한 건 2015년 MBC 예능 프로그램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하면서다.유튜브 방송이 대중적 콘텐츠로 일상화하기 시작하고, 방송을 잘하는 비연예인 전문가들이 주목받던 시기였다. 반려견 전문가 강형욱 씨가 EBS 시사교양 프로그램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하고, 오은영 박사가 SBS 예능 프로그램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를 통해 오은영 박사가 육아 전문 방송인으로 떠오르던 때다. 즉 전문가이면서 솔루션이 가능한 방송인이 요구되는, 이른바 ‘솔루션 프로그램’이 우후죽순 생기던 방송가 트렌드에 맞물려 백 대표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는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통해 선보인 특유의 ‘쉬운 레시피’를 활용해 요리연구가로서의 면모를 먼저 보여줬다. tvN 예능 프로그램 ‘집밥 백선생’은 그에게 ‘요리 선생’으로서의 입지를 부여했다. 특히 집밥 하면 ‘엄마가 해주는 밥’을 떠올리곤 하는 편견을 깨고 누구나 해먹을 수 있는 ‘집에서 먹는 밥’이라는 인식을 전파함으로써 각광받았다. 물론 그건 평등의 관점보다는 요리의 저변을 넓힌다는 취지가 더 큰 것이었지만, 어쨌든 이로써 남성들의 요리 참여가 늘어난 건 사실이다. ‘집밥 백선생’에서 그가 전파한 ‘쉬운 레시피’는 프랜차이즈가 요구하는 레시피 계량화의 결과였지만 대중은 쉽고도 효과적으로 맛을 내는 그 레시피에 열광했다. 충청도 사투리가 섞인 특유의 말투가 주는 소탈한 이미지에 음식에 대한 전문적 식견이 더해져 백종원 대표는 인기 방송인으로 급부상했다.
SBS ‘백종원의 3대 천왕’은 그의 이런 인기가 실제 요식업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준 프로그램이었다. 전국의 유명 음식점을 찾아가 ‘먹방’을 선보이는 이 프로그램으로 백종원 대표가 찾은 음식점은 줄 서는 맛집으로 주목받으며 지역을 들썩이게 했다. ‘백종원의 푸드트럭’은 방송인 백종원이 갖게 된 영향력이 요식업 창업자들을 코칭하는 방식으로 시전된 프로그램으로 프랜차이즈 대표로서 그의 역량이 방송에 적용된 사례였다.
이 프로그램이 확장돼 그를 ‘골목상권의 대명사’로 만들어버린 ‘백종원의 골목식당’이 탄생했다. 전국의 죽어가는 골목상권을 찾아가 선정된 몇몇 가게에 솔루션을 제공함으로써 쪽박집을 대박집으로 변신시키는 이 프로그램은 방송의 차원을 넘어서서 실제 상권을 바꾸는 기적 같은 변화를 만들어냈다.
대표 사례가 서울 은평구 홍은동 포방터시장 편이다. 이 방송에 등장한 후 포방터시장 내 돈가스집과 홍탁집이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 돈가스집은 백종원이 정도를 지키는 숨은 요리 고수를 찾아낸 사례였고, 홍탁집은 시청자들을 분노하게 만드는 ‘빌런’을 개과천선시킨 사례였다. 이 두 사례는 향후 ‘백종원의 골목식당’의 성공 아이템으로 자리 잡으면서 비슷한 사례들이 의도적으로 연출돼 크고 작은 잡음을 만들기도 했다.
이처럼 백종원의 방송은 방송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제 업체나 상권까지 변화시키는 영향력을 갖게 됐다. 방송을 통해 골목상권의 대명사나 장사의 신 같은 이미지가 만들어지면서 백종원은 실제 정치나 경제 영역에서도 영향력을 갖는 인물이 됐다. 2018년 국정감사에 등장해 정치인들 앞에서 골목상권 살리기에 대한 발언을 한 건 이를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이후 그는 ‘맛남의 광장’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정용진 신세계 회장에게 직접 전화해 지역의 판로가 끊긴 특산물을 대거 수거해 유통·판매될 수 있도록 돕는 등 살길을 터주기도 했다. 이러한 지역 상권 살리기는 개인 유튜브 채널을 통해 방송한 ‘백종원 시장이 되다’에서 예산시장을 변화시켜 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을 살려내는 한층 커진 스케일로 시도됐고, 그 성공으로 여러 지자체 축제와 연계된 프로젝트들을 백종원이 진행하게 됐다.
방송계의 블루칩으로 떠오르면서 백종원은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나 ‘양식의 양식’ ‘랩소디’ 시리즈 등 음식 다큐멘터리를 통해 음식 전문가로서 입지를 다졌다. 이를 통해 ‘한식대첩’ ‘흑백요리사’ ‘백종원의 레미제라블’ 같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을 맡았다. 또 ‘장사천재 백사장’ 같은 솔루션 프로그램으로 부각된, 요리와 장사를 접목한 ‘장사의 신’으로서의 이미지는 지역 살리기 같은 실제 프로젝트로 연결됐다.
방송인 명성, 사업가 백종원의 부메랑 되다

요리 예능 프로그램 ‘백종원의 골목식당’ 장면들. SBS
올해 들어 연이어 터진 논란을 보면, 백종원이 방송을 통해 그토록 강조하고 심지어 빌런을 만들어내기도 했던 ‘비위생’ 문제나 정도를 벗어난 ‘거짓 상술’ 따위를 그가 자행한 것이 드러난 셈이다. 연돈볼카츠가 체인사업화하는 과정을 보면, 백종원의 방송이 골목 식당 살리기를 모토로 내세웠지만 이를 명분으로 손쉽게 프랜차이즈 사업화를 해내고 있었다는 걸 실감하게 한다.
물론 방송은 자극적 내용을 더해 시청률과 화제성을 가져갔지만, 이를 통해 사업화를 시도한 백종원은 방송을 사유화한 결과를 만들었다. 잘나가던 ‘백종원의 골목식당’이 결국 종영하게 된 건 백종원과 방송이 각기 생각하는 바가 갈수록 충돌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결국 백종원은 개인 유튜브 채널을 통해 직접 전국 지역을 찾아가 상권을 살리는(예산시장의 사례처럼) 프로젝트를 이어갔다. 그것도 방송만이 아닌 더본코리아 사업의 중요한 영역이었다.
문제는 더본코리아가 상장하면서 이 회사의 핵심 역량이 고도화된 프랜차이즈 관리가 아니라 백종원이라는 한 인물의 이미지에 머물러 있었다는 점이다. 그것도 방송을 통해 이상화한 이미지가 핵심 역량이었다. 그렇기에 이 회사에 대한 신뢰도는 현실과의 괴리가 드러날 때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는 것이었다. 사실상 백종원의 사업은 방송의 영향력에 힘입은 바가 크다. 그가 방송을 통해 갖게 된 이미지는 그의 프랜차이즈 사업에 점주들이 신뢰하고 합류하게 된 가장 큰 요인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합류한 점주들은 현실이 방송과는 다르다는 걸 절감한다. 애초에 기대했던 것과 너무나 다른 현실이 펼쳐지면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런데 대놓고 불만을 토로할 수도 없다. 프랜차이즈 자체가 백종원의 이미지로 세워진 것인데, 그걸 깨는 것은 ‘다 같이 죽자’는 이야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간 대놓고 불만을 드러내는 일이 없었지만, 최근 터진 일련의 논란은 점주들의 억눌렸던 감정을 폭발시키고 있다. 결국 방송이 만들어낸 백종원 개인의 이미지로 일군 사업이 그 이미지가 깨지면서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모든 문제는 제게 있다. 제가 바뀌어야 진정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뼈를 깎는 각오로 조직을 쇄신하고 전 직원과의 소통을 통해 기업문화를 바꾸겠다.”
5월 6일 백종원은 방송활동 중단을 선언하며 이렇게 말했지만, 하나 사업체가 대표 개인의 이미지(그것도 방송으로 만들어진)에 기대고 있다는 건 너무나 큰 리스크가 아닐 수 없다. 이미지가 깨지는 순간 모든 게 무너질 수 있어서다. 전문가들이 한목소리로 지적하는 것처럼 더본코리아가 일신하기 위해서는 프랜차이즈 유통 기업의 근본 역량을 키우는 데 한층 더 집중해야 한다.
솔루션 프로그램처럼 현실과 맞닿아 있는 방송이 갈수록 늘고 있다. 방송 이미지와 실제 모습을 헷갈리지 않도록 방송을 비판적으로 소비하는 태도가 시청자 스스로에게 필요하다. 백종원 현상은 결국 ‘대중의 동조’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 역시 그 사태에 책임이 없다고 말하기 어렵다. 방송에서부터 정·재계, 언론은 물론이고 우리 사회 전부가 백종원 현상을 더욱 무겁게 바라봐야 하는 이유다.